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사망해 큰 충격… ‘증오범죄’로 추정
17일 밤(이하 현지시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유서 깊은 흑인교회에서 한 백인 청년의 ‘증오범죄’(hate crime)로 추정되는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 성경공부 중이던 성도 9명이 숨지면서 미국 사회와 교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 교회는 매주 수요일 저녁 성경공부 모임을 열어왔다.
이번 사건은 2013년 9월 워싱턴 해군시설에서 12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다 희생자가 나온 미국 내 총기난사 사건이다. 특히 미국사회의 해묵은 난제인 ‘인종’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미국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21세 백인 청년 딜란 루프(Dylann Roof)는 이날 밤 9시께 찰스턴 시내에 있는 ‘임마누엘아프리칸감리교회’(Emanuel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난입해 성경공부를 위해 지하 예배실에 모여 있던 성도에게 마구 총을 쏜 뒤 달아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8명이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고, 2명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 중 1명이 결국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이 교회의 흑인 목사이자 주 상원의원인 클레멘타 핑크니(42·Clementa Pinckney)가 포함돼 있고, 나머지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성별은 남성이 3명, 여성이 6명이다.
경찰은 생존자가 여러 명 있다고 밝혔으나, 당시 교회에 몇 명이 있었고 나머지 부상자들의 상태는 어떤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 목격자는 “40여 명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사건 당시 5세 소녀도 현장에 있었는데, 죽은 척을 해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핑크니 목사의 조카인 실비아 존슨(Sylvia Johnson)은 생존자의 말을 인용해 “용의자는 총기난사를 하기 전에 핑크니 목사 옆에 앉아 있었으며, 사건 당시 다섯 번이나 총을 재장전했다고 말했다. 한 생존자의 아들은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그와 대화를 시도했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용의자는 흑인 성도를 죽이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는 “흑인들은 미국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 생존자는 “용의자가 ‘당신들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미국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라져야 한다(You rape our women and you're taking over our country. And, you have to go)’고 외치면서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또 한 생존자는 “용의자가 교회에 들어와 총을 쏘기 전 자리에 앉아, 옆에 있던 내게 ‘살려 줄 테니 나가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라’고 말했다”고 하기도 했다.
조셉 라일리(Joseph P. Riley) 찰스턴시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이해할 수 없고 극악무도한 일이 일어났다”면서 “누군가 교회로 걸어 들어 와 기도 중인 사람들을 쏴 죽인 유일한 이유는 증오일 것”이라며 증오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레고리 멀린(Gregory Mullen) 찰스턴경찰청장도 사건 다음 날 아침인 18일 브리핑에서 “이 사건은 증오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용의자도 사건 발생 1시간 전에 성경공부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을 때 교회로 들어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주지사도 “아직 구체적 사실은 모르지만, 기도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람의 동기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교회 지도자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이 교회가 인종 문제로 인해 공격 대상이 된 것이 명백하다”고 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지역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건너편 거리에 모여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또 교회 앞에서는 흑인과 백인 교인이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며 찬송가를 불렀다.
다행히 경찰이 공개 수배하고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벌인 끝에, 딜란 루프는 노스캐롤라이나 쉘비에서 도주 중 붙잡혔다.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용의자가 검거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루프는 자신이 21세 생일을 맞은 지난 4월 아버지에게서 선물로 받은 45구경 권총을 이번 사건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루프는 올해에만 마약 사용과 무단침입 등으로 2차례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임마누엘아프리칸감리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교회 중 하나로, 해방 노예였던 덴마크 베시 등이 1816년 설립했다. 199년 역사를 지닌 이 교회는 ‘마더 임마누엘’이라 불리며 미 흑인 기독교 역사 및 흑인 인권운동의 중요 장소이고, 19세기 흑인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1962년 이 교회에서 연설했다. 1822년 교회 공동창립자 베시가 흑인 노예들의 반란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붙잡혀 처형된 뒤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 다시 세워졌으나 1872년 지진으로 또 무너졌다. 현재 교회 건물은 1891년 건축됐다.
이번에 사망한, 이 교회의 담임 핑크니 목사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23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됐었다. 핑크니 목사의 조카 중 한 명이자 상원의원인 켄트 윌리엄스(Kent Willaims)는 “핑크니 목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으며, 가족을 사랑했다”고 전했다. 또 “핑크니 목사는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힘썼으며,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18일 찰스턴에서 대선 캠페인을 개최할 예정이었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일정을 취소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는 미국 킹센터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차분히 난관을 헤쳐갈 의지를 갖자”고 독려했다. 킹센터는 “경찰이 사건을 끔찍한 증오범죄로 보는데, 우리는 그 사람의 증오가 다른 증오의 씨앗이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