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3장 1-4절
<말씀 봉독>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출애굽기 3장 1절로 4절 말씀 가지고 “불붙은 떨기나무”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 해 주시겠습니까. “불붙은 떨기나무”(불붙은 떨기나무) “불붙은 떨기나무”(불붙은 떨기나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남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사람을 만들어냅니다. 대단히 불행하게도 나쁜 만남은 사람을 나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에게 사랑받으면서 좋은 친구를 사귀면서 자란 사람들은 그 삶이 행복하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러한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어릴 때 부모사랑을 받지 못하고 늘 야단만 맞고 자라면서 나쁜 친구들과 사귀고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자연히 문제 많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저기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렇게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요해서 그의 인격형성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지만은 어떠한 그러한 만남이 그의 모습에 이르게 할지라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그 귀한 만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문제 많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 운명이 바뀌고 그 삶이 바뀌어 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랑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를 치료합니다.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서 하나님 영광 위해 살게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리했습니다. 그가 80세에 인생의 모든 희망이 끊어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늘 가시 떨기나무에 임한 불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떨기나무 인생
첫째로 떨기나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는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매우 핍박할 때였습니다. 남자애가 태어나면 다 강에 던져 죽임을 당할 그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버려진 이 모세가 바로왕의 딸의 눈에 띄게 되었고 왕자의 신분으로 자라게 됩니다. 사도행전 7장 21절, 22절은 설명합니다.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왕자의 신분으로 40년 동안 자랍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최대의 강대국의 왕자로서 지내게 되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가 말만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부족함이 없이 거침없는 삶을 살았던 모세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알게 모르게 한없이 교만해졌습니다. “내가 이만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그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없이 교만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11절 12절에 보면, 이와 같은 일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이 폭력이라는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미국대사를 테러해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우리 대한민국 서울에서 일어났는데 어떤 경우에도 그러한 폭력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보다 더 해서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바로 왕이 알고 진노했습니다. 모세를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두려워서 그는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지금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자의 신분에서 이제는 광야로 도망가서 도망자의 신세로 그리고 그곳에서 40년 동안이나 양을 치는 목자의 삶으로 그의 삶이 이어져가게 되었습니다. 목자의 삶은 가장 천하고 낮은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그 교만을 꺾으시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그를 낮추셨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광야를 바라보면 먼지 속에 “음메~ 음메~” 하고 자기를 찾는 양들의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외로운 인생이었습니다. 버려진 인생이었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40년이 지나가 나이 80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머리가 허연 백발이 되었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할 그때에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아무리 크고 어려운 문제가 다가와서 우리가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그러한 절망의 자리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때 우리가 주님을 붙잡고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80세가 되어서 그가 그의 장인의 양들을 치고 있는데 저 멀리 호렙산 근처의 가시떨기에 불이 붙고 있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는 않았습니다. 불이 붙었으면 타고 연기가 나서 그 불로 인해 나무가 다 사라지고 잿더미가 되어야 되는데 불은 붙어있고 나무는 살아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호렙산에 이르렀는데, 웬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는데 불만 붙었고 타지 않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케냐에 투르카나라는 지역에 가봤더니, 평균 온도가 50도입니다, 50도. 그런데 거기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가시떨기 나무에요. 이 바닥에 퍼져있는 나무들이 아주 날카로운 가시들이 이만큼씩 긴 가시들이 돋힌 가시떨기가 뒤덮여 있습니다. 아무데도 쓸데가 없는 이 가시가 무성한 떨기나무인데, 온 광야에 뒤덮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가시떨기가 무엇이냐, 가시떨기가 바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옷을 멀끔히 차려입고, 남들 보기에 부족한 것이 없는 듯한 삶을 살고 있지만, 누구나 예외 없이 그 삶속에 많은 가시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메마른 인생길에서 크고 작은 상처로 인해 받은 많은 가시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미움의 가시로, 분노의 가시로, 원망과 불평의 가시로, 섭섭함의 가시로, 그 삶속의 곳곳에서 그 가시를 내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잘 모르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찔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사람을 찌르며 살아왔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제 설교를 들으면서 ‘아 이거는 누구 이야기인가보다’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이런 존재가 되었으며, 왜 우리가 남에게 상처를 주고 가시가 덥힌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나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최고이고, 내가 하는 것이 다 옳고, 늘 자기중심의 생각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시 덥힌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면 가시 돋힌 인생으로 살다가 사망 길로 가지만은, 예수 믿고 변화 받으면 가시 돋힌 인생이 변화되어서 영생의 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삶이 이 가시떨기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는 한없이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교만과 함께 혈기가 가득해서 말로 타이르지 아니하고 주먹을 쳐서 사람을 죽이는 이와 같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성격이 급했으면 사람을 쳐서 죽였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광야의 도망자의 신세로 40년을 살면서 가시덤불처럼 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430년 동안 그들은 종살이를 하면서 그들은 다 가시덤불처럼 원망과 불평과 섭섭함과 노예로서의 모든 억울함을 가진 가시 인생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외롭게 자란 가시떨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나올 때만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떨기와 같은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원수마귀는 와서 우리의 모든 것을 도적질 했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도적질하고 행복을 도적질하고 기쁨을 도적질 했습니다. 그래서 가시덤불의 인생을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오셔서 그 가시를 제거해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평안함을 주시고 자유함을 주시고 위로함을 주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홀로 살면 가시떨기 같은 존재지만 예수님께 붙어살면 주님의 은혜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의 열매 기쁨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고 하다가 우리는 실수합니다, 실패합니다, 남을 찌릅니다, 그리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시떨기 인생이 그러합니다. 무엇 하나 남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늘 찌릅니다.
부부간에 늘 찔러요. 상처가 많은 아내가 남편을 찌르고, 찔린 상처로 또 상처 난 남편이 아내를 찌릅니다. 서로 찌르고, 찌르고 살다 보니까, 피투성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해야 됩니다.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우리를 붙들어 다시 세워 주시고,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LA선한 청지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송병주 목사님. ‘오후 5시에 온 사람’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지은 책입니다. 청소년기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서 집에 빨간딱지가 붙어 모든 것이 차압당하고, 달동네 판잣집에서 살아야만 했는데, 고등학교 때에는 빚쟁이를 피해서 아버지 어머니가 집을 나가 계시는 동안에 본인이 여동생 둘을 돌봐야 했는데, 전기, 수도, 가스, 전화가 다 끊긴 집에서 빚 독촉하는 깡패들에게 협박을 받으며 지내야만 했습니다. 언젠가 좋은날이 오겠지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손대는 사업마다 다 실패하시더니 결국 빚더미 속에서 55세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울 때에 그가 예수 믿게 되었는데 아마 공부를 잘했던가 봐요 교회에서 장학생으로 뽑혀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아, 이제 우리 가정이 행복할 일만 남았다.’하시던 어머니가 남은 빚을 갚기 위해 억척같이 일하시더니만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십니다. 부모에게 효도할 기회도 잃고 미국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달려와 통곡 속에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막내 아들의 자폐증 판정입니다. 3년 동안 밤마다 아이가 울어서 이유를 몰랐는데, 알아보니 자폐증이에요. 정말 완전히 인생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의 삶속에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마지막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기적의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는 자리에까지 내려놓으시고 죽음을 통하여 다시 그를 일으키셔서 세계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폐아인 아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로 여기고 LA선한 청지기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행복하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처절한 좌절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시간표를 갖고 계신 하나님의 계획’이 ‘마침표’를 찍으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떨기나무 같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모두가 ‘끝장이라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실패도, 그 어떤 좌절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내 육신과 영혼을 할퀴고 지나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으시기 전까지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지 마십시오!”
아멘. 여러분 모세가 80세에 부름을 받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 가운데 ‘나는 다 끝났다.’ 이제 나는 이 세상을 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그런 분이 계십니까. 바로 지금이 주님께 나와서 주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불입니다.
2. 우리에게 임한 성령의 불
둘째로 우리에게 임한 성령의 불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 불은 성령님을 상징하는데 출애굽기 3장 2절로 3절에 말씀이 나옵니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시떨기와 같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불이 임하기만 하면 그 운명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와 어려움과 많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성령이 임하시기만 하면 그 삶이 바뀌어 집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성령의 불이 우리 가시를 덮어버리게 하여 주옵소서. 미움의 가시, 원망의 가시, 불평의 가시 내 삶속에 있는 모든 가시는 성령의 불로 덮어 주시옵소서. 성령 충만함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성령 충만함 받으면 우리가 십자가를 담대히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우리 삶이 달라지고 새로워집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미움과 원망이 변하여 사랑과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삶의 전환점은 불꽃 가운데 오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 불꽃은 절망 가운데 비춰진 희망의 불꽃이요, 생명의 불꽃입니다. 가시떨기 같은 우리 인생도 성령의 불을 받기만 하면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한때 온 시내에 소문났던 깡패였던 김익두라는 청년이 성령 받고 유명한 부흥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열 살 때 사서삼경을 외울 정도로 수재였지만 과거에 낙방하고 난 다음, 그 다음 또 친구 빚보증을 잘못서서 부모 유산과 모든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술 마시고 주먹을 휘두른 깡패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그의 악명이 높았던지 안암골의 호랑이라 그랬는데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얘기가 오늘 제발 호랑이 같은 익두 안 만나게 해 달라고 하는 얘기였다고 합니다.
시장 상인들도 이 깡패 익두가 나타나면 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달라는 것을 안 주면 다 들어 엎기 때문에. “어이고, 저 익두 누가 안 데려가나!” 그러나 그 포악한 익두를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만지셨습니다. 술 취해서 장터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어느 선교사님이 그에게 전도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전도지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말씀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이 말씀이 마음에 탁! 부딪혀왔습니다. ‘아! 내가 풀 같은 인생이구나. 곧 나는 시들어버리고 죽어버리는 풀처럼 내 인생을 마무리하겠구나. 내가 이렇게 헛된 인생을 살아 무엇 하나.’ 마음을 돌이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김인서 교수가 김익두 목사님에 대해 쓴 책에 이런 소개의 글이 나옵니다. “산림 중에 들어가서…애통하는 중에 밤이 얼마나 갔던지, 울며 사십 리 길을 걸으니 새벽에 집에 돌아갔다. 방바닥에 쓰러져 눕고 있은 지 얼마 만에 비몽사몽간에 ‘큰 불덩이’가 떨어져 가슴에 콱 안기우는지라. ‘아이구, 벼락이야!’ 소리 질렀다. 벼락이 아니라 ‘불세례’였다!(이것은 익두 목사님의 고백이고요) 이때부터 선생은 죄를 심히 무서워하고, 죄를 심히 미워하고, 예수의 피로 사죄함을 믿었나니, 이게 선생이 중생(重生)하던 날이다!”
이후 성령의 사람이 되어 신약성경을 1년에 백번이나 읽고 주의 종이 됩니다. 특별히 김익두 목사님은 일제시대 때 아주 위대한 신유의 종으로 가는 곳마다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당시 동아일보에 이 기사가 기록될 정도로 큰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장로교 총회장님도 되시는데요. 만주 시베리아까지 이르러 총 776회의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2만8천 번의 설교를 했으며 150교회를 설립했는데 그의 설교를 듣고 목사가 된 많은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 주기철 목사님입니다.
가시떨기 같은 인생이 성령의 불 받고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이와 같은 성령의 불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여주옵시고 성령의 불을 꺼트리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여,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 충만하여 주님 뜻대로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은 말씀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 받고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다 같이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3.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셋째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모세는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4절에,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모세야, 모세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처럼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원망하는 얘기, 불평하는 얘기,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애기, 온갖 세상적인 더러운 얘기, 잘못된 얘기를 듣고 마음의 상처를 받고 마음에 죄짓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롭게 변화 받고, 치료 받고, 회복되고, 주님께 나가는 주님의 일군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하소서
주여, 날마다 주의 음성을 듣고 살게 하여주옵소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니 주님이 내가 날마다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너의 일생 다가도록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의 삶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줄 것이라. 할렐루야.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주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음성은 우리를 절망시키는 음성입니다. 상처 입히는 음성입니다. 우리 삶에 가시를 만들어내는 음성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은 우리를 치료하고 회복시키십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시아로 가려던 발걸음을 유럽으로 옮겨서 유럽의 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이 그 말씀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 것을 알고 유럽으로 건너가 온 유럽을 변화시킨 위대한 주의 종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음성은 실패요, 낙심이요, 절망이지만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성공이요,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남태평양 작은 섬, 바누아투에서 선교사를 하고 계신 원천희 선교사님. 『굿모닝 추장님!』이라고 하는 책을 내셨는데요. 거기는 지금도 원시적인 생활, 벌거벗은 채로 몸의 몇 부분만 가리고, 입고 살고 하는 그런 부족들이 사는 곳입니다. 이곳에 선교를 하러 갈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2007년 교회 단기 선교팀을 인도하고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의 안전지대를 떠나라.” 지금 편하고 잘 지내고 있는데 “너의 안전지대를 떠나라.”
그리고 주의 음성이 또 들려왔습니다. “너의 삶을 내게로 헌신하라.” 너의 삶을 내게로 헌신하라는 음성을 듣고 그가 저 먼 섬 남태평양의 바누아투라는 곳까지 갑니다. 아무리 다른 경비행기,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정글 속으로 들어가서 또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노구구’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1984년 호주 선교사님이 그 깊은 밀림 속까지 들어와서 15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한국에 한센병, 나병, 이 한센병 환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노구구’ 사람들이, 밀림 속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을 위해 쓰라고 그 당시 활과 책을 만들어 팔아 모두 200파운드, 현재 금액으로 2.500 만원인데. 가난한 원주민들로서는 엄청나게 큰 돈 입니다. 그것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이 분이 부산에 와서 ‘상애원’을 세우고 30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돌보신 맥켄지 선교사님입니다. 참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그 딸 두 분도 일신기독병원을 세워서 의료선교에 일생을 바칩니다. 그런데 그 원선교사님이 정글 속으로 들어오니까 그들이 말합니다. “맥킨지 선교사님이 한국에 갔고 원선교사님이 한국에서 노구구로 왔네.” 할렐루야. 성령님의 역사가 이와 같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 누구도 찾아가지 않는 그 정글 속에 그 부족을 원주민을 위해서 호주 선교사님이 15년 사역하고 한국으로 떠났는데 그곳에 한국 선교사가 찾아 온 것이에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감사하고. 식수가 없는 그들에게 빗물 받아 저장할 수 있는 물탱크도 세우고. 산기슭에 유치원도 만들고, 학교도 만들고. 그리고 보건소, 교회를 세우고 또 저들이 병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돌봐주는데 많은 병자가 낫고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그 지역 추장들도 변화되어 예수를 믿고, 적대 관계에 있던 주술사들, 무당들도 주님께 돌아와서 친구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선교사님의 고백입니다. “‘성령님’은 그분의 능력을 믿고 순종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저를 인도하시며,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성령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은 ‘제 능력, 재능, 경험, 기술’이 아니라, ‘성령을 100% 신뢰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성령 앞에서 잠잠하며 겸손하면 ‘그가 행하시는 위대한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7년간 좌충우돌하면서도 부족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와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여정 가운데 어려운 순간마다 제 손을 놓지 않으셨던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떨기나무와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불이 임해서 주님 앞에 붙잡히기만 하면 이렇게 위대하게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떠한 모습으로 나오셨습니까? 어떠한 가시들로 뒤덮인 모습으로 나오셨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절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 주님을 만나 성령의 불이 임하시기만 하면 여러분 모두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남은 여생을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가시떨기와 같았던 우리 인생에 성령의 불을 보내주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셔서 우리로 새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주님의 자녀들로 우리 모두가 쓰임 받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5. 3. 8.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