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데이트 칼럼]
[크리스천투데이 결혼정보 & 웨딩 특집] 결혼, 그 높은 고지를 향하여
이 손으로 당신의
슬픔을 닦아줄 것이며
내가 당신의 와인이 될지니
당신의 잔은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촛불로 나는 어둠 속에서
당신의 길을 비춰 주리다.
영화 ‘유령신부’中 혼인서약
크리스천 데이트를 통해 만남을 시작해 결혼까지 이어진 커플들의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크데’의 시작은 연애에 소외된 크리스천들을 노린 틈새시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비스 대상의 폭을 더 늘렸다면, 보다 많은 성공을 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한 소개서비스를 시작했던 이유는, ‘건강하고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 대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앱을 사용하는 당신에게 필요 이상 부담감을 주고 싶진 않다. 결혼을 전제로 한 무거운 만남만을 종용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앱을 만나게 된 당신, 그리고 짝을 찾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 청년들과 함께 ‘건강하고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 대한 소망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은 가정을 일구는 일, 다시 말해 결혼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결혼, 아저씨와 아줌마가 되는 길
우리 누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해, 오랜 맞벌이 후 얼마 전 득남을 했다. 귀여운 아이는 순조롭게 자라나고 있고, 빠듯한 살림이지만 성실한 남편과 함께 먼 미래의 안녕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누나에게 충격적인 일상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가씨인가? 아줌마인가?” 정도의 멘트를 듣던 누나가 출산과 함께 영락없는 ‘아줌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누나는 지금 충격 가운데에서 간신히 쿨한 상태다.
물론 아줌마란 단어에 나쁜 의도는 없다. 일면 친근한 면도 없잖아 있다. 그럼에도 누나는 아무에게나 막 불리는 듯한 신분격하의 느낌을 씻을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로맨스의 절정을 달리는 결혼을 했다. 아직도 달콤한 신혼인 것만 같은데, 어느새 야채 가게 아저씨도, 동장 아줌마도, 지나가는 유딩까지 나를 아줌마라고 불러댄다. 그렇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혼은 아줌마와 아저씨가 되어가는 과정이며 현실적인 이야기다.
1. 주말이 되면 남편이 아침을 해준다. 침대에서 조금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언제 일어났는지 토스트를 굽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커피, 나는 오렌지 주스와 함께 따뜻한 토스트를 냠냠. 남는 시간은 서로 뒹굴대며 빌려온 만화책을 읽다가, 저녁은 맛있는 걸 먹자며 마트로 가 한아름 장을 봐온다. 아내가 늦은 저녁을 만들기 위해 분주한 시간, 남편은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란히 앉아 소고기 리조또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2. 오늘도 어김없이 소파에 수건이, 침대 밑엔 어제 벗은 양말이 뒹굴고 있다. 요즘은 남편이 일이 많은가 보다. 어머님 생신이 다가오는데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할지 상의도 못해봤다. 서로 얼굴을 맞대면 항상 피곤하다는 말만 오간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뭘로 한다. 귀찮아서 마트도 못 가겠고, 사실 할 줄 아는 요리도 얼마 없다. 그냥 우유에 씨리얼 말아먹을까. 아, 맞다 우유도 떨어졌구나.
과연 1번과 2번 중 어느 쪽이 결혼에 가까울까. 물론 결혼생활 안에는 1도 있고 2도 있다. 하지만 2가 훨씬 더 많은 빈도를 차지한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혼생활을 꿈꿀 때 환상에 기대기를 선호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환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버릴수록 보다 의연하고 지혜로운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은 부르심이다
가정사역자로 유명한 게리 토머스는 <사랑과 행복 그 이상의 결혼 이야기>를 통해 결혼생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결혼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거룩한 부르심이다. 만일 행복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2,3년마다 한 번씩은 결혼을 해야 할 것이다.”
통계적으로 우리는 결혼 이후 35,000번의 식사 준비와 10,000~40,000번의 이불 정리, 7,000번의 화장실 청소를 경험하게 된다. 결혼은 특별함과 동시에 매우 일상적인 과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선교지로 부르심을 받듯, 우리는 결혼으로 부르심을 받아 보다 책임감 있고, 배려가 필요한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한다면 우리가 맞이하게 될 일상은 불행으로 다가올 것이다. 많은 기혼자들이 실제 결혼생활을 겪고 나서 결혼이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곤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찾아오는 일상에 성실히 임했을 때 행복이라는 결과물이 조심스레 스며든다고 말한다.
결혼은 월화수목금토일을 나와 그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함께 먹고, 자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웃고, 울고, 세금을 계산하고, 부모님 생신을 챙기고, 설거지 당번을 정하고, 가정의 규칙을 정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며 살아가는 것.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사명을 완수하는 비교할 수 없는 사역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가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때때로 결혼한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돈 벌어다 주려고 결혼했냐?”, “내가 밥하려고 결혼한 줄 아나?”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결혼하려고 하는 건가? 우리는 돈 벌어다 주고 밥 해주려고 결혼하는 게 맞다.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서로를 위해주고, 이해하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 보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과정에 성실히 임하여 믿음의 가정이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
결혼이 장사가 되어가는 현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보다 결혼과 사랑에 대해 건전하고 현실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세운 믿음의 가정이 다가오는 세대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기준이 서기 마련이다. 실제로 ‘크데’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부부들은 서로의 배우자관을 공유하다가 확신이 생겼다고 이야기 한다.
일하러 가는 옷과 연회장에 가는 옷이 같을 순 없다. 물론 당신에게 결혼생활이 일상복일지 드레스일지 판단은 본인의 몫이지만, 모쪼록 올바른 배우자관을 확립하고 이성을 바라보길 원한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출처] 크리스천데이트 christiandat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