[조용기 목사 설교] 살려고 하면 죽고 죽겠다고 하면 산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본문: 고린도후서 4장 10~11절

 
 

<서론>
“살려고 하면 죽고 죽겠다고 하면 산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죽는 것보다 좀 더 사는 것이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려고만 하면 오히려 죽고 죽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많이 듣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힘든 일입니다.

<본론>
1. 왕의 우상숭배 명령을 거역한 세 청년

성경에 보면 중동 일대를 석권하고 천하왕으로 자부하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수도에 자기 모습의 금우상을 세워 놓고 자기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과 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시켜서 우상에 절하는 예식을 선포했습니다. 엄청난 모임입니다. 온 세계를 석권하고 난 다음에 자기의 영광과 권세가 얼마나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민관 상관할 것 없이 모아서 상량식을 하는 날이니까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평지에 세운 높이 60규빗 너비 6규빗되는 금신상에 제막식에서 누구든지 절하지 않는 사람은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는 군중 가운데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불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여지없이 그곳에 던져 놓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유다민족의 사람들 중에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세 청년은 엄청나게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택함을 받고 요사이 말하면 도지사격인 그런 위치에서 일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 청년이 서로 언약한 것은 우리는 절대로 우상에 절하지 말아야 된다. 우리나라가 망하게 된 것은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 절하다가 이 모양이 되었으니 우리는 절대로 다른 신에 절하지 말고 우상을 섬기지 않기로 하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음악소리가 날 때 모두다 엉덩이를 치켜 들고 땅에 머리를 대어서 우상 앞에서 절을 하는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뻣뻣이 서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동료들이 시기, 질투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즉시로 느부갓네살 왕에게 가서 왕이여, 왕이 택해서 도지사로 세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사람은 음악이 울릴 때 다른 사람은 다 절을 하나 절을 안했습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도전이요, 우리 신에 대한 도전이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본때 있게 풀무불에 던져 넣어야 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분해서 몸을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명령에 불순종한 놈이 자기 도를 다스리는 자가 되었다는 후회도 있고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내가 기회를 한번 주겠으니까 준비했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가 있겠느냐.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내가 만든 금신상에 절을 하면 내가 사면해주겠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여부없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 타협 없는 신앙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100살에 낳은 아들을 모리아산에 재물로 드리라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것처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산천초목이 떠는 위엄과 권세를 가지고 이 세 청년들에게 명령을 했는데 선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좋은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이 독실했습니다.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느냐. 왕이 듣고 있는데...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므로 그가 살아있다면 그를 섬기는 우리를 위해서 역사해서 불에서 안 타죽고 왕의 협박에도 건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 바라고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도 우상은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지 아니하셔도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할 것입니다.

그 참 놀라운 말입니다. 건져주실 것을 바라고 불순종하는 것은 우리도 다 할 것인데 안 건져줘도 불 속에 들어가서 죽겠다고 하면 그 신앙은 견줄 데가 없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러니 느부갓네살이 앉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야 이놈들아! 이 세 놈을 잡아서 묶어 가지고서 당장 온 대중이 보는 앞에 불에 던져 넣어라. 무시무시한 순간이었습니다.

왕의 명령이 너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군인들이 불길에 타죽기도 했습니다.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울 정도로 활활 탔으니 이 세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결박된채 불꽃 가운데 던졌으니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다 생각하기를 바삭하고 타버릴 것을 생각했는데 던져 놓고 보니까 불구덩이 속에 세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결박은 다 풀려지고 네 사람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입니다. 꿈 같은 일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보게들 분명 세 사람을 던져 넣었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봐라. 네 사람이 아니냐? 네 번째 사람은 신의 아들 같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와서 손잡고 춤추고 있으니 이것 웬일이냐? 그래서 그는 불구덩이 가까이 가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그만 춤추고 나오너라. 세 사람이 나왔어요. 좀 더 시위를 했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너무 빨리 나왔어요. 그리고 왕과 모든 관원들이 그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니 머리카락이 안 탔고 옷을 냄새 맡으니 옷에 거스른 냄새도 안 나고 불에 댄 흔적도 없고 여전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그러나 그 네 번째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그 네 번째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환난 때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건지고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이 다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매 자기를 따르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크게 그 자리에서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기를 이제부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려라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기가 막힌 멋진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병 고침을 받는다든지 악한 습관에서 해방을 얻는다든지 사람들 보는 앞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건을 가지면 자기만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보는 사람들이 다 은혜를 받습니다. 큰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동경에서 집회 할 때 암이 걸려서 6번 수술한 자매님이 병원에서는 이제는 칼 댈 곳이 없다. 온 몸에 암이 다 퍼졌는데 어디다 칼을 대느냐. 죽을 날만 기다리라고... 숨조차 쉬기 어려운데 한국 오산리최자실금식기도원에 가자고 해서 그의 형제간이 그를 붙들고 기도원에 와서 사흘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몸이 너무 약해서 사흘 동안 금식기도하는데 너무 괴로워요.

그리고 난 다음에 동경순복음교회의 목사인 시가끼 목사의 부탁을 해서 내 사무실에 왔어요. 내 사무실에 왔는데 걸음도 걷지 못해요. 완전히 살았다하나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머리에 손을 얹었는데 내 속으로 하나님이 과연 이런 분을 고치겠는가? 내 스스로가 믿음이 안 생길 정도로 시체 같아요.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 병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고 얼굴을 들라고 하니까 얼굴이 창백하던 사람이 얼굴이 빨갛게 되었어요. 그래서 너무 흥분해서 빨갛게 된 것이다 싶어서 빨리 모시고 나가라고...

이번에 내가 동경 집회에 가니까 완전히 청년같이 활달하게 봉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한국에서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고통이 다 사라지고 숨쉬기도 그렇게 좋고 그래서 일본에 가자마자 자기 치료하는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조사를 해봐달라고 하니까 할 필요 없다고... 조사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또 무슨 조사를 한단 말이오? 암이 그렇게 쉽게 들었다가 쉽게 낫지 않는다. 잠잠하라고... 아니 그래도 조사해봐 달라고... 그래서 CT조사를 했는데 의사가 화닥닥 놀라면서 아니 어디 갔다 왔느냐고 그래요. 그래서 한국 기도원에 갔다 왔다. 이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온 몸을 새까맣게 태우듯이 먹어간 암이 하나도 없다. 다 나았다. 그래서 그 병 나은 것이 자기에게만 나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치료한 의사도 나도 믿어야 되겠다고... 전도를 하고...

우리 예수 믿는 신앙생활은 자유와 해방이 반드시 따르는 것입니다. 마귀에서 해방되고 여러 가지 고통에서 자유를 얻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그것입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내가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기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눈 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 이런 놀라운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낼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마음속에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여러분이 담대하게 말하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방에 나가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시행한 것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 하십니까?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금 신상에 절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권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죽기를 각오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두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에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같이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갖가지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두려움을 넉넉히 이기고 이렇게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다 같이 한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하나님이 내 편이다. 내 빽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내게 어떻게 하겠는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그림자처럼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마음속에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2.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공경한 다니엘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공경한 다른 이야기가 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바벨론은 메대와 파사 나라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전 구라파와 중동은 파사의 다리오왕의 통치하에 들어갔는데 다리오 왕이 역시 유대인의 포로가 되어서 다리오 왕에게 끌려온 다니엘이라는 사람을 너무 사랑하고 그를 굉장히 높여서 그 나라 총리대신 세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으로 삼고 주된 총리로 삼아서 왕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의논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분노가 굉장히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온 세계 가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학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거의 유대인이 과반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유대인들은 그 가슴속에 야훼를 섬겼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을 내가 높이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1대, 2대, 3대째 내려가면 어느 곳에 가나 머리가 되고 꼬리가 안 되는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은 파사 국가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직을 얻고 왕의 총애를 받기 때문에 다른 총리들과 관원들이 굉장히 미워하고 어떻게 하든지 다니엘을 넘어뜨리려고 다른데 넘어뜨릴 조건이 없고 오직 그가 하루에 세 번씩 아침, 점심,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서 동쪽으로 창문을 열어 놓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신앙으로 이 놈을 때려 잡아야 되겠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서 왕에게 아부를 합니다.

다리오 왕이여, 왕은 천하에 비교할 수 없는 왕인데 누구든지 왕에게 불경한 행동을 하면 그는 죽여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시작해서 30일 동안 어떤 신이나 어떠한 우상에게 기도를 하거나 예배를 하는 사람은 다 잡아 죽여야 합니다. 왕의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이 많은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이 권위는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는 사람들은 잡아 죽인다는 특별한 명령을 포고해야 합니다. 왕이 자기 위해서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이 좋다 말입니다. 도장을 탁 찍었습니다. 다니엘이 보니까 자기를 노리고서 그렇게 하는 것을 알았다 말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그것을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서 창문을 동쪽으로 열어 놓고 아침, 점심, 저녁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잡혔어요. 그를 노리고 있던 다른 관원들이 와서 현장에서 잡았으니 왕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왕이 그때야 늦게 깨닫고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고 너희가 모함했구나. 그러나 이제 정말 왕의 권위 때문에 안 죽일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던져 넣어라. 며칠 굶은 사자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있습니까? 이리 뛰고 저리 날뛰다가 다니엘이 굴속에 달아매서 내려오니까 우리 생각하기에는 그냥 달라들어서 뼈까지 부서뜨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니엘이 내려오는데 사자들이 아주 얌치 있는 여성같이 앉아서 목을 쭉 내밀고 꿈쩍도 안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천사가 와서 벌써 이 사자들의 입을 막았으므로 사자들이 꿈쩍 합니까? 왕은 한밤을 지나고 난 다음에 너무너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잠을 못잤습니다. 사자굴 앞에서 울음 섞인 소리로 다니엘아, 네가 그렇게 섬기던 하나님이 너를 보호해 주시더냐? 다른 사람들은 아이고 임금이 참 헛된 짓 한다. 배고픈 사자가 다니엘이라고 내버려 두겠느냐? 그런데 곧장 가서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아이고 살았구나. 내가 왕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도 아니고 왕에게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왕이여, 하늘의 천사가 와서 나를 보호해 주어서 살아났습니다.

빨리 다니엘을 끄집어내라. 그래서 다니엘을 끄집어 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긁힌 자국도 하나도 없다 말입니다. 그리고 사자가 그냥 고함을 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다니엘을 참소한 총리들과 높은 사람들을 모두다 끄집어 내어서 이 사자굴 속에 던져라! 사자들이 달라 들어서 내려오기도 전에 뼈를 꺾어 버렸습니다. 이런 신앙이 위대한 유대민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꼭 살라고 하면 못살아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서 나가면 오히려 살아요.

3.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
실제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이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죄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나서 원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입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처럼 희노애락이 다 있고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들을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고 청산한 재물로 왔기 때문에 죽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 죽어야 하는데 주님이 죽기를 싫어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 안하려고 자꾸 하지만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기를 싫어하셨습니다. 죽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살려달라고 간언을 했습니다. 죽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죽는 것은 자기는 죄를 한 번도 안 지었는데 아담의 자손들이 지은 그 죄를 다 자기가 짊어져야 되니까 지옥에 떨어져서 고생할 그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져서 청산하니까 그 괴롭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8절로 39절에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게 되었어요.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보십시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할 수만 있으면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내가 살고 인생들이 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뜻이 내가 죽는 것이면 내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 것이겠습니다만 방법만 있으면 나를 살려 주십시오. 성경에는 보니까 달이 밝은 달밤인데 예수님이 이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 얼굴에 땀이 물줄기 같이 흐르는데 핏방울이 되어서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고통스럽고 괴로웠든지 땀이 피가 되었습니다. 머리에 핏방울이 뚝뚝뚝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아~ 기쁘다. 죽을 날이 왔다. 내가 대속의 재물이 되겠다. 할렐루야~ 하고 십자가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자기가 걸머질 필요가 없는 죄악을 대신 걸머졌는데 주님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면 자기가 3년 반 동안 가르친 제자들이 다 배신했습니다.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고쳐 준 환자들, 돌봐준 유대인들이 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따라서 오며 울고 울고 가슴을 치는 그 어머니와 어머니의 형제들을 볼 때 더 마음에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 다 짊어졌으니 그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으로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하늘을 쳐다봐도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구렁이 있고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다가 생손에 대못을 박고 발가벗겨 십자가에 매달렸으니 그 수치와 곤욕이 어떠하겠습니까? “제구시 쯤에” 우리 시계로 오후 세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버림받은 심정을 느꼈습니다. 이제 예수님 조차도 버림받았다. 이제 나는 영원히 지옥에서 불탈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오로지 여러분과 나의 죄악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은혜라는 것은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 왜, 내가 너 때문에 몸 찢고 피 흘리고 고생 당했기 때문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는 영원히 하나님께 버림받고 그 마음에 한없는 불안과 고통을 겪었고 육체의 고통도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내가 다 이루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전의 휘장이 쫙 찢어졌습니다. 지성소 안에 법궤에 임재하여 계셨던 하나님이 일반 사람이 그 지성소에 들어오면 다 죽었습니다. 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피를 가지고 들어갔지 보통때는 못 들어갑니다. 그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모든 종교는 우리가 좋은 일을 해야 되고 종교적인 율례를 지켜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선물로 구원을 받습니다. 무엇을 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주겠다.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셔서 구원을 선물로 주는 것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우리가 믿기만 하면 그 다음 일은 주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너무 공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값없이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함을 주시는 이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귀와 세상은 너무나 흉악하기 때문에 인간의 선행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생명을 가져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살았으면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끝까지 참고 죽으셨기 때문에 주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전달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7~9).

마가복음 10장 45절에도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님께서는 우리 위해서 나 위해서 고난당했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 같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은 그 공로를 내 것으로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생명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당 내 천당, 예수 영생 내 영생. 이렇게 나와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산 것은 우리가 아니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은 모든 것은 법적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겨서 같이 죽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는 우리는 고통을 안 당했는데 예수님이 법적으로 우리를 끌어안고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당하신 모든 것은 우리가 당한 것이요, 예수께서 자유를 값 주고 사신 것이므로 다 우리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 십자가는 참으로 위대한 진리요 생명입니다. 살고만 싶어 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난 다음에 우리의 생각에 깨달아야 될 것은 제가 늘 말하는 예수 십자가 내 십자가, 예수 고통 내 고통,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이게 기독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고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상관이 있지요. 죽고 살고 일체가 되었으니까. 우리가 마음속에 확실히 깨달아야 될 것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의 모든 죄악을 자기 죄악으로 끌어안고 나의 허물을 자기 허물로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죄를 사하고 허물을 사하고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시고 나의 병을 자기의 병으로 끌어안고 채찍에 맞아서 병을 다 청산하고 나의 저주와 가난을 십자가에 매달리므로 다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시고 그 다음 나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음부에 내려가지 않고 낙원으로 들어가서 같이 있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 주님과 같이 재림하여 내려와서 부활의 몸을 얻어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이것을 늘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깨닫지 못하므로 주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하기 위하여 성찬을 마련하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주가 우리 안에, 우리가 주 안에 일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항상 여러분의 생각 속에 그리스도가 날 대신해서 죽고 부활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쳐다봐야 돼요.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매달리신 것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매달린 것이다.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여러분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것은 인간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니 내가 믿어야 한다.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를 믿어서 하신 일을 본받아 우리가 시인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라도 그냥 있지 마시고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당 내 천당을 입으로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깨달아 알고 묵상하고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말하면 그 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 속에서 모든 것 다 제켜 놓고 가장 중요한 것이 갈보리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을 우리 몸에 항상 걸머지고 있으라고 바울은 항상 말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있으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생각하고 예수 부활을 내 부활로 생각하고 깨달으면 그 사람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깨닫고 바라보고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해방된 나 자신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모세가 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놋뱀을 만들어서 높이 달았습니다. 쳐다보고 믿는 자마다 독에서 해방되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내가 그와 같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죄를 짓고 추악하고 불의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을 위해서 높이 매달릴 것이다. 나를 쳐다보고 믿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는다. 얼마나 위대한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까?

여러분 누구든지 이 진리를 믿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님은 나의 구주라고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 속에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 깨닫게 하시고 여러분이 꿈꾸게 하시고 여러분이 믿게 만드시고 입으로 시인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므로 여러분은 하늘나라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 자리에 계셔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여 죽고 살아나심을 따라 영원히 살게 된 여러분을 끌어안고 축복을 주시고 계십니다. 아멘.

/2015. 3. 8. 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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