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3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서론>
"어두움에는 빛이 있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로 부활주일 전 주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장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고 나귀의 발 아래 깔고 온갖 환영을 다 했었습니다.
군중들의 환영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번에 제가 대만에 갔었을 때도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 줄을 서서 환영을 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얼마나 큰 환영을 받으셨을까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환영을 하던 그들이 한주일 만에 마음이 탁 돌아서서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우리의 왕이라고 환영을 하던 그들은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고함을 쳤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마음이 조석변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비참합니다. 바로 한 주일 만에 사람 마음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사랑은 하더라도 믿지는 말아라.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면서 사랑하니까 내가 손해를 봐도 사랑하지요. 그러나 믿는 것은 불신을 당하면 다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많은 사랑을 하십시오. 그러나 믿지는 마십시오. 믿으면 마음속에 큰 시련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백성들은 길거리에서 서서 외쳐 말하기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고함 고함을 쳤습니다.
여리고의 길목에 서서 늘 구걸하던 맹인 바디매오는 앞을 전혀 못 봤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눈을 뜨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수많은 군중들이 그 앞을 지나가면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니까 예수님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있는 힘을 다하여 부르짖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너 장님, 거지 바디매오 주님이 관심을 가질 것 같느냐? 잠잠하라. 시끄럽다."
그렇게 해도 바디매오는 뛰고 구르면서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고함을 쳤을 때 예수님이 가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내게로 오라고 했었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 앞으로 나갈 때 그는 거지 의복도 벗어버리고 돈주머니도 던져 버리고 자식도 던져 버리고 빈 손 들고 그리스도에게 뛰어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바디매오야 너 거지 옷을 입어야 동냥을 할 수 있는데 그 옷을 벗어버리면 너 장차 동냥을 어떻게 할 것이냐? 너 돈 주머니는 왜 그렇게 던져 버리고 떠나가느냐?"
바디매오는 무관심했습니다. 바디매오는 하는 말이 내가 예수님만 만나면 인생이 달라지는데 이제 거지노릇 안 한다. 예수님 없을 때 거지노릇하지 예수님 만나면 거지노릇 안한다. 내 인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갈 필요 없다. 예수님 앞에서 서서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보고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바디매오가 돈보따리 구하러 돌아섰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떠나갈 때 예수님을 따라서 같이 떠나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면 옛사람은 달라져 버리고 새사람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옛날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면 새사람이 된다 말입니다.
우리가 사마리아의 한 여인이 고달픈 人生의 목마름 속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인생이 뿌리째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신랑감을 잘 만나면 인생이 좀 좋아지겠지 싶어서 신랑을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사람 줄을 세워 놓고 바꿔도 인생이 안 달라져요. 여섯째 남자하고 살되 그는 신랑도 아니고 오다가다 만난 사람으로서 사는데 아무런 행복을 느끼지 못했으나, 예수님을 만나자 그리스도 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르자 인생이 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을 회피하던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도하는 전도자가 돼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가 인생을 이렇게 살면 이렇게 희망이 없이 목적도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느냐 탄식을 하겠지만 인간의 힘으로 안 달라져요. 애를 쓰고 힘을 써도 안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을 얻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신분도 다르고 각기 처한 상황도 달랐지만, 예수님을 만나자 자기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나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두움에 처해서 살고 있더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빛의 세계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은 우리 인생을 사는 동안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사람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안 달라질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뿐 아니라 영원한 삶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왔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변화가 일어날 것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아주 조용하고 잠잠하고 아무 사람들의 훼방을 받지 않는 그런 가운데서 내가 예수님과 만날 수 있으면 제일 행복합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성령이 반드시 감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시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러 오면 반드시 성령이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존경을 받는 니고데모라는 사람도 그는 나이가 수월찮게 많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바리새교인이요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상당히 존경을 받는 선생님인데 예수님을 기어코 만나야 되겠다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오신 분이 아니고는 도저히 하시는 일을 다른 사람은 할 수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틀림이 없으니 왜 왔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가봐야 되겠다. 하루 밤에 캄캄하고 어두울 때 사람들이 옆에 사람을 분별할 수 없을 때 그는 일어나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예수님 앞에 서서 "주님, 주님은 틀림없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아니면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만히 쳐다보고 난 다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나를 알아볼 수도 없다"고 말씀하니까 깜짝 놀라고, "아니 내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나 같이 나이가 많은 영감이 우리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나와야 합니까?" 예수님이 "그런 말이 아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그렇게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은 회개를 말합니다. 살아가는 생활 방향을 바꾸는 회개를 하면 그 다음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께서 너희 속에 들어와서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육을 가지고서 아무리 하늘나라를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한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육신의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알려지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성령님께 휩싸여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지 우리가 지혜와 총명으로 계산해서 알 수 있는 하늘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물로 회개를 하고 우리가 잘못한 것은 씻고 그 다음에 하나님 성령으로 계시를 주기를 기다리면 성령이 오셔서 하늘나라를 여러분에게 비춰주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비로소 우리가 도저히 육신으로는 깨달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늘나라를 여러분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1. 성령의 감동에 순종함으로 주님을 만남
아름답고 조용한 중에 미풍 같이 스치며 지나가는 은혜의 성령으로 깊이 우리가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깨닫고 믿고 영접하여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가정에서 주님을 만남
여기에 고요하고 잠잠하고 평안하게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떠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는 전통을 가진 집에서 태어나므로 어려움 없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집안 대대로 이어오는 믿음의 전통에 싸여 어려움 없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을 볼 때 나처럼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거꾸러지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그런 체험 없이 내가 예수를 믿고 나니까 내 속에 들어온 예수님은 내 마음만 점령한 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들 마음에 다 노크를 해서 성령이 들어와서 온 식구를 다 전도해서 믿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쉽게 예수를 믿느냐. 참 희한한 일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어렵지 않게 구원을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홉 형제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 중에 내 동생 조용목 목사님은 안양에서 목회하고 있지만 교회를 지금 나보다 더 큰 교회를 짓고 나보다 더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면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요사이 늘 감사한 것은 우리 부모님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 감사하거니와 우리 형제들 지상에 있는 형제들이 예수를 만나서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감사하기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 형제 중에 누나나 동생이나 안 믿고서 나이가 늙어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제가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누님은 8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춤추고 있지 않습니까? 권사 춤춥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시면 이런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성령을 만나기는 힘들지만 이미 예수를 믿는 집안에 태어나서 그 집안에 사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 그대로 예수님을 믿어서 새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 속으로 믿고 입술로써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면 구원을 받아요.
무슨 의식과 형식을 다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구원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죄를 청산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신다. 예수님은 날 위해서 보혈을 흘려서 날 구원해 주셨다. 믿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천국가게 돼요.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 안 믿다가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을 구주로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는 길을 간단하게 열어 놓은 것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혈통이 좋아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결심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생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주신 것을 내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예수를 믿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연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고 부모님 손잡고서 교회에 나가며 복음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그런 운명이 평탄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평탄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구원받지 못하고 부모님들 슬하에서 조용하게 잘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여러 가지 고난과 환난을 통해서 자기가 깨어져서 주님을 믿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대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죄책과 절망,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 죽음과 무의 절망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다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문제가 해결되어서 영생을 얻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자랑을 해도 죄책과 정죄는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늘에 천둥, 벼락이 치면 온 세상 마음이 다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와~ 내가 벼락 맞을 짓 안했나? 그런 마음을 생각해 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천둥 벼락이 치면 여러분은 몰라도 나는 날 보고 벼락 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할 때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좀처럼 회개 안 해요.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폭풍우가 불어올 때 마음속에 회개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책과 정죄를 느끼게 되면 예수님께 구원을 청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 날 살려주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허무와 무의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도 한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데 무슨 뜻이 있느냐. 무슨 의미가 있느냐. 뼈가 부러지도록 농사를 하고 장사를 해도 겨우 삼시 세 때 입에 풀칠하는 것밖에 못하는데 이것이 무슨 인생이냐. 그렇게 좌절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좌절하는 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에 처해서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공포 가운데 떨 때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찾아와서 그 마음문을 두드리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여러분이 만나면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꿈과 환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오셨다가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들어오면 성령이 마음을 점령하시고 마음에 예수님이 거하시면서 여러분에게 꿈과 환상을 주시고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진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입을 넓게 열고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극한 고난 중에 주님을 만남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3-2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을 우리가 알아보고 누리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써 여러분과 하나님과 화목할 제물로 예수님을 삼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지라도 예수님을 의지하면 그 보혈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여러분을 품어 주시고 여러분이 하나님 품에 안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써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때부터 의롭다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으로 삼아 주시고 하늘나라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하셔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행한 일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우리 할 일을 다 하시고 나신 다음에 우리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책과 정죄에서 죄를 다 주님이 책임지시고 용서와 의를 주시고 허물을 다 사하시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여러분과 나의 아픈 병을 다 짊어지시고 여러분에게 치료를 허락하여 주시고 저주를 다 책임지셔서 저주에서 놓여남을 받고 잘 살게 만들어 주시고 죽음을 책임지시고 영생복락을 얻게 해주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 해주시고 밥상 차려 놓고 여러분 와서 자, 내가 너와 더불어 먹고 너는 나와 더불어 먹을 터이니 이곳에 필요한 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알아보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 생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예비해서 주신 밥상에 음식을 먹고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허물이 많아도 우리 주님께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기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술주정뱅이, 마약중독자, 이 세상 흉악한 악행을 많이 저지른 자, 사람으로서 칭찬할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정결하고 깨끗하게 씻게 되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롭게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생각, 새로운 건강, 새로운 생활, 새로운 세계를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낡고, 어지럽고, 오래된 것 벗어버리고 새롭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디도서 3장 5절로 7절에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여러분이 행하는 행위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가 회개하고 보혈로 씻으면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해주셔서 구원하시는 것인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냥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는 여러분이 되셨으니 이것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에덴을 새롭게 하셔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것을 상속으로 받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만들어 주셨으니 이 얼마나 고맙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또한 작고 큰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 중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요사이 대만에서 하도 고함을 쳤더니만 목이 쉬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는 여러분만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대만에 가니까 우리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얼마나 뛰고 구르고 열심을 다하는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왜 병들어서 주님을 만나냐면 병들어서 일반약으로 치료함을 받지 못하고 병원에서는 이제 떠나갈 준비하라고 하시면 그때부터는 결사적으로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의 며느리가 뇌암에 걸려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도 살 가망이 없다고 그래서 제게 뛰어와서 수술해도 가망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저도 가만히 생각하니까 시어머니도 아니고 며느리가 뇌암에 걸렸다니까 그동안 치료도 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혼자 고민하다가 뇌암에 들 대로 들어서 누웠으니 어떻게 할꼬? 하나님이여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내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다. 하지 못할 일이 없으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이 자매님도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면 이 하나님을 믿으면 되겠구나.
제가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시어머니를 보고 시어머님이 해야 될 것은 내가 성경구절을 주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았을 때 병도 대신 짊어지고 갔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다고 하니까 당신 며느리와 합쳐서 만 번 이 성경을 외워라. 만 번!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한번 말하는 것 쉽지요. 만 번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깜짝 놀래요. 나도 해야 됩니까? 내가 그럴 줄 알았거든. 그래서 며느리가 나으려면 시어머니가 믿음을 합쳐줘야 되는데 며느리도 만 번하고 시어머니도 만 번을 하십시오. 그러면 변화가 다가올 것입니다. 며느리만 하면 되었지 내가 왜 만 번을 해야 됩니까?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가서 그 며느리 보고 목사님이 나와 너가 합쳐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만 번을 하라고 하는데 하겠느냐고 하니까 죽음에 처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겠다고. 두 사람이 초저녁에 시작해서 만 번을 하는데 몇 천 번을 하다가 그만 숫자를 잃어버려서 도로 처음부터 시작하고 정신없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입이 트도록 해서 약 만 번, 혹은 이상을 한 것 같아요.
내게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으나 하다가 잃어버려서 새로 시작도 하고 또 새로 시작하다가 잊어버리고 그러면서 만 번 이상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의사 선생님에게 엑스레이 검사를 다시 한 번 해달라고 해라. 그래서 다시 한 번 검사를 하고 난 다음에 막 전화를 걸고 나를 찾고 야단법석이에요. 그래서 전화를 받아서 왜 야단법석이냐고 하니까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기적이? 머리에 암 덩어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물은 것이 평소에 집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사이가 안 좋았지요? 그러니까 아이고 미안합니다만 사이가 안 좋아서 내가 우리 아들이 새장가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성경구절 외우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제는 불쌍한 생각이 생겨서 내가 잘못했어요. 인정 있게 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 며느리가 죽는 것은 겁이 안 나도 화해를 하지 못하면 구원을 못 받고 갈 테니까 그것을 걱정했는데 며느리 예수 믿습니까? 믿을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자기가 죽게 되었으니 더 크게 외치지 시어머니보다 적게 외칠 리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되었든 뇌암이 걸려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만나니까 뇌암이 사라졌다.
우리 교회 장로님 한분이 내게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참 그런 일이 있어요. 장로님이 이 후두암에 걸렸어요. 암이 너무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었는데 수술을 한꺼번에 하면 위험해서 반쯤만 암을 떼 내고 반쯤은 남겨 놓아서 그 다음날 수술하기로 했는데 그 다음날 수술하러 들어가기 전에 기도를 많이 했어요.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으니까.
주님이시여, 암의 반쪽은 떼 냈는데 반쪽이 남았는데 수술을 하는데 너무 힘이 듭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기도를 잔뜩 하고 난 다음 그 다음날 수술실로 가서 암을 보고 수술을 해야 하니까 전자기계로 들여다보고 의사가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반쯤 확실히 남아있던 암 덩어리가 온데간데없어요.
그래서 장로님을 마취에서 깨어 일으켜서 어디 갔다 왔어요? 안수기도 받았지요? 안수기도 받았다고 하니까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이 반쪽은 수술도 안했는데 싹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 장로님 우리 교회 열심히 나오는 장로님, 저를 굉장히 신앙으로 밀어주는 장로님인데 그때가 10년도 넘었을 것인데 지금도 깨끗합니다. 암이 재발 안 했습니다.
왜 내가 이 말을 하냐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어떤 방향으로 만나든지 만나면 변화가 일어나서 새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평안한 환경에서 만나도 기적이 일어나고 부모님들의 도움을 통해서 만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여러분이 기도해서 성령의 은혜로 만나도 변화가 일어나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예수를 믿어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변화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예수님을 믿을 때 변화가 일어날 것을 확신하십시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주님께서 죄를 짊어지셨고 채찍에 맞아서 병을 짊어지셨으니 하나님은 거짓말 안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꽉 믿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세 사람만 고치더라. 다섯 사람만 고치더라.) "다 고치시니" 차별 안 줍니다. 여러분이 거울 쳐다보고 나 같은 사람 돌보겠느냐. 천만에요. 돌보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이 여러분 앞에 탁 앉으시고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어부바~ 내 어깨 붙잡고 내 등에 올라타라. 어부바~ 그러면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 등허리에 올라타라고요. 죄짐도 병도 저주도 함께 다 올라타서 십자가까지 같이 올라가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죄와 질병, 저주, 죽음, 절망을 다 청산하고 내가 다 이루었으니 내려가서 이제는 편안하게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련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기를 소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굶주림 가운데 주님은 부요를 우리에게 주셔서 이 땅에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고후 8:9)" 자로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가 가난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가난하게 된 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런 것이다.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너희를 위하여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여러분이 가난해지면 어떻게 됩니까? 무슨 체면으로 우리가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가난할 자격이 없어요. 부요해질 자격은 있어도 가난해질 자격은 없어요. 옛날에는 여러분 모두 가난했지요. 저주를 받아서.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가난해져서 길거리에서 얻어 잡수시고 나무 밑에서 주무시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하신 것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를 부요케 하심이라. 좀 한 번 믿어 보십시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가난한 자가 아니요. 이래 뵈도 속에는 부자니라. 그 부요함이 곧장 나타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아브라함의 복은 내가 너를 복되고 복 받고 또 창대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아브라함의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예수 믿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로 주님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안 만났기 때문에. 만나면 주님께서 열쇠를 주겠다고 했는데 안 만났기 때문에 열쇠를 줄 수가 없어요.
여러분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만나야 돼요. 누구든지 죄를 짓고 보혈로 씻고 성령께 의지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고통을 당할 때도 생명의 주님이 나타나서 여러분과 나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문제가 있는 곳에는 주님이 반드시 계십니다. 그것 해결하려고 왔으니까.
죄가 있는 곳에 용서해 주시는 주님이 와 계시고, 병이 있는 곳에 치료하시는 예수님이 와 계시고, 가난 있는 곳에 부요케 하시는 예수님이 와 계시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예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문제가 없는 곳에는 안 와 계십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요. 주님은 할 일이 없는 곳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 곁에 예수님이 와 계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평안한 사람에게 주님이 줄 것이 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불안한 사람에게 평안을 주시지요. 가난한 사람에게 왜 와 있습니까? 부요하게 만들려고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필요한 사람에게 와 계시는데 오늘 여러분 무엇이 필요합니까? 예수님 만나면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정적인 곳에 긍정적인 힘으로 와 계십니다.
내가 사방에 욱여 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욱여 싸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어요.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와서 욱여싸지 못할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고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걸머짐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다가 죄 때문에 허물 때문에 고통당하고 병 때문에 채찍에 맞고 저주를 짊어지고 죽음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 그것이 전부 나 때문에 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내 것으로 걸머지면 예수님이 그것을 처 없애고 생명의 은혜를 주신 그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보배를 여러분 몸속에 모시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보배가 여러분 속에 계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에게 변화를 요구하십시오. 주님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희한하게 주님이 구하지 않는데 주지는 않습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
주 예수 문밖에 기다려 서 있습니다. 그러나 단단히 잠궈 두니 못 들어오시네. 여러분 문 안의 고리는 여러분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고리를 사용하십시오. 주님이시여 나에게 평안을 주시옵소서. 나에게 기쁨을 주시옵소서. 소망을 주시옵소서. 건강을 주시옵소서. 창대케 하여 주시옵소서.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문고리를 열면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며 내가 저에게로 들어가 저와 더불어 먹고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이 여러분과 더불어 먹고 여러분이 주님과 더불어 먹으려고 주님은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외롭지 않습니다.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여러분 집에 가면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조용기 목사 통하여 말했으니 단단히 들었지? 문을 열어다오. 내가 너와 같이 있으면서 슬픔과 고통도 같이 걸머지고 기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눌 터이니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예수 생명 내 생명이 되게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원하시고 애쓰시고 계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나도 당함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어둔 밤에 빛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 예수님을 찾으면 예수님이 기쁘게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은 어두움을 환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추운 인생을 따뜻하게 만들려고 오셨기 때문에 인생이 추울 때 예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러 왔기 때문에 배고플 때 부르짖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 위장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문제가 둘러싸여 짓눌리며 살지만 주님이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2014년 4월 13일 종려주일 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