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공모전 서평 수상작] 윤유석, 『7인의 십자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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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와 넘치는 십자가

사순절과 부활절을 맞아 '시앙스 앙피즈', '신학서적 중고장터' 공동 주최로 열린 공모전 '예수 죽음 부활' 심사 결과, 서평 부문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고후 5:14)."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도 바울의 이 고백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확신을 가지고 증언한다. 그러나 얼핏 단순하게 여겨지는 '십자가의 말씀(ho logos gar ho tou staurou)'은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수많은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십자가가 어떻게 그 역할을 감당하는가?", "십자가가 왜 필요한가?", "십자가가 무엇인가?"

모두 십자가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제기되어야 하는 물음이지만, 어느 하나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여러가지 은유, 상징, 개념, 체계를 동원해 보아도,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살리셨다는 선포는 마음을 '휘어잡을' 정도로 강렬한 만큼이나 대단히 막연하다.

차재승 교수의 『7인의 십자가 사상』은 우리가 때로 너무나 쉽게 치부해 버리는 십자가의 깊이를 드러내기 위해, 그리스도교 역사 속 일곱 명의 뛰어난 신학자를 소개한다. 저자는 안셀무스, 루터, 오리게네스, 캠벨, 이레나이우스, 판 드 베이크, 칼뱅의 십자가 사상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넘치는 십자가(cross overflowing)'를 넘어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the cross as such)'로 나아가고자 한다.

본고는 먼저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각 십자가 사상을 간략히 요약할 것이다(Ⅰ). 다음으로 '넘치는 십자가'보다도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강조하는 저자의 입장을 살펴볼 것이다(Ⅱ). 마지막으로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에 이르고자 하는 시도가 인식론적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지는 않은지(Ⅲ. 1.),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가 과연 '넘치는 십자가'로부터 따로 떨어질 수 있는지(Ⅲ. 2.), '넘치는 십자가'야 말로 우리의 신앙을 위한 기준이 아닌지 물음을 던질 것이다(Ⅲ. 3.).

Ⅰ. 넘치는 십자가: 7인의 십자가 사상

안셀무스의 충족 이론: 안셀무스는 '오직 이성만으로(sola ratione)'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우리에게 필연적인 것인지에 대해 해명하고자 한다. 그는 당대에 사용된 상업적이고 법적인 용어에 의존하여 "왜 신-인의 죽음이 반드시 필요한가?", "왜 오로지 신-인인가?", "왜 죽음이 아니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에 대한 채무를 지불하고 징벌을 감당하기에는 무능하다는 점에서 자신을 대신할 '신-인'을 필요로 한다("왜 신-인이?", 2. 2.). 하나님의 자유로운 신적 본성은 죄로 인해 손상된 그분의 명예를 다시 회복시킬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신-인을 통한 '충족'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왜 반드시?", 2. 3.). 신-인은 단순히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할 뿐 아니라 인간에게 시련을 겪어내는 모범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을 감당해야 한다("왜 죽음이?", 2. 4.).

그러나 충족 이론은 이렇듯 "왜 필연적인가?"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추어 십자가 사건을 비인격적 법률과 계약의 맥락으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인격적 사랑의 행위라는 점을 간과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마르틴 루터의 교환 이론: 루터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왜" 필연적인 것인지에 대한 물음보다는, 십자가에서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그는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십자가의 동기, 내용, 결과에 대해 고민한다.

십자가는 우리를 악, 율법, 죄, 죽음, 지옥 등 총체적 비참함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연민에 근거하여 인간에 대한 '진노'가 아니라 무조건적 '용서'만을 드러내고 있다(동기, 3. 1.).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마치 신랑과 신부 사이에 일어나는 인격적 삶의 '교환'에서처럼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인간의 전부를 떠맡으시는 방식으로 총체적 비참함에 속에 있는 우리와 하나로 '연합'하셨다(내용, 3. 2.). 인간은 자신과 연합하여 '죽음에 대한 죽음'을 겪으신 그리스도를 통해 그 자신도 죽음에 대해 '역설적 승리'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에 이른다(결과 3. 3.).

그러나 교환 이론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교환의 인격적 측면을 잘 드러내준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인간이 죽음에 대해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강조하지 못한 채 십자가에서 인간을 배제해 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오리게네스의 희생 이론: 오리게네스는 성서에 나타난 제의적 희생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십자가에 접근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아무런 흠이 없는 분이었지만 '고난당한 어린 양', '유월절 어린 양',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를 깨끗하게 정화하여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세상의 짐을 짊어지셨다고 이야기한다(4. 1.). 인간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완성을 향한 삶의 진보를 이루어내야 한다(4. 2.). 다만 우리의 희생은 십자가의 그늘이 만들어낸 '그림자'라는 점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희생을 불완전하게 반영한 채 종말의 날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구원을 단지 점차적으로 드러낼 뿐이다(4. 3).

희생 이론은 십자가에 대한 인간의 참여를 강조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를 지나치게 부각시킨 나머지, 십자가를 본받은 우리의 희생에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는 능력까지 부여하는 등 인간을 또 다른 그리스도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맥레오드 캠벨의 회개 이론: 캠벨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논리적·기계적·법정적으로 상정한 채 십자가를 '대속적 징벌(substitutionary punishment)'로 해석하려는 시도에 반대하여 '대신적 회개(vicarious repentance)'를 주장한다.

그는 십자가가 결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과 거룩함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5. 1.). 이러한 사랑과 거룩함은 십자가에서 '회고적 측면(retrospective aspect)'과 '전향적 측면(prospective aspect)'에 따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십자가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그에 반응하는 우리 자신의 '회개'를 표현한다(회고적 측면, 5. 2. 1.).

또한 십자가는 선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과 그에 상응하는 우리 자신의 '새로운 삶'을 표현한다(전향적 측면, 5. 2. 2.).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용서'와 인간의 '회개'를, 하나님의 '희망'과 인간의 '새로운 삶'을 연결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다(5. 3.).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을 위해 '회개'하시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그분과 함께 새로운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5. 4.).

회개 이론은 아버지됨, 아들됨, 형제됨의 인격적 관계를 바탕으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용서, 회개, 참여를 '관계적 필연성'을 통해 해명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됨, 아들됨, 형제됨은 단지 도덕적이고 영적인 관계에 불과할 뿐이므로, 그리스도께서 왜 굳이 '신체적 죽음'을 겪으면서까지 인간의 죄를 회개하셔야 했는지에 대해 대답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이레나이우스의 총괄갱신 이론: 이레나이우스는 하나님과 인간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영지주의의 세계관을 비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삶을 우리와 함께 공유하시고 죽음조차 기꺼이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성육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과정을 몸소 겪으시는 방식으로 자기 안에서 우리를 창조의 본성대로 '회복'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하셨다(6. 1.).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 '총괄갱신(recapitulation)'은 영지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완전과 불완전, 무한과 유한, 영과 물질 사이의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을 무너뜨린다(6. 2.).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 수행한 총괄갱신의 최종적 완성이다(6. 3.). 우리는 이러한 총괄갱신에 머무르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을 향해 점차 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6. 4.).

그러나 총괄갱신 이론은 주로 성육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십자가를 집중적으로 드러내기에는 미흡하다. 십자가가 어떻게 희생, 용서, 승리 등 다양한 의미와 연관될 수 있는지는 단지 파편적으로만 해명되고 있을 뿐이다.

아브라함 판 드 베이크의 나눔과 짊어짐 이론: 판 드 베이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본성을 나누시는 방식으로 인간 그 자체를 짊어지셨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달리 '신성'을 지닌 주님으로서 세상의 죄에 대한 책임을 떠맡으셨다(7. 1.). 동시에 그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세상의 고난에 참여하셨다(7. 2.). "한 위격과 두 본성"으로 요약되는 칼케돈 공의회의 공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곁에 서 있는 '여러 인간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할 때에 비로소 그 함의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7. 3.). 즉,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나누어 가진 채 우리와 '함께' 고난 받은 사건이다(7. 4.).

나눔과 짊어짐 이론은 그리스도와 인간이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인격적 대속 이론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참여를 단순히 '존재론적' 차원에서 해명하고 있을 뿐, 홀로코스트와 같은 고통에 대해 십자가가 어떻게 '실존적' 차원에서 참여하는지 해명하고 있지는 못하다.

장 칼뱅의 대속 이론: 칼뱅은 '형벌적 대속론(penal substitutionary theory)'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포괄적 십자가 사상을 전개한다.

그는 십자가가 (a)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알게 해 주는 인식론적 매개체라는 점 (b)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가능하게 하고 정의를 충족시키며,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를 제거하고 죄에 대한 벌금을 지불하는 구원의 완성이라는 점 (c)교회를 성립시킨 '죄 용서'의 근거라는 점 (d)성찬과 성례의 실재를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점 (e)'칭의'와 '성화'로 요약될 수 있는 '복음의 전부(totum evangelium)'를 담고 있다는 점을 총체적으로 제시한다(8. 2.).

그러나 대속 이론은 이러한 포괄적 요소의 동시성을 강조하지 못한 채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켜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만다(8. 3.).

Ⅱ.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 7인의 십자가 사상을 넘어서

저자는 각 신학자가 제시한 이론이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로부터 발원한 '넘치는 십자가'라고 지적한다. 그는 '넘치는 십자가'가 그 나름대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온전하게 담아내기에는 모두 불완전하다고 강조한다.

법정적·상업적·제의적 틀에 의존하여 십자가를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한계에 부딪힌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고백은 '충족', '교환', '희생', '회개', '총괄갱신', '나눔과 짊어짐', '대속' 중 어느 하나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신비적 연합에 근거하여 성립되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와 '함께' 죽었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성은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볼 만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사회적·철학적·문화적인 인간 상황에 부합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죽음이 모든 이의 죽음을 위하는 동시에 그 모든 이가 한 사람과 함께 죽은 것임을 설명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인간 사상 체계 내에서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를 인간의 개념, 곧 심판, 용서, 희생과 유비적으로 연관시키면 반드시 무엇인가가 부족하거나 잘 부합하지 않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7인의 십자가』, 27쪽)"

"때로는 한 사람의 죽음이 많은 사람을 대신하기도 하고,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교환된 죽음이 한 사람의 죽음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죽음은 많은 사람을 대신한 바로 그 한 사람에게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포함하는 대신은 세상의 어떤 인간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십자가의 신비'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7인의 십자가』, 443쪽)"

그러나 성서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매커니즘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기보다는 십자가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넘치는 십자가'는 수없이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가 결국 말하고 있는 내용은 대단히 확정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십자가가 "어떻게" 혹은 "왜" 인간을 구원하는지에 대해, 어쩌면 결코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는 십자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증언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 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겸손하게 고백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대상은 '넘치는 십자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이다. 비록 '넘치는 십자가'는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풍요롭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결코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언제나 '넘치는 십자가'를 성립시키는 근거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넘치는 십자가'는 언제나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가리켜 보이는 이정표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

안셀무스, 루터, 오리게네스, 캠벨, 이레나이우스, 판 드 베이크, 칼뱅의 십자가 사상이 지닌 본래 의의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우리는 단순히 십자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아는 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해석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뿌리박고 있는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Ⅲ.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와 넘치는 십자가

다양한 십자가 사상의 의의와 한계에 대한 저자의 소개는 매우 유익하다. 저자는 십자가가 지닌 포괄적 면모를 강조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우리에게 익숙한 논리로 쉽게 환원시켜 버리고자 하는 태도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위해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넘치는 십자가'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십자가는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가 아니라 '넘치는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넘치는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다음 세 가지 물음은 모두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와 '넘치는 십자가'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1)과연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에 이르기 위해 '넘치는 십자가'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가 가능한가? (2)과연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넘치는 십자가'에 의존하지 않는가? (3)과연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넘치는 십자가'가보다 중요성을 지니는가?

1.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와 '넘치는 십자가' 사이의 구분은 인식론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한편으로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우리의 지성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넘치는 십자가'에 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우리의 신앙을 위한 근거라는 점에서 '넘치는 십자가'에 담겨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지성 너머에 남겨둔 채 우리의 신앙을 위한 근거를 상실해 버리든지, 우리의 신앙을 위한 근거를 지키기 위해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가 지성 너머에 있다는 주장을 포기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딜레마를 이미 잘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문제를 제시하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십자가의 신비'라는 이름으로 딜레마의 양쪽 뿔을 느슨하게 묶는 데서 만족해 버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적은 수의 해석학적 패러다임을 가진다. 그리고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단순하지만 이해 불가능한 짧은 표현에 그칠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에 더 가까이 가야만 할 필요성과, 그러나 십자가를 우리의 사상 체계 안에서 유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는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에 직면한다(『7인의 십자가』, 28쪽)."

2.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는 '넘치는 십자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될 수 없다. 우리는 2000년 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눈으로 직접 본 목격자가 아니다. 단지 성서의 증언으로부터, 교회의 선포로부터, 신학의 연구로부터 십자가에 끊임없이 다가가고자 할 뿐이다. 심지어 목격자였던 그리스도의 제자들조차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부활의 빛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십자가가 구원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확실한 믿음 역시 부활의 빛에 근거한 제자들의 해석인 것이다.

우리가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라고 부르는 대상은 이렇듯 언제나 해석을 경유해 주어진다. '넘치는 십자가'에 의존하지 않을 경우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로 향하는 길은 완전히 차단되고 만다. 저자가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안셀무스, 루터, 오리게네스, 캠벨, 이레나이우스, 판 드 베이크, 칼뱅이 제시한 '넘치는 십자가'를 따라가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에 대해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오히려 '넘치는 십자가'가 더욱 근원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3.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가 아니라 '넘치는 십자가'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성립시킨다. 십자가는 결코 모든 현실 너머에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로서 남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삶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수용된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리스도께 감동하고, 순종하고, 참여한다. '넘치는 십자가'가 풍부하게 드러날 때에야 십자가는 비로소 우리에게 중요성을 지닌 것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이러한 십자가를 불완전하다고 비판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한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단순히 추상적 법칙이 되고 만다. 우리와 괴리된 채 실존적 고통, 갈등, 선택, 실패에 대해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하는 공허한 명상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구호가 제시되기만 할 뿐 도대체 십자가가 우리 자신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해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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