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란, 또 다른 언약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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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아듀 2016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추억이란 항상 과거로 흘러가는 강이며 언제나 새로운 현재이다.

단상들과 경험했던 것들의 이미지로 흘러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사소한 흔적 하나 하나와 심지어는 의미 없는 소음 같은 것들까지도 마치 새 옷을 입듯 새로이 태어나는 것, 그래서 삶은 그 추억으로 더 풍성하고 더 향기롭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연일 40도를 넘는 불볕 더위 속에서 나는 두 주간 인도에 있었다. 국제회의가 열리는 호텔을 제외하고는 한 발자국만 도심으로 들어서도 찌는 듯한 더위에 숨이 헉헉거렸다. 더위 때문에 이곳 저곳 둘러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 직전에야 타지마할을 방문하게 됐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날은 종일 비가 내려 더위가 누그러들고 기온이 매우 쾌적해졌다.

여정의 즐거움이 살아났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간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문화와 풍습이 다른 70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과의 공동 생활이었으니, 책임을 맡은 나로서는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었기에 타지마할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유쾌하였다. 안개비 속에서 다양한 빛깔들이 무너져 내려와, 산들바람과 함께 몸을 섞었다.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제국의 대표적 건축물, 황제 샤자한이 총애하던 부인 뭄타즈 마할을 위하여 만든 무덤 건축물, 그녀가 죽은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완공까지 22년이 걸렸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사쟈한은 건축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손목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타지마할 그 이상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니, 예술의 허상 앞에 무참하게 희생당한 생명들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날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예술의 보석을 몸에 지닌 듯, 두 어 시간 이상 궁을 걷는 내 발걸음은 천상에 있었다. 아름다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 땅과 들과 물과 짐승과 남녀와 꿈꾸는 자연을, 그리고 이상과 열정과 광기, 시는 이들을 더 크게 더 깊게 더 높게 느끼고 표현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내 속에서 에너지가 넘쳐났다.

궁 밖 계단에 섰을 때 아지랑이가 감긴 먼 산이 눈부신 무지개로 관을 쓰고 타지마할보다 더한 모습으로 가까이 왔다. 무지개는 찬연한 빛으로 왔다가 곧 사라져 가지만, 그 속에서 산의 매력은 하늘의 매력이 되고 별들은 총총 빛난다. 무지개로 인해 우주 전체가 하나의 산을 이루어 달콤하고도 심오한 찰나를 이룬다. 그래서 무지개는 신비 자체이고 언약의 상징이다.

추억은 무지개처럼 삶에 거하는 신비이지만, 지극히 사소한 일상으로 이루어진다. 작은 단상들과 평범한 경험들과 붙잡아 둘 수 없는 이미지로 오는 꿈꾸는 현재이고 기대하는 내일이다. 우리가 늘 젖은 땅의 향기를 그리워하며, 그 곳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들을 부러워하며, 그 품이 내는 열매를 탐하기에, 때때로 추억은 우울과 회한이라는 악마를 동반한다. 그러나 내려놓고 버릴 수도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추억은 항상 승리한다. 언약의 무지개인 때문이다.

2016년, 그 한 해가 추억으로 돌아간다. 바람에 찢기고 부서지면서도 끊임 없이 바람을 쫓아다니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과거의 강으로 흘러든다. 허공에서 바람을 받으며 흩어졌다 다시 모이면서 끝임 없이 제 모습을 바꾸는 구름처럼 독립적이다. 인생의 여정은 그 바람의 횡포 같은 추억으로 이루어진 오늘이다. 부서지고 찢기면서도 오직 한 가지 열망에 목숨을 거는 구름처럼, 자유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의 길이다.

새해 새날의 아침이 오거든 동산 나뭇잎에 내려앉은 이슬을 보라. 그로 인해 잎들은 얼마나 싱싱한가. 밤새 우주는 얼굴을 씻고 생기를 공급받고 빛나는 태양을 당당하게 맞이한다.

추억이란 삶에 내리는 이슬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쉬임 없이 변하며 새로 태어난다. 무지개로 관을 쓴 새해는 추억을 위해 선물 받은 새날들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 문을 열라  잎사귀가 달린 포도송이처럼, 어린 송아지처럼, 즐거운 맘으로 문을 두드리라. 삶은 창조의 영감에 빛나는 시인의 눈빛처럼 빛을 발하고 추억은 다시 언약의 무지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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