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그곳을 그토록 그리워했던 여인, <덕혜옹주>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그리스도인인 당신에겐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가?

▲영화 스틸사진 ⓒ영화사

▲영화 스틸사진 ⓒ영화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나라를 잃고 일본으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향해 덕혜옹주는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비록 억눌려 있으나 반드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 조국이 그리웠던, 나약했던 마지막 황녀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영화 <덕혜옹주>는 고종의 딸로 태어나 일본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비운의 황녀, 이덕혜(손예진 역)의 삶을 그린다. 만년의 고종은 기우는 국운의 슬픔을 어린 덕혜를 보며 달랬지만, 이내 운명을 달리하고 만다. 왕의 승하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덕혜의 삶에도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끝내 그녀는 나이 만 13세가 되던 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복남매인 영친왕과 함께 일본에 머물게 된 덕혜옹주. 이때부터는 그녀는 조선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운 어머니(귀인 양씨)가 있는 곳,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조국은, 그 뿌리를 자르려는 일본의 압제 속에서도 그녀를 지탱했던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보탠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덕혜옹주가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일본인 소 다케유키와 결혼했으며, 정신병을 앓기까지 했다는 것. 그러다 해방 후 1962년 비로소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다 1989년 세상을 떠났다는 것 정도가 이미 알려진 덕혜옹주의 삶이다.

그러나 그녀가 일본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그야말로 상상력에 맡겨야 하는데, 영화는 그것을 '그리움'과 '책임감'으로 풀어낸 듯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영화에서 자주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고향에 둔 어머니가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딸이자, 한 나라의 '마지막 자존심'인 옹주라는 그녀의 신분이 그처럼 복합적인 까닭이다. 독립운동을 했던 김장한(박해일 역)에게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던 그녀의 뒷모습이 그토록 가여웠던 것도 또한 그래서다.

▲당신에겐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가? ⓒ영화사

▲당신에겐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가? ⓒ영화사

여기에 한 가지 더. 많은 이들이 그녀의 존재를 점점 잊어갔다는 점, 바로 이것이 영화 속 덕혜옹주를 더욱 가련하게 만들고, 이는 마치 힘없던 그 때의 조선,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너와 나'의 모습과도 같아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였으나 '들을 빼앗은' 나라에서 그 누구보다 애처로운 삶을 살았다. 만약 그녀가 일본에 순응하고 좁지 않은, 넓은 문을 택했다면 그나마 일본에게서 명목상 왕족으로서의 삶은 보장(물론 끝까지 그랬을 거라 장담할 수 없지만)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 속 덕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져야 할 짐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돌아가야 할 곳과, 우리가 누구인지를. 물론 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어떠하리라는 것 역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다시 그리워하자. 다시 책임감을 갖자. 혹여 자신이 나약하다 느낀다면, 부디 영화 속 덕혜옹주의 이 한 마디를 기억하자. 설사 다른 많은 이들이 당신과 그의 나라를 잊을지라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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