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영훈의 명곡 묵상」 펴낸 윤영훈 교수 (下)
<윤영훈의 명곡묵상> 저자 윤영훈 교수(명지대)는 빅퍼즐문화연구소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청년문화의 중심지인 '홍대 앞'에서 '창조적 공부방'이자 '즐거운 놀이터'를 지향하고 있는 빅퍼즐문화연구소는 인문학과 예술상담, 영화 클럽, 북토크, 문화이론 강독반, 대안 문화집회 등 다양한 색깔의 모임들이 연합해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다음은 문화와 관련해 진행된 윤영훈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빅퍼즐문화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연구위원 대부분 교수들로, 학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담론을 생성하고 사람을 세워가는 일들에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선교를 지향하지만,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공동체입니다.
보통 교회나 신학교 등 기독교 기관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 밖에서 무대를 만들어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고 싶었습니다. 학문을 하고 담론을 생성하는 곳이 꼭 학교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학교 밖에서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최근 여러 아카데미가 생겨나고 있지만, 저희는 기독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강좌에도 의도적으로 기독교적 색깔을 가능한 드러내지 않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하고 선교를 지향하지만, 비기독교인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모두 나눌 수 있는 공통된 화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치, 환경, 결혼 등은 신앙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관심 있는 주제죠. 하지만 저는 여기에 신앙적인 가치관이 아주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나라 가치 확장 운동이라고 할까요? '교인 만들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교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가치 전도'를 한다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연구위원들의 전공이 신학부터 역사학·심리학 등 다양하다 보니, 학문 간 융합도 자연스럽게 시도됩니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세미나가 가능한 것이지요."
-주로 어떤 강좌들이 진행되나요.
"기본적으로 공동 키워드는 '문화'입니다. 문화라는 수단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영화와 음악 같은 문화 콘텐츠 자체를 이해하고 비평하는 강좌도 있고, 문화 예술을 매개로 한 인문 강좌도 있습니다. 빅퍼즐상담심리센터의 프로그램도 음악치료, 드라마 치료, 영화치료, 미술치료 등 예술을 매개로 진행됩니다. 지난 3년간 매 학기 꾸준히 강좌를 기획하면서 좋은 콘텐츠도 꽤 쌓여서, 여러 기관이나 교회들과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올해 중점 프로그램은 '음악'입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가 운영하는 대중음악웹진 '이즘(izm.co.kr)'과 컬래버 프로젝트로 상반기에만 8개의 음악 강좌를 운영 중입니다. 하반기에는 '영화'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기독교계의 영화인들과 제작자·평론가들이 함께하는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영화라는 콘텐츠를 보다 재미있고 의미있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신학과 인문학적 확장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현재는 매월 셋째 주 수요일 '빅퍼즐 무비하우스 클럽'을 운영합니다. 영화평론가 강도영 형제가 진행하는데, 10-15명이 모여 다양한 영화들을 매월 한 편씩 시청하고 토론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꽤 재미있습니다(웃음)."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토론'이 잘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공부는 함께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우리는 '각개전투하는 공부'가 문제입니다. 공부는 함께할 때 훨씬 창의적이고 효율적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10번 혼자 읽어봐도 이해가 될까요? 하지만 함께 읽을 때는 서로의 생각이 모입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함께 읽어도 도움이 되지만, 북멘토 같은 사람들이 한 명씩 끼면 더 많은 도움이 됩니다. 큐티나 묵상도 나눌 때 은혜가 커지지 않습니까. 각자 다른 생각들도 이야기할 수 있고, 내가 아는 것을 소통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처음엔 아무 말 못하고 침묵을 지키던 사람들도, 몇 달간 하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생깁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대부분 소위 '주워 들은 것' 아닌가요(웃음)? 남의 것을 훔쳐서 내 것으로 삼는 것이, 어찌 보면 태초부터 내려온 지식의 확장법이 아닐까 합니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글쓰기입니다. 연구소에서는 글쓰기 훈련을 많이 합니다. 처음엔 함께 공부하며 썼던 글들을 모두 웹진에 올리게 하고 제가 봐 줬는데, 힘들지만 뿌듯했습니다. 지금은 각자 블로그를 만들어서 게재하고 있습니다."
-요즘 기독 청년들이 문화적으로 세상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크리스천 청년들의 세계관이 정말 빈약합니다. 교회나 신앙이라는 믿음의 영역이 우리의 세계관을 뚫어줘야 하는데, 거꾸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거나 시야를 좁게 만드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도올 김용옥 씨가 쓴 <사랑하지 말자>라는 책이 있는데, 종교를 말하는 챕터에서 '오늘날 청년들은 웬만하면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 세계관 확장에 좋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기분 나쁘지만, 이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며 정서적 피난처를 찾을지 모르지만, 의외로 세상을 보는 정교한 가치관은 너무 단순해지고 좁아질 수 있습니다.
대학교 때 안전하고 평안한 기독교 동아리와 교회 청년부에 머물며 나름 세상과 구별된 기독교인의 공동체 안에 안식을 찾지만, 그 둥지를 떠나 졸업하고 취업하면 냉혹한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이 너무나 나약할 수밖에 없음에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때론 그런 세상이 싫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과 신앙을 철저히 이분법적으로 분리해, 세상에서는 철저히 세상적으로 살고 교회에서는 신앙적으로 사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분명 어떤 세속 학문도 주지 못하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질문은 궁극적으로 결국 종교적 질문과 맞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여전히 힘이 있는 인문학적 영역인데도, '영혼 구원'의 제한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현 시대에 문화는 절대적입니다. 목회 지망생들은 신학교에서부터 문화를 해석하는 방법론도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약학은 단지 신약성서를 연구하는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서를 통해 오늘의 세상과 중요한 사회 문제를 논의해야 합니다. 또한 현대 기독교인이라면 신학서적뿐 아니라 인문 사상서들도 탐독해야 합니다. 칸트와 하이데거, 장 보들리야르나 질 들뢰즈 등의 책을 읽어야지요. 하지만 신학생들은 신학서적이나 경건서적에만 함몰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매월 두 차례 이원석 작가가 리드하는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 우리는 신학서도 읽지만, 대부분 일반 교양서와 고전들을 함께 읽고 토론합니다. 우리는 성서를 해석하는 것 못지 않게, 이 시대 사회와 문화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CCM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기획 중인 프로젝트 중 'CCM 명반 50' 선정이 있습니다. 단지 'CCM의 화려한 부활'을 위해서라기보다, 지난 역사를 잘 정리해 주고 그 다음 방향을 제안하기 위한 것입니다. 1980년대 자생적 청년운동이었던 CCM이 어떻게 태동하여 성장하고 점차 시들어가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포스트(Post) CCM' 담론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훌륭한 앨범들을 소개할 것입니다. 단지 인기 있는 앨범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또한 메시지 차원에서 훌륭한 가치가 있는 앨범들을 선정위원들이 함께 선정하여 당대 한국 음악계의 흐름과 비교하며 풀어갈 생각입니다.
CCM 역사는 한국 가요사의 흐름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1980년대는 유재하·이문세(이영훈) 등을 통해 세련된 한국형 발라드의 문법이 생성된 시기입니다. 이런 흐름이 최덕신이라는 걸출한 프로듀서가 이끌었던 주찬양 선교단의 음악에도 잘 드러납니다. 또 1981년 시작된 극동방송 복음성가경연대회는 CCM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는데, 이는 당대 대학가요제가 했던 역할과 매우 유사합니다. 둘 다 창작 가요제란 공통점도 있어, 젊은이들을 통해 발표된 참신한 노래들이 발표되고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죠.
CCM은 한국 교계의 공식적 통로가 아니라 기독 청년들의 자생적 노래운동으로, 기성세대와의 문화 충돌을 야기하면서 1990년대에는 기독교 대안문화로서 그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MP3로 인한 음반시장이 급변하고, 교회가 세상 음악을 듣지 못하게 하는 '신학적 보호무역장벽'이 허물어지면서, CCM은 급격히 몰락하였습니다. 이는 일반 음악계에서도 연예인보다는 예술가로 정체성을 가졌던 음악인들의 공동체 동아기획의 파산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또 CCM은 대중음악의 중요한 트렌드 변화도 읽지 못했습니다. 즉 1990년대 말 한국의 음악계는 흑인음악으로 그 중심이 옮겨가고 있었지만, 한국의 CCM은 주로 백인풍의 발라드와 모던록에 치중하고 있었죠. 이런 가운데 헤리티지는 2000년대의 바뀐 세상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CCM 아티스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독교 음악의 영역은 모던워십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예배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달리 보면 기독교 음악의 영역이 이제는 '예배 안으로만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포스트 CCM'은 어쩌면 'CCM의 해체'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일반 음악계와 기독교 음악계를 구별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음악활동하는 '크리스천 아티스트 운동'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예배운동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예배음악의 역동성은 라이브 무대라는 데 있지요. 일반 음악계도 로큰롤은 거의 약화됐지만, 록 페스티발은 날로 큰 인기를 얻고 엄청난 인파를 동원합니다. 재즈도 그렇구요. 즉 음원은 약화되고 라이브는 성장한 것입니다. 예배 역시 성령의 임재와 현장감이 강조된 라이브 무대로서 계속될 것입니다. 그 공통점은 청중이 그저 감상에 머무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직접 참여를 통해 뛰어 노는 체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고백적 차원의 음악운동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음악 문화가 혼탁하기 때문에 이 또한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음악은 '예술'은 실종된 채 '상품'만 남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포스트 CCM 무브번트(movement)'는 의외로 중요한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와 동일한 정신을 가진 것이 바로 '인디'인데요. 그래서 저희 연구소가 위치한 '홍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음악의 상업화로 인해 무대를 잃어버린 청년들의 새로운 실험이 이루어진 특별한 지역입니다. 저는 기독교 음악이 인디 음악과 유사한 음악 현상으로 해석합니다."
-지금 홍대에 '인디'가 남아 있나요.
"중요한 질문입니다. 지금 홍대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가장 임대료가 비싸며, 가장 빈번히 미디어에 비춰지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역이 어떻게 '인디'이겠습니까? '홍대 문화'의 태동은 누구도 기획하지 않은, 철저히 자생적 운동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동네였죠. 그 영향력이 확장됐을 때 거대 자본은 이 지역을 '하이재킹(hijacking)'해 버렸지요. 사실 지금까지 모든 문화가 그러했습니다. 힙합도 흑인만의 '게토'였는데 백인들이 흡수하면서 가장 주류 음악이 돼 버렸지요.
홍대 문화도 그렇다고 봅니다. '홍대 인디'는 재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적 가치가 더 많은 지역으로 확장하는 데에 실패하고 오직 '홍대' 안에 갇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980년대에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신촌이나 종로에서 발전했지만, 그곳에 묶여 있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금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홍대 문화는 홍대에 갇혀 버렸습니다.
홍대 '인디'는 몇 번의 르네상스가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1990년대 후반 델리스파이스나 크라잉넛 등의 출현과 클럽데이가 주목을 받았던 경우입니다. 그 두 번째 붐은 '슈퍼스타 K2'에 '버스킹'하던 장재인·김지수 등이 나오고 장기하와 십센티 신드롬이 있던 2008년 무렵입니다. 두 번 모두 단지 한 명의 스타가 아니라 홍대와 인디가 함께 주목받았죠.
작년에 무한도전을 통해 밴드 혁오가 떴지요. 혁오는 그 결성과 활동에서 전형적 인디 밴드의 모습을 지녔지만, '인디'라는 단어는 주목받지 않았습니다. '인디'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상실한 것입니다. '인디펜던스(independence)'에서 출발한 단어 '인디'는 원래 '자본에서의 독립 선언' 같은 저항적이고 정치적인 단어였는데, 지금은 '마이너리그, 비주류, 모던록' 같은 식으로 의미가 축소됐습니다. 이제 홍대 문화는 인디하기 보다는 '힙스터'들의 핫한 문화와 허영이 주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처럼 '언어'에 관심이 많은데, '인디' 문화라는 것도 이제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합니다. '인디'와 '얼트' 문화는 전형적인 1990년대 용어입니다. 그 이전에도 인디 현상은 있었죠. 당시엔 그것을 '언더그라운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2016년 현 시점에서, 새로운 운동을 위한 새로운 용어가 요청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는 단어도 그래서 중요합니다. 매우 적절한 용어라서 저도 애정이 많습니다. 동시대성(Contemporary)이라는 것은 음악 장르이자 시대정신인데, 메시지와 장르가 동시대성을 표방한다는 가치가 있죠. 하지만 CCM이라는 단어는 이제는 '노골적으로 신앙고백하는 노래' 정도로 의미가 축소된 것 같아요. 언어를 해체해야 운동은 신선해지고 폭도 넓어집니다.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언어와 함께 태동합니다. 이제 '인디' 하면 무슨 말인지 모호해졌는데, 어떤 언어들이 대중들에 의해 등장할지 기대가 됩니다."
-'청년'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개인들이 너무 살기가 힘들어져서, 청년문화가 공동체 운동으로 확산되질 못합니다. 개인적으로만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 같습니다. 그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청년들이 다른 대안, 주류에 대한 저항, 사회에 대한 개혁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예전에는 이상과 현실의 충돌에서 나오는 것이 예술적으로 극대화돼 저항정신으로 표출되곤 했습니다.
1960년대 '소울(Soul)'은 단지 흑인풍 보컬이 아니라 '흑인운동'의 정신을 뜻했습니다. '알앤비(R&B)'는 하나의 음악 장르이지만, 소울은 장르일 뿐 아니라 정신이었습니다. '포크(Folk)'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1970년대 음악이 '통기타 음악'이었지만, 대부분 통기타로 하는 어쿠스틱 발라도 형식이었지 '포크'라는 저항성은 없었지요. 미국에서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모던 포크'는 저항성이 핵심이었습니다. 통기타만 받아들였지, 저항정신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습니다.
거미가 '소울 가수'일까요? 씨앤블루가 '록 가수'입니까? 소울과 록은 스타일이 아니라 정신이며 삶의 방식이며 노선을 표방합니다. 홍대 음악도 인디 정신은 없어지고 마이너 또는 힙스터의 느낌만 남아 있습니다. 1980-90년대 들국화와 김현식과 시인과촌장과 김광석 등은 그렇게 음악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이들의 자율적 활동을 위해선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있어야 합니다. 1980년대에는 라디오가 있었고, 2000년대까지는 인터넷이 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미디어 포맷이 필요합니다. MTV를 통해 TV 스타들이 나왔듯 말입니다. '강남 스타일'의 싸이는 '유튜브(Youtube) 스타'이지요. 다음은 뭘까요? 굳이 말하자면 SNS가 있겠지만, 꽤 오래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회 모든 영역이 거대 자본에 의해 장악당했기 때문이지요. 청년들의 저항적 의식이나 연대의 연습이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홀로 성공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국 변방에서의 정신운동이 필요한데, 요즘은 그게 불투명합니다."
-기독교계의 이론적 문화운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고담준론'에 치우쳐 있고, 실제적 문화사역은 실력이 다소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희 연구소의 목표가 그것입니다. 양자를 중간에서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아티스트들을 좀 더 끌어올려 메시지 차원에서 문화이론들을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철학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문화이론을 보면 헤게모니 이론을 발전시킨 그람시 같은 좌파 학자들이나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했던 마셜 맥루한,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는 시대를 지적한 장 보들리야르 등의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은 이들의 이름과 이론에 탄탄한 지식과 기초가 필요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이들이 그저 복잡한 이론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 깊게 녹아 있는 현실을 놀라운 통찰로 지적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둘째로는 현실에서 요즘 사람들은 비단 어려운 책만 읽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공돌이(공대생)'들도 욕 들어가면서 헤르만 헤세 책을 읽었지만, 요즘엔 지루해서 읽지 않습니다. 웹툰으로 문학을 소비하는 시대에, 어느 정도 돼야 쉬운 걸까요. 신학생들도 디트리히 본회퍼나 폴 틸리히, 프랜시스 쉐퍼 등의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신학 과목들이 신학생들에게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책은 사실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지요. 요즘 톰 라이트 열풍이 부는데, 사실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서 모임이 필요합니다. 이런 책들이 일상생활과 연관돼 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학운동의 확장이지요.
요즘 청년들은 활자에 익숙하지 않고,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심지어 성경도 읽지도 갖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바이블 앱'을 통해 성경을 보는데, 하단에 모텔 광고가 나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성경에 광고를 넣는다는 것, 얼마나 잘못된 발상입니까. 말씀에 주목하지 말고 광고 보라는 것 아닙니까? 세속화의 한 상징 같습니다."
-말씀처럼 성과 속을 철저히 분리하는 이원론이 해결책이 아니라면, 기독교인들은 대중문화를 어떠한 자세로 바라보고, 또 향유해야 할까요.
"대중문화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며 이분법이나 이원론이 아닌 선한 사역을 위한 문화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하지 않는, 균형 있는 비평적 수용 역할을 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한 문화 해석과 비평을 위한 크리스천 학습 공동체와 클럽 활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흙수저'와 '헬조선'을 말하는 요즘 청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 책 명곡묵상 2장에 나온 곡들을 통해 많이 이야기했지만, 몇 안 되는 기회를 잡기 위한 개인주의적 경쟁을 넘어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안정적인 삶,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입니다. 기존의 중산층 가치와 미디어가 보여 주는 욕망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위한 과감한 모험과 독립적 사고가 중요합니다.
현재의 꽉 막힌 상황은 어쩌면 새로운 삶을 위한 계기입니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정체성입니다. 타인의 평판이 아니라 내 삶과 꿈을 응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여야 합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인데, 예술가들은 누구보다 '영적'인 것 같습니다. 책 내지에 적힌 '종교는 모든 문화에 의미를 주는 실체적 내용이며 문화는 종교의 근원적 관심이 표현되는 형식이다'라는 폴 틸리히의 말처럼 문화예술 분야만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무슨 분야든 깊이 파고들면 요새 '갓OO', 'OO신'이라고 하듯 '신'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예술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의 창조성의 발현입니다. 존재의 창조는 하나님이지만 모든 만물에 이름을 주는 의미의 창조는 인간의 몫이지요. 그것이 바로 '문화 사명'입니다. 인간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문화 명령이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세속문화는 인간 내면의 종교성을 반영합니다. 폴 틸리히의 말은 모든 문화를 주의 깊게 살피면 그 안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 관심은 바로 종교적이라는 것이지요. 문화는 질문하고, 종교는 답합니다. 즉 문화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그 해답은 종교가 제안하는 것이지요. 세속 문화에는 비그리스도인들의 질문이 있으니, 그 질문에 귀 기울여야 올바른 답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종교적 질문'을 하는 예술작품과 '종교 예술'의 차이란 무엇일까요.
"종교 예술은 종교적 대답을 문화적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이지요. 다만 그 형식은 지극히 세속적 양식과 유사할 것입니다."
-연구소의 비전과 교수님의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요.
"요즘 교회 밖에서 대안적 기독교 공동체가 정치, 경제, 복지, 문화, 성서, 인문 등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문화를 비평하고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문화운동입니다. 그 방향은 학술적인 작업과 저널리즘, 여러 강연, 소그룹 모임, 예술상담코칭 등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연구소는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훌륭한 사람들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빅퍼즐 사역이 지금까지는 청년세대가 중심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로까지 그 활동을 확장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