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자기 성찰 -독백과 편지 그리고 여행」 펴낸 고시영 목사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고시영 목사가 최근 「인문학적 자기 성찰 -독백과 편지 그리고 여행」(기독교인문학연구소, 서울장신대학교 출판부)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 고전 문학·영화·그림·음악 등을 소재로 한 목회적·신학적 통찰, 그리고 성지순례기를 담았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들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해, 목회자뿐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다. 다음은 이 책의 저자인 고시영 목사와의 일문일답.
-「인문학적 자기 성찰 -독백과 편지 그리고 여행」을 집필한 배경은 무엇인가.
"제가 본래 문학평론을 전공했고, 은퇴를 하고 나서 기독교인문학연구소를 서울장신대학교 안에 세우고 이사장을 맡게 됐다.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인문학적 예화를 다양하게 인용하면 듣는 분들에게도 좋고 목사님들에게도 차원 높은 설교를 할 수 있는 동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내게 됐다.
이 책은 비매품이다. 부활교회를 17년, 서울장신대 총동문회를 15년, 전국신학대학총동문협의회(신총협)를 10년 섬겼는데, 돌이켜 보니 그동안 저를 도와 준 고마운 분들이 참 많더라. 은퇴하고 나니 그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일일이 찾아뵙기 어려워서 이 책을 통해 전하려 했다. 그래서 책 서문에도 감사의 뜻을 담았다. 일종의 감사 예물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인문학적 예화들, 스스로에게 하는 고백, 좋아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의 편지, 성지순례하면서 느낀 것들을 담은 기행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제목도 그렇지만 내용도 시적으로 썼다. 되도록 한눈에 불편함 없이 볼 수 있도록. 인문학적 예화들의 경우 작품을 인용한 뒤 짧게 그 의미를 내 나름대로 부연했다. 문학 50편, 영화 10편, 그림 30편, 음악 10편 정도 인용했는데, 그 목록을 뒤에 정리해 두었다. 그 작품들을 직접 다 감상한다면 더 좋겠지만, 목사님들에게 시간이나 기회가 부족하니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단편적으로나마 인문학 작품들의 핵심을 파악하고 예화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원래 목회보다 먼저 문학을 꿈꿨다. 성균관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문학교육을 전공해서 이미 문학적 바탕이 있었다. 그 뒤에 염광여자상업고등학교(현 염광여자메디텍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게 됐는데, 그곳이 기독교학교여서 교사들이 매일 아침 돌아가면서 설교를 전하는 전통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저도 여러 번 설교를 했는데 초대 이사장 김정렬 장로님께서 들으시고는 목사를 해 보라고 권면하셨다. 그래서 신학을 하고 염광여고에서 교목으로 있다가 부활교회를 개척해 일반 목회를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문학과 목회를 접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도 문학적인 면이 있지 않은가. 욥기, 전도서, 시편, 아가서 등은 일종의 지혜문학이다. 신학과 문학, 신앙과 인문학, 이렇게 접목시키면 좋을 것 같았다."
-목사님의 목회에는 인문학을 어떻게 접목시키셨나.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에게 3가지 기본을 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앙, 인격, 교양이다. 이 요소들을 다 잘 갖추면 최고로 멋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 30년 목회를 했다. 설교도 인문학적인 내용으로 많이 전했다. 수사학적·시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예화를 들 때는 전부 인문학에서 자료를 뽑았다.
그리고 결정적 계기는 수요 인문학 강좌였다. 교회를 개척했는데 예수 믿으라고만 해서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더라. 그런데 그때 서울대에서 추천도서 100권을 발표했다. 그 도서들을 주제로 매주 수요일 강의를 했더니 주일에는 오지 않던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더라. 우리 교회 교인들도, 다른 교회 교인들도, 비기독교인들도 모두 만족해했다. 요즘은 특히 인문학의 시대인만큼 이러한 방식의 목회가 전도의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설명해 주신다면.
"무명 용사들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끄는 역사에 대해. 계백이 위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웅적 행보 덕분이기도 했지만, 5천 결사대 덕분이기도 했다. 그를 따르던 이들이 그와 함께 죽지 않고 흩어졌다면 계백이 위인으로 남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이런 무명의 용사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의 아픔이나 열망이나 외로움을 잘 어루만져 주고 용기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신앙적인 것들 외에 제 평생을 지탱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자유, 낭만, 이상이다. 이 책의 내용들도 이 세 가지와 연관된 것들이 90% 이상이다. 저는 성경 인물들 가운데 바울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정말 신앙도 인격도 훌륭하고 교양도 갖춘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다. 바울을 모델로 해서 신앙과 인격과 교양을 잘 조화시키면 최고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낭만적 사람은 자기에게 솔직한데, 바울 역시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이며 곤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은 세계 복음화라는 이상을 품고 평생을 살았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들도 바울을 위대한 선교사나 신학자로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도 바라보면 우리 시대에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지 않겠는가. 목회자들이 대부분 가난 때문에 고통을 겪고 내적 갈등에 빠져 부패하거나 자포자기하는데, 그 속에서도 자유를 누리고 낭만과 이상을 품는다면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문학을 목회에 접목시키는 것에 대해 비판은 없었나.
"기독교인문학이라는 말을 아마 제가 최초로 사용했을 것이다. 기독교와 인문학이 서로 충돌되지 않느냐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인문학은 기독교 입장에서 인문학을 비판하고, 기독교와 인문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특히 설교의 경우는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을 상대로 전하는 일이다. 그러니 인간이 어떤 존재냐를 이해하면 말씀을 전하는 데 소통을 다양화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진리는 영원불변하지만, 그것을 담는 그릇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지 않겠는가. 요즘 인문학 열풍이 불어서 교인들도 인문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니, 그런 측면에서 기독교인문학은 충분히 좋은 대안이다.
물론 인문학 쪽으로만 너무 치우쳐 기독교적인 색깔을 잃어선 안 된다. 저는 그런 것을 굉장히 경계하기에 항상 강의할 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엔 성경으로 돌아간다. 성경과 비교해서 비판을 하기도 하고, 공통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조언할 내용이 있다면.
"목사님들에게는 2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는 인문학적 예화를 들면 설교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가지면 신앙적으로뿐 아니라 삶에 전체적으로 여유와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님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데 좀 더 시간을 많이 할애했으면 좋겠다.
교인들에게는 멋진 그리스도인이란 신앙과 인격과 교양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대개 믿음은 상당 수준이지만 인격과 교양이 약간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교회 분쟁을 보면 믿음 있는 사람들끼리 더 잘 싸운다. 믿음에 인격과 교양이 약간 가미되면 분쟁이 생겼을 때 충분히 서로 타협을 할 수도 있고,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을 중심으로 해결점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격과 교양의 수준을 올리지 못하고 믿음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열심히 믿는 사람들끼리 갈등 구조를 만든다.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주장하고. 믿음과 인격은 같이 가는데, 대부분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은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한국교회가 이대론 안 되고, 교인들도 목회자들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모두 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달라질 것인가. 그것을 고민한 하나의 흔적이 이 책을 통해서 나타났다. 이 책 한 권이 뭔가 아름다운 충격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