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경영의 원리
정의의 재발견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0년에 약 70만 부나 팔리면서 16주간 판매부수 1위를 차지했고,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비판한 장하준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출간된 지 40일 만에 20만 부가 팔렸나갔다. 이 두 책 모두 읽기가 쉽지 않고 평소 인기 없기로 유명한 이른바 '인문학' 책인데 이런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정의롭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의(justice)에 대한 목마름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대형 부정·부패사건의 본질도 결국은 정의가 무너져 내린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기적의 압축 성장은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지만 이와 동시에 폭발적인 성장의 뒤안길에서 편법이 횡행하고 반칙이 구조화되는 문제를 잉태하였다. 나라 전체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정의와 공정성은 홀대받았고, 우리는 이제 그 후유증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한 마디로 오늘의 한국사회는 정의와 공정성을 시대정신으로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정의와 공정성이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분야가 바로 기업세계이다. 이윤추구와 생존경쟁이 지배하는 기업세계에서 과연 정의로운 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장기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특히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과 관행이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상호 신뢰가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올바르고 정의롭게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공의가 무너진 우리의 현실
2012년에 아산정책연구원과 마이클 샌델 교수가 공동으로 사회정의 인식 조사를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실시하였다. 사회 전반의 공정성에 대한 한국과 미국 국민의 인식조사 결과, 미국인의 62.3%는 미국사회를 공정하다고 인식한 반면, 한국인의 73.8%는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했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은 한국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0년에 동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인의 70%가량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공정한 행태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분야로는 60% 가까이가 정치권을 꼽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한국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한 사회라는 전반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공정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국가와 사회 차원뿐만 아니라 기업레벨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육컨설팅기업 휴넷이 2015년 말 우리나라 직장인 8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은 회사에서 실시하는 인사평가 방식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한 인사평가를 위해 개선돼야 할 점에 대해서도 '명확한 평가 기준'이 51.5%로 가장 많았고, 이어 '평가 과정의 투명한 공개'(25.3%), '피드백·코칭에 대한 프로세스 확립'(13.6%), '평가자에 대한 교육'(8.0%) 순이었다. 이는 인사평가의 공정성 수준에 대한 우리나라 종업원들의 인식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4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55점에 머물러 조사 대상 175개국 중 43위,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를 기록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 연속 54~56점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그리스가 디폴트까지 이른 원인으로 '파켈라키(Fakelaki)'를 지적했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작은 봉투', 즉 공무원에게 주는 뇌물을 의미한다. 이는 저성장에 빠진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국가청렴도와 경제발전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실시되고 있는 일명 김영란법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올바른 지침이라 볼 수 있다. 아직은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와 적용상의 난맥점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김영란법과 같은 사회적 가치와 제도들을 확립해야 한다. 정말 지금은 우리 사회 전반에 정의와 공정성의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갑을관계와 불공정
한국에 갑을관계라는 말이 있다. 갑을관계는 강자와 약자의 힘의 불균형에 의해 발생하는 거래관계를 나타내며, 이러한 갑을관계의 대표적 형태로 하도급을 들 수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납품하는 수탁기업인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갈등 문제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감액하거나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도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는다는 것 등이 중소기업의 주된 불만거리이다. 이와 같은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힘(교섭력)의 불균형과 미흡한 법치(法治)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甲)과 그에 종속돼 있는 중소업체(乙) 간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대·중소기업 간에는 늘 불공정거래의 발생가능성이 상존한다. 또 거래관계에 적용되는 규칙의 부재 및 제제의 실효성 여부도 문제이다. 아무리 법치주의를 구현하려고 해도 실효성 있는 제제수단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2013년 5월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본사 영업사원이 연상인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을 퍼붓는 녹음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남양유업은 '욕설우유'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이미지 추락과 매출 하락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이 사태는 결국 전국적 불매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고 최근에는 소위 남양유업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국 약자인 대리점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윤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약자의 인격적 존엄까지도 무시한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었다. 최근에도 대기업 회장과 임원의 폭행 사건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의식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사건의 전달과정에서 다소 감정적인 부분이 강조된 측면도 있지만 사건의 핵심에 불공정성과 불평등이 있음은 분명하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말처럼 법 위에 군림하는 강자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정말 힘없고 배경 없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그런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이 말하는 공의
하나님은 경제, 사회, 종교 등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서 정의가 지켜질 것을 원하고 계신다. 아모스 5장 24절을 보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헬몬산 밑 샘에서 솟아나 흐르는 요단강처럼 생명과 같은 정의를 넘쳐흐르게 하라는 것이다. 정의가 쪼그라들어 여름 가뭄에 말라버린 연못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가 부족하면 늘 세상은 어두워지고 혼탁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까닭은 바로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왕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라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야곱 중에서 공과 의를 행하시도다(시 99:4)'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을 원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자들이 많아질수록 이 땅은 부정과 부패가 그치고 정의와 공정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얻으리라(신 16:18~20)' 하나님은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부당한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셨으며, 오직 공의와 공평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땅과 재물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기업을 축복하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복음에 빚진 자 되기
실제 공정성과 정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소속감, 애착, 신뢰를 가지게 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공정성과 정의가 훼손된 사회에서는 불안과 불만이 가득하게 되고 결국 공정성과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강력한 개선 요구를 제기하게 되며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 사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심지어 떠나게 된다. 따라서 만약 공의가 지속적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실로 많은 부작용이 우리 사회에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자들이다(로마서 11:14~15)'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빚을 갚아야 할 상대로 바라본다면 많은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 사실 갑을 관계도 매우 상대적인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지위는 늘 바뀌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과의 관계에서 항상 갑의 입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떤 상황에서는 을의 지위에 놓이기도 한다. 또 영원한 갑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오늘의 성공에 자만해 약자를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귀중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이해한다면 공의와 관련된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