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공모전 에세이 수상작] 김종성, 부활을 부활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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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돌아옴을 기다리며

▲십자가에 못박힘 ⓒ서울미술관

▲십자가에 못박힘 ⓒ서울미술관

사순절과 부활절을 맞아 '시앙스 앙피즈', '신학서적 중고장터' 공동 주최로 열린 공모전 '예수 죽음 부활' 심사 결과, 서평 부문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을 삶의 끝으로서 맞이한다. 어떤 사람은 그 끝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 맛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맞이하기도 한다. 끝을 맞이하는 시간과 방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 끝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죽음이라는 끝이 '진짜' 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죽음을 인간의 궁극적 종말로 여기지 않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슬픔과 그 앞에서의 절망을 부활이라는 것이 '이미' 이겼다고 믿는다. 부활이라는 단어가 우리 인간에게 들어온 이후,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애써왔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나면서 부활이라는 단어는 죽음 밖으로 나왔고, '산 자'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부활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분명 '죽은 자'를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의 의미보다,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이러한 물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들' 앞에서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여러 의미에서 소중하게 다루는 성경에는 부활 사건에 얽혀 들어간 한 부자의 이야기가 있다. 성경은 이 부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부활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조심스레 예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미지의 영역에 조심스레 발을 딛을 때, 비로소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비록 예수의 제자 중 하나는 그 영역에 발을 딛었다가 빠져 죽을 뻔했지만 말이다.

옛날,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그가 살던 사회에서 존경받는 축에 속했다. 워낙 그가 돈이 많기도 했을 뿐더러, 종교적으로도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던 그에게 한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인 즉, 겁도 없이 마을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던 한 사람이 잡혔고, 그가 곧 죽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람에게 '겁도 없다'는 수식어가 붙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보통 사람들이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단어들을 거침없이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몇 가지 말해보자면, 그는 신성한 이름을 마구 불렀고, 신만이 할 수 있다는 용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했으며, 때가 찼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하고 다녔다. 그는 신의 이름을 가지고 말 그대로 '아무 사람'이나 만나며 이런 일들을 하고 다녔다. 신의 이름은 그렇게 아무 데나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부자는 그 사람이 꽤나 잔인하게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부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자 역시 그 사람이 더럽힌 신을 믿고 있었고, 지도자들이 그런 결정을 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자가 듣기에도 그 사람에게는 신의 이름이 가지는 신성함 따위는 없었다. 여기까지가 그가 들은 소문의 전부이다.

부자는 그 소문을 그냥 넘겨버릴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신을 모독하고 잡힌 그 사람의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자기의 신이 불경한 자에게 내리는 벌이 얼마나 가혹한지 보며 자기의 종교심을 북돋고 싶기도 했다. 그리하여 부자는 결국 소문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발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신을 모독했다던 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듣던 대로 그 사람은 아주 잔인하게 죽어갔다. 피는 피대로, 물은 물대로 남김없이 땅에 쏟으며, 그에 따른 고통을 천천히 느껴가며 죽어가는 모습에 부자는 그만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때 부자의 귀에 그 사람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그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신의 이름을 더럽혔다. 사람은 보통 죽을 때가 되면, 자기의 잘못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하던데, 이 사람만큼은 예외인 것 같았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죽어가면서도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그에게 관심이 쏠리면서도, 마땅히 죽어야 하는 저 사람을 보며 씁쓸한 무언가를 느꼈다. 부자는 저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하고 시체를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여인들이 시체 주위로 몰려들었다. 부자는 그 여인들이 시체를 수습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들을 쫓아갔다. 여인들은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는지 제대로 시체도 수습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부자는 마침내 일을 수습하고 돌아가는 여인들을 돌려세워 뒷이야기를 마저 들을 수 있었다. 한참을 들었다. 여인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자기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주었다.

여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그 사람은 누구도 신경써 주지 않던 자기들의 삶을 조금 더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그 남자는 이 여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준 듯했다. 그 사람은 분명 여인들에게 가족 이상의 의미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부자는 그 사람의 죽음을 기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의 단편적 추억에 의하면 그 사람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에게는 몰라도 그녀들에게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람이 부자 자신에게까지 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계속 신의 이름을 마구 사용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부자로 하여금 여인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러한 거부감들을 덮어 버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기들의 이야기를 할 때 여인들이 보여준 눈빛과 목소리였다. 무엇보다도 부자는 이 여인들의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그의 죽음을 기릴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 사람이 죽은 이유야 어찌됐든, 자기에게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제대로 기념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딱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고심 끝에, 부자는 이 여자들이 그의 죽음을 끝까지 기릴 수 있게 해 주기로 했다. 그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다 줄 수는 없지만, 여인들에게 그와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는 해줄 수는 있었다. 부자는 비록 죽은 그 사람이 남이기는 했지만, 죽은 그를 위해 정성껏 옷을 지어 그에게 옷을 입히고, 그를 매장할 안전한 동굴 하나를 마련해 시체를 보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그 사람이 생각나는 누군가는 부자가 마련해 준 동굴 앞에 모여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리라. 그 사람의 눈빛과 손길, 그의 말과 같은 것들이 이 무덤이 있는 한 계속 기억되리라.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과 무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혹시나 자기가 무덤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 퍼지지는 않았는지 불안해하면서, 몰래 여인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부자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여인들은 그들을 찾아온 부자가 눈에 띄자마자 뛰어나와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여인들은 부자를 자기들의 모임장소로 들인 뒤, 그에게 뒷이야기를 마저 해주었다. 그 이야기인즉, 부자가 정성스레 마련해준 무덤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옆으로 굴려져 있었고, 시체를 뉘였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치며 여인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가 살아난 것 같다"고. 말도 안 되는 여인들의 말을 들으면서, 부자는 여인들의 눈빛에서 부활했다는 그와 여인들 사이에 있었던 추억들을 읽었고 결국 자기도 모르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경은 부자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더 이상 말해주지 않고, 그를 '의로운 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소개하는 정도에서 끝을 맺는다. 그런데,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간 그리스도 공동체가 '의', '하나님 나라'와 같은 중요한 단어를 이 부자에게 붙여주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들은 아마 여인들을 도와준 부자의 행동과 함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했을 것이다.

부자의 이야기로 보건대, 여인들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부자가 그 죽은 자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자기의 세계를 떠나보내야 했던 여인들에게 부활이 예수를 기억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산 자'인 우리는 이제 부활 사건을 맞이하기 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 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죽은 자 앞에서 그를 기억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자들, 고통 때문에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꺼내어 볼 수 없는 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 사람들은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죽은 자와 같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그 죽음의 영역 밖에 있는 '산 자'인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성껏 죽은 자를 기억해 주고, 또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일은 살아있는 우리가 할 일이다. 이런 우리의 행동은 사람들 속에 있는 기억뿐만 아니라, 노예 생활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기억하셨던 하나님 속에 있는 그 무언가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 부활이 있다는 선포를 입 밖에 내기 전, 부활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부터 한 발만 뒤로 물러서서, 조심스레 자신을 돌아보자. 충분히, 그리고 정성껏 그 죽음을 기억했는지, 또 기억하게 해 주었는지를 돌아보자.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죽은 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서 돌아오기를 강하게 소망해 보자.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안 된다'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서, 부활을 부활답게, '죽은 자를 위한 부활'로 만들어 주자.

많은 물음을 가지고 부활절을 맞는 우리가 예수의 말을 '새롭게' 듣길 바란다.

"누가 죽은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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