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자녀 키우며 선교하는 여성의 사랑과 그리움 담겨
"갓 태어난 아기, 부드러운 분홍빛 아기.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세상을 접했네." 사랑스럽고 조그만 사내 아기가 여기 있다. "우리 아가." 엄마가 아기에게 첫인사를 했다. 아기는 한국의 10번째 달 10일 10시에 태어났다. -1893년 11월 10일 일기 中
불쌍한 우리 셔우드! 지난 달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단다. 너는 어려서 지금은 그 상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느끼게 될 거야. 비록 내가 너로 인해 아픈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 11월 24일 토요일 해질 무렵, 아빠는 마지막 숨을 쉬셨다. -1894년 12월 10일 일기 中
엄마는 다시 한국에 가서 사역을 맡기로 했다. 그것은 엄마가 한국에서 돌아올 때 바라던 것이다. 여성해외선교회에서 엄마를 보내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현재 여성해외선교회에서는 엄마를 한국에 다시 보내기를 원하고, 한국 선교부에서도 엄마가 돌아오기를 몹시 바라고 있다. 엄마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 생각한다. -1897년 5월 10일 일기 中
국내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육필일기 중 다섯 번째 권이 <로제타 홀 일기 5>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해설은 이용민 박사(아시아기독교사학회 총무이사)가, 번역은 에스더재단 김현수·문선희 설립자·이사가 맡았다.
로제타 홀은 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 인물이다. 이번 5권에는 로제타 홀과 남편 윌리엄 홀의 첫 자녀인 셔우드 홀의 출생부터 7세 때까지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 온 선교사가 자신의 선교활동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문헌은 알렌의 일기, 아펜젤러의 일기, 베른하이젤의 일기 등 여러 권이 있지만, 자녀의 성장 과정을 남긴 사례는 아직까지 이번 로제타 홀 외에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일기는 내한 선교사의 희귀 자료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로제타 홀 일기 5>는 셔우드 홀이 태어난 구한말 1893년 11월 10일 시작돼 셔우드가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1900년 1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이후 셔우드 홀이 엄마 로제타 홀에게 쓴 편지로 꾸며진 일기가 아홉 살 생일을 맞은 1902년 11월 10일자로 추가돼 있고, 뒤에는 셔우드에게 들어간 비용이 첫 해부터 세세하게 내역별로 기록돼 있다.
이번 5번째 권인 '육아일기'에는 최근까지 출간된 로제타 홀의 육필 선교일기인 <로제타 홀 일기> 1-4권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윌리엄 제임스 홀의 죽음과 장례 일정, 로제타 홀이 미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는 과정에서 미국 내 여러 선교부와 얽힌 관계, 제임스 홀의 전기를 쓰게 되는 과정, 로제타 홀이 서울과 평양에서 다시 선교사로 사역하는 모습 등이 소개된다.
◈5권 셔우드 홀 육아일기의 특징들
지극히 개인적이라 할 수 있는 육아일기를 통해 독자들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먼저 자녀인 셔우드 홀의 성장 과정에 투영된 한 여성의 사랑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로제타 홀은 매일의 일기를 그날 상황에 부합하는 성경구절과 시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면모를 보였다. 일기를 처음 기록한 날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 2:28)"로 시작된다. 이 기도는 훗날 부모님을 따라 선교 사역에 헌신한 셔우드 홀의 삶을 통해 그대로 성취됐다. 윌리엄 홀의 순직 후 기록한 일기에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절절이 배어 있다.
로제타 홀 육아일기의 구체적 특징은 첫째로 글쓴이가 '나'가 아닌 '엄마'로 기록된 점이다. 로제타 홀은 일기를 쓰면서 아이의 눈높이에 시점을 맞추고자 했는데, 이는 먼 훗날 셔우드 홀에게 자신이 쓴 글을 읽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육아일기를 쓴 로제타 홀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둘째로 셔우드가 태어난 1893년 11월 10일을 기점으로 매달 10일자에 맞추어 한 달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는 점이다. 로제타는 매달 10일을 셔우드의 '생일'로 간주하고,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일기를 써 나갔다.
셋째, 일기 속에 다양한 자료와 그림이 첨부돼 있다. 특히 셔우드가 앓은 질병과 회복을 위해 로제타가 조치한 내용들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당시 한국 의료 선교사들의 수준과 성과들을 짐작할 수 있다.
로제타는 이전에 출간된 선교일기에도 다양한 자료와 사진, 편지, 문서들을 덧붙인 바 있다. 이번 5권 육아일기에는 보다 애틋한 자료들, 매년 돌아오는 셔우드의 생일에 아들의 손 모양을 실제 모습대로 그려 놓았고, 그림 안에 키와 몸무게 수치를 기록하고 그 옆에 생일에 살짝 자른 셔우드의 머리카락 묶음을 실물로 붙여 놓기도 했다.
◈양화진문화원, 로제타 홀 일기 총 6권 올해 완간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는 로제타 홀이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을 기록한 선교일기 4권과 두 자녀(셔우드와 에디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 육아일기 2권으로 구성돼 있다.
100여 년 전 이 땅에서 행한 선교사역의 구체적 내용뿐 아니라 함께했던 선교사들의 모습과 관계, 한국 여성들이 서양 의사의 치료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또 일기에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는 사진, 자신이 구매하거나 사용한 물건과 관련한 영수증, 카탈로그, 티켓, 주고 받은 편지들이 실물로 첨부되어 있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일기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정정하는 내용을 덧붙임으로써 사료적 가치를 더욱 높였다.
<로제타 홀 일기>는 선교일기 부분인 1-4권이 이미 출간됐다. 각 권은 1부에서 일기 원본 사진과 우리말 번역을 실었고, 2부에서 로제타 홀이 쓴 일기를 영문 활자화해 실었다. 이 같은 편집을 통해 로제타 홀의 의료사역과 일상생활 모습을 통해 그녀의 인간 됨과 신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육아일기 부분인 <로제타 홀 일기> 5-6권은 편집을 달리하고 있다. 1부는 영인본, 2부는 한글 번역문을 실었고, 판형도 이전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하면서 전반적 디자인을 한 여성으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간직되도록 했다.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의 마지막 제6권인 '에디스 홀 육아일기'는 오는 2017년 11월 출간될 예정이다.
◈선교사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은
로제타 홀은 25세 때인 1890년 의료선교사로 내한, 1892년 6월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과 서울에서 결혼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그녀는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다.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 부상자들과 환자들 치료에 전념하다,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24일 소천 뒤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3년 만인 189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듬해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는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記忽)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해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최초로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성장했다.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 후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