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니모를 찾아서’ 후속작 ‘도리를 찾아서’
2003년 개봉한 '니모를 찾아서'는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 '니모'를 잃은 아빠 흰동가리 '말린'의 눈물겨운 바닷속 모험 이야기를 통해, 잃어버린 아들을 애타게 찾아나서는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7월 6일 개봉한 속편 '도리를 찾아서'에서는 전편에서 말린과 함께 니모를 찾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친구 '도리'가 주인공으로 나섰다.
전편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물고기 '도리'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날 것이다. 때로는 말린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건망증 탓에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계속 헤엄쳐'(Just keep swimming)를 외치며 무한 긍정을 발휘했던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을 말이다. 이번 속편에서 도리는 어느 날 갑자기 기억도, 부모님도 잃게 된 후 다시 기억과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바닷속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산호초 속에서 평화롭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말린과 니모, 그리고 도리의 일상은, ‘모태 건망증’ 도리가 ‘기억’이라는 것을 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단편적으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던 도리는 자신이 살던 곳이 캘리포니아 바다생물연구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분명 지금도 부모가 자신을 찾고 있을 거란 확신을 갖고 가족을 찾기로 결심한다. 바다거북이 떼의 도움을 받아 크나큰 바다를 가로질러 이들은 드디어 도리의 고향에 도착하지만,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도리는 홀로 가족을 찾아나서게 된다.
도리는 위기에 순간에도 타고난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기다운 방식으로 고난을 헤쳐나간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위장술의 대가 문어 '행크', 어린 시절 친구 고래상어 '데스티니', 음파 탐지 능력이 고장났다고 믿는 벨루가 고래 '베일리' 등 새로운 친구들을 얻게 되고, 이들의 도움으로 유쾌한 여정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리가 부모를 찾아 나서는 줄거리인데 왜 제목은 '도리를 찾아서'일까? 도리는 부모를 찾기 위해 자신이 잊고 지냈던 기억을 다시 찾아간다. 부모를 찾는 도리의 모험은 '자아 찾기'의 여정인 셈이다.
도리의 자아 찾기를 기독교인의 신앙에 빗대자면, 하나님과 온전히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모를 잃어버린 도리의 모습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과 같다. 우리 또한 도리처럼 기억상실증(?)으로, 혹은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틀림없이 있다는 사실이다. 도리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의 존재가 생각해냈듯, 그리고 물고기들이 본능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듯 말이다. 마침내 부모도 자아도 되찾은 도리처럼, 하나님을 찾을 때 내가 진정 누구인지와 어떤 존재인지를 뚜렷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부모가 분명 아직도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라는 도리의 믿음은, 그가 부모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원동력이 된다. 도리는 작고 예쁜 집에서 살던 아빠와 엄마를 기억해 낸 것을 시작으로, 보라색 조개를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건망증이 심한 자신을 위해 부모가 조개로 집을 찾아오는 길을 만들어 줬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도리가 마침내 부모님을 찾아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는 '해피 엔딩'이다. 도리가 부모의 거처를 찾을 수 있었던 단서는 바로 수많은 조개들로 만들어진 수 갈래의 길. 부모는 건망증이 있는 딸 도리가 어디서나 집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매일 모은 조개로 여러 개의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도리와 부모의 극적 상봉 장면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조개를 한움큼 끌어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꽤나 감동적이다.
하나님을 오해해서, 혹은 영적 기억상실증으로 하나님을 떠난 이들이 있다면, 주저 말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길 권한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상거가 먼 우리를 위해, 혹여나 우리가 길을 찾지 못할까 봐 오늘도 조개를 한 아름 모아 길을 만들고 계신다. 그리고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당연히’ 돌아올 거라 철썩같이 믿으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