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흑백갈등, 그리고 50년 전 킹 목사의 꿈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당연한 권리 위한 목숨 건 투쟁” 다룬 <셀마>, 23일 개봉

2015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승리의 외침을 전하는 <셀마>는 1965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그와 함께한 평범한 사람들이 걸어간 자유를 위한 여정 ‘셀마 행진’을 그린 영화로, 현시대의 대한민국 관객들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영화 속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장면. ⓒ수입&middot;배급&middot;제공사 찬란
▲영화 속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장면. ⓒ수입·배급·제공사 찬란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작년 8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백인 경관의 총격에 흑인 청년이 목숨을 잃었고, 지난 6월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21세의 백인 남성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으며, 한 인터뷰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말로 노예제도 유산의 긴 그림자를 비판했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심각한 인종 차별 문제. 하지만 영화 <셀마>는 인종 차별 이슈만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바 두버네이 감독이 말하듯, “지금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목숨 건 투쟁을 했던 지역사회의 목소리” 그리고 “인생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그 이후 극복해낸 우리들의 보편적 이야기”까지 아우르고 있는 영화 <셀마>. 이 작품이 전하는 용기 있는 목소리와 꿈의 이야기에 대해 해외 유수 매체들은 “깊은 울림!”(USA Today) “승리의 이야기!”(The New York Times) “1965년, 그리고 현재를 대표하는 바로 그 영화!”(TIME Magazine)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 때문에 <셀마>를 봐야만 한다”(Washington Post) “마틴 루터 킹처럼, 영화는 당신의 마음과 심장을 완벽히 사로잡는다”(Miami Herald) “우리 사회가 지금껏 해왔던 것 뿐만 아니라 아직 하지 못했던 것까지 말해주는 영화”(Reelviews) “오래도록 회자될 연기와 강렬한 장면들!”(Los Angeles Times) 등의 평을 내렸다.

국내에서는 CGV아트하우스 스크린문학전과 씨네21 20주년기념영화제, 제3회 무주산골영화제, 제8회 FILM LIVE: KT&G 상상마당 음악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된 이후 만족도 4.36, 추천도 94%를 기록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셀마 행진의 기념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65년, 마틴 루터 킹과 셀마의 사람들은 함께 꿈을 꿨고 승리를 이뤄냈다. 7월 23일, 영화 <셀마>가 우리에게 질문한다. 2015년,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꿈이 있는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공식적으로 다룬 최초의 장편극영화 <셀마>는, 주목받는 차세대 감독 에바 두버네이와 배우 데이빗 오예로워의 환상적 호흡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 속 행진 장면. ⓒ수입&middot;배급&middot;제공사 찬란
▲영화 속 행진 장면. ⓒ수입·배급·제공사 찬란

<셀마>의 역사적 배경

1965년 3월 7일,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뉘른베르크의 재판>를 보고 있던 미국인들은, 참혹한 폭력의 현장을 담은 실시간 뉴스가 텔레비전 화면에 갑자기 나타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앨라배마주 셀마 지역에서 모든 미국 국민의 투표권을 동등하게 보장할 것을 촉구하던 시위대를 지역 및 주립 경찰대가 마구 폭행하는 장면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심각한 부상이 잇따른 이 사건은 수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또 분노하게 만든 ‘20세기 사상 최악의 진압’으로 기록됐다. 또한 이 사건은 한 세기에 걸친 지난한 싸움을 끝내고 승리를 앞당길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1870년, 수정헌법 제15조의 통과와 함께 미국 흑인(적어도 흑인 남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그 후 거의 100년간, 참정권을 획득한 후 몇 십 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그들은 투표할 권리를 거절당했다. 1960년대 초까지 미국 남부 일부 지역, 특히 앨라배마주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안 백인 전용 좌석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한 사건 이래, 시민 평등권 보장을 위한 저항 운동 세력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었다. 앨라배마 주 전반에 걸쳐 흑인들은 지역 담당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유권자 등록을 거부 당해온 상황이었다. 특히 말도 안 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읽기 및 쓰기 능력 검사나 시민 평등권 테스트에 포함시키는 등, 애초부터 흑인의 유권자 등록을 허용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과중한 인두세는 빈곤 계층에게 커다란 부담이었고, 유권자로 겨우 등록한 이들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15,000명의 흑인 인구 중 단 130명만이 유권자로 등록된 셀마에서 시민들은 저항하기 시작했고,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가 1963년부터 시민 평등권 운동을 계획했으나 상당한 저항에 부딪혔다. 특히 인종차별주의자인 보안관 짐 클라크는 지역 패거리를 기용해 투표권 운동에 가담한 이들을 겁주고 체포하고 두들겨 패는 데 앞장섰다.

인종차별에 대항해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며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하고 있던 젊은 목사 마틴 루터 킹은, 투표권 운동을 지원하고자 남부기독교연합회의(SCLC 남부의 인종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비폭력 보이콧 운동, 행진 등을 주도하는 목사들로 이루어진 단체)와 함께 1965년 1월, 셀마에 도착한다.

셀마에 오기 전 2년간 마틴 루터 킹은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일례로 워싱턴 D.C.에서는 기념비적인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남기게 되는데, 이 연설은 앨라배마주 버밍햄의 한 교회에서 백인지상주의자들이 벌인 폭탄테러로 4명의 죄없는 소녀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몇 달 전 일이었다. 마틴 루터 킹은 셀마로 오기 몇 달 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미국의 간디’라 불리며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꼽히게 된다.

마틴 루터 킹이 셀마에 도착하자 긴장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거리에 나온 시위대들은 잔악한 폭력 앞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백악관의 존슨 대통령은 자신이 두려워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은 수많은 정치적 책략과 협상 속에서 수 년째 이어온 비폭력 저항 운동이 마침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저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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