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 사회, ‘신앙’이 공공 윤리에 기여할 방안은

온양=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한국기독교학회 제44차 정기학술대회, ‘정의’ 주제로 개최

▲한국기독교학회장인 유석성 서울신대 총장이 기조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학회장인 유석성 서울신대 총장이 기조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제44차 한국기독교학회(회장 유석성 박사) 정기학술대회가 온양관광호텔에서 23일 ‘정의’를 주제로 개막해 1박 2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학술대회에서는 회장 유석성 박사(서울신대 총장)의 기조강연 후,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뉴칼리지(신학부) 학장 데이비드 퍼거슨 교수(David A. S. Fergusson)와 독일 예나대학교 화해연구소 소장 마르틴 라이너 교수(Martin Leiner) 등 해외 석학들의 주제강연이 진행됐다.

유석성 총장은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의 평화(The Reunification of Korea and Peace of East Asia)’를 제목으로 한 기조강연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복음화와 선교의 문제이고, 당위성·필요성·긴급성을 갖고 추진해야 할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유 총장은 “130년 역사 속에서 개화와 문명, 항일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등에 큰 역할을 감당해 온 한국 기독교는, 이제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며 “한민족은 통일이 되면 선진국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땐 3류 분단국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평화는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 실현해 가는 과정이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평화의 사도이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자들이 돼야 한다(마 5:9)”며 “한반도의 평화통일 없이 동아시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동아시아의 평화 없이 전 세계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퍼거슨 교수. ⓒ이대웅 기자
▲데이비드 퍼거슨 교수. ⓒ이대웅 기자

데이비드 퍼거슨 교수는 ‘교회, 국가, 그리고 세속주의자들(Church, State and the Secular)’이라는 주제로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이 공공 윤리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학살(massacre)’에서 보듯, 오늘날 유럽의 신앙공동체들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는 ‘공공 영역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있다는 것.

퍼거슨 교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종교적 다양성과 관용의 약사(略史)를 서술한 후 “종교와 관련해 사람들은 차별과 폭력, 박해의 두려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그들의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 주길 원한다”며 “자유주의 국가들이 국민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공적 생활의 모든 형태에서 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돼 있으며 세계인권선언(18조)에도 정식으로 기술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에서는 법정이나 교실에서 이슬람교 여성들의 베일 착용, 낙태나 안락사에 대한 교회의 명확한 정치적 입장 표명, 동성결혼에 대한 종교의식 등에 있어 의견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다”며 “특히 신앙인과 세속주의 주창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퍼거슨 교수는 “신앙은 사회사업과 정치적 목적, 그리고 국제적 협력의 결과물로서 윤리적 실천을 낳고, 기독교인들은 교회와 가족을 넘어 보다 넓은 공공선을 추구한다”며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세속주의는 모든 종교를 사적 선택의 영역으로 제한함으로써 종교를 윤리와 결별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종교적 책무가 다양한 형태로 널리 행해지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대안으로는 기독교인들이 교회 밖 비기독교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절차적으로 잘 마련하는 ‘절차적 세속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데스몬드 투투와 아웅산 수치 등 다원적이고 세속적인 맥락 속에서 정치적 변화를 위해 종교적 수사를 성공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정치적 배우들’이 있다”며 “그들은 창의적 방식으로 신앙과 영적 가르침의 언어를 사용하여 도덕적 인식을 심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속적 단체들 뿐 아니라 다른 신앙단체들과 유대를 강화하는 교회의 능력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하고, 이는 보다 넓은 사회를 향한 환대로서 우리의 ‘미션’일지 모른다”며 “다문화 사회가 분열로 근심에 휩싸일 그 때가 바로 기독교 단체의 기능이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기독교와 신앙이 우리 사회의 윤리적 정의를 세우는 일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진단이다.

▲마르틴 라이너 교수. ⓒ이대웅 기자
▲마르틴 라이너 교수. ⓒ이대웅 기자

이어 마르틴 라이너 교수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정의론: 철학적 논의에서의 유사성을 중심으로(Dietrich Bonhoeffers Lehre von der Gerechtigkeit und ihre Parallelen in der Philosophie)’를 통해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라는 명제에 대한 본회퍼의 정의 개념과 윤리학, 그의 정의론으로 보는 세계의 기아 문제 등을 논의했다.

마르틴 라이너 교수는 “본회퍼는 철학적 토론들이 다수의 정의 개념들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일을 등한시할 때, 한 시대에서 정의의 필수적 가치와 문제성을 발견해 냈다”며 “그는 최고의 법 규범으로 통하는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라는 원리가, 자연적인 것 자체에 주어진 권리들의 충돌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갈등의 소지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이너 교수는 “본회퍼는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라는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각 사람에게 각자의 것을 주실 때 이뤄질 모든 법의 성취를 지시한다’고 여겼고, 자연적 권리는 궁극 이전의 것과 궁극적인 것 사이의 전형적 사례라고 했다”며 “그는 그리스도인이 행동하기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이 성취됐고, 이 더 나은 의는 단지 외적 세계의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나뉘는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부름을 통해 자신의 의와 자신이 가진 하나님과의 공동체적 친교에 참여하게 하고, 이로써 인간 상호 간의 관계는 다른 차원으로 고양된다. 그는 ‘예수는 선과 악에 대한 앎의 극복을 요구한다. 그는 하나님과의 일치를 요구한다’고 함으로써 상이한 자연적 권리 주장이나 상충하는 정의 이론들을 극복해내고 있다.

라이너 교수는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통해 화해된 이 세상에서 결단과 행동이 이뤄져야 함을 강조하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규정된 사랑과 기쁨, 자유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리라고 믿었다”며 “정의는 먼저 창출돼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현실이다. 그 현실에 제자들이 먼저 참여하고, 예수가 모든 사람들에게 오심을 통해 모든 이들도 참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회퍼는 더 나은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며 “그 정의는 상이한 정의 이론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넘어, 그리고 법률적 의무를 넘어 사람에게로 향하는 하나님의 운동을, 사람을 위하는 하나님의 운동에 동참하도록 초대한다. 정의는 이 운동의 중심적 관점”이라고 정리했다.

▲학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학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앞선 개회예배에서는 부회장 노영상 총장(호남신대) 인도로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 이규민 교수(장신대)의 기도, 한국선교신학회 회장 전석재 교수(서울신대)‘의 성경봉독 후 김삼환 목사(명성교회)가 ‘사도로서의 당당함(롬 1:16-17)’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김삼환 목사는 “바울은 사도로서 한결같이 당당하게 나아가 짧은 시간 안에 유럽을 복음화하는 기초를 잘 닦았다”며 “그 대단한 용기와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셨고, 당시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능력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전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어떻든 결과적으로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어느 때보다 복음이 필요한 시대이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른 이가 아닌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에는 제10회 소망학술상 시상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올해 수상자는 ‘역사적 성서해석과 신학적 성서해석’ 김창선 박사(평택대), ‘선교와 해석학’ 강아람 박사(장신대), ‘이머징 예배 뛰어넘기’ 유재원 박사(주안장로교회), ‘21세기 포스트모던 사회의 통전적 기독교교육’ 이규민 박사(장신대) 등이다.

기독교 분야 국내 최대 규모 학회인 한국기독교학회에는 한국구약학회, 한국신약학회, 한국교회사학회, 한국조직신학회, 한국기독교윤리학회, 한국실천신학회,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한국선교신학회, 한국교회음악회, 한국목회상담학회, 한국여성신학회, 한국문화신학회, 한국교회사회사업학회 등이 참여한다. 24일 폐회예배 후에는 정기총회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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