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처럼… 죽음 맞닥뜨릴 것, 내 종교는 이제 시작”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신년 대담]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박사(3·끝)

▲이어령 박사는 “죽음 앞에선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언이 진실한 것”이라며 “살아있을 때부터 유언하듯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죽음 앞에선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언이 진실한 것”이라며 “살아있을 때부터 유언하듯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했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신년를 맞아 10년 전 세례를 받고 '문지방에 선'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박사를 최근 영인문학관에서 만나, 교회와 기독교, 성경 읽기, 부쩍 다가온 인공지능(AI) 시대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앞의 두 편에 이어, 대담 마지막 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생명자본주의, 창조, 올림픽, 그리고 독자들을 향한 덕담을 풀어놓았다. 이어령 박사는 특히 현재 '암(癌)'과 함께 살고 있으며, 미답지인 '죽음'에 의연하게 맞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박사와의 일문일답.

[대담=김진영 국장, 정리=이대웅 국장, 사진·영상=김신의 기자]

세속화 추구하다 보면, 본질 다 잊히고 수단만 남아

-'종교인 과세' 문제처럼 최근 교회 내에도 '경제 논리'로 모든 것이 흘러갑니다. 낙태나 동성애, 페미니즘 같은 생명 문제도 결국 중심이 '경제적 관점'입니다. '신자유주의'인 세상과 교회 속에 '생명자본주의'가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는데요.

"지엽적인 문제들이지요. 낙태 문제야 생명관(觀)에서 나왔지만, '생활(生活)'이라는 말 속에 생명이 있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생명이란 다른 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말씀이나 생애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고 신학적으로 찬반 논쟁을 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 속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직접 정의한 말들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등 모두 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예루살렘까지 가는 그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 길로 찾은 것이 진리입니다. 도교의 도는 마지막에 자연이 나오지만, 기독교의 진리는 쭉 올라가다 보면 생명이 나타납니다. 생명에 관한 것을 직접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지만 생활, 생명에 이르는 수단과 방법, 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세속적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하신 것은 타협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그 돈에 가이사의 초상이 그려져 있기도 하지만, 세금은 지상의 문제입니다. 지상의 것은 지상의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세속적 가치로 말씀하셨다면, 로마에 저항하고 유대인들의 해방을 추구하셨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말려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속화를 추구하다 보면, 본질은 다 잊히고 수단, 즉 정치와 경제만 남습니다. 이건 예수님이 다시 오셔도 해결하실 수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이야기를 아십니까? 이단자를 처벌하는데, 예수님이 구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심문관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면 이 지상에 교회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난들 몰라서 이러는 줄 아십니까? 그래도 예수님처럼 안 해서 천년 가까이 이만큼 끌고 왔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꾸짖으셨습니까? 끌어안고 위로해 주시지요. '권위를 보여주고 무섭게 하니 아직까지 교회가 존재하지,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기만 했으면 아무것도 안 남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위로하십니다.

이런 문제들은 하나의 행정이기 때문에, 저와는 먼 이야기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기독교는 어느 시대건 어디에서건 편안했던 적이 없습니다. 사랑받고 만세를 부르면서 환영받는 기독교인이란 없었습니다. 항상 외롭고 핍박받고 오해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내 이름으로 너희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어령 박사는 &ldquo;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는 빛도 어두움도 없다. 빛을 본 자만이 어둠을 알고, 죽음을 아는 자만이 생명이 뭔지 아는 것&rdquo;이라며 &ldquo;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지 않는데 어찌 생명이 있겠는가. 생명도 죽음도 없는 것&rdquo;이라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는 빛도 어두움도 없다. 빛을 본 자만이 어둠을 알고, 죽음을 아는 자만이 생명이 뭔지 아는 것”이라며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지 않는데 어찌 생명이 있겠는가. 생명도 죽음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성도라면... 편하게 지낼 생각은 하지 말아야

기독교를 종교로 보지 않으면, 성경만큼 비극적이고 눈물나는 책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산고의 아픔을 겪지 않고는 나를 다시 만날 수 없다(요 16:21)'고 하셨습니다. 가장 큰 슬픔과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산고의 고통'에 비유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저는 죽었다 깨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한 번도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남편이 아니지요(웃음). 예수님은 대부분이 남자인 제자들 앞에서 '여자들이 애 낳을 때 얼마나 아픈지 아니? 그 아픔으로 생명을 얻는 거야. 그걸 치른 후에야 너와 내가 만나'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를 믿고 교회를 세우는 순간, 하나의 선지자나 예언자로서 길 잃은 양떼들 앞에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다면, 편하게 지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저도 편안하게 지내려면 말년에 이 고생 안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요즘 화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 됐습니다. 오늘날까지 정보기술을 무기 만드는데 써서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드론으로 무인폭격을 하면 아군 희생자가 없으니 마음놓고 적진에 폭격하고 있잖아요. 로봇끼리 싸우면 사람이 안 죽으니까, 앞으로 한 번 전쟁이 나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이 지나간 산업시대, 자동차나 지나간 산업기술에 응용되면서, 모든 시스템이 우월해지고, 물질은 커지고 자연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끔찍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주의의 연장을 위해 인공지능이 쓰여진다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정보기술이 자연파괴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명기술로 쓰여야지, 더 이상 산업기술로 쓰여선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명이 자본이다>를 쓴 것입니다.

산업사회는 공장, 물건을 만드는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은 또 다시 인공지능을 비즈니스로 물건 만드는 사람이 연상되지요? 그러니 그 말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봇 왓슨'처럼 인공지능을 의료에 사용하면 죽을 사람을 많이 고칠 것입니다. 물건을 만들고 돈을 버는 산업자본, 금융자본이 아니라, 그것이 생명자본입니다."

▲이어령 박사는 &ldquo;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인간만의 긍지는 따로 있다. 기계에 패배했다고 죽지 않는다&rdquo;며 &ldquo;말은 우리보다 잘 뛰기에 말과 경주해선 이길 사람이 없지만, 말에 올라타면 이길 수 있다. 인공지능이 생기더라도 우리가 올라타면 된다&rdquo;고 밝혔다.

▲이어령 박사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인간만의 긍지는 따로 있다. 기계에 패배했다고 죽지 않는다”며 “말은 우리보다 잘 뛰기에 말과 경주해선 이길 사람이 없지만, 말에 올라타면 이길 수 있다. 인공지능이 생기더라도 우리가 올라타면 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시대, 교회가 희망 줄 수 있다

-하지만 교회마저 신자유주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 생명자본주의가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생명자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구글에서 지금 자동차를 만들잖아요? 아마존에서 쇼핑센터를 만들었잖아요? 이런 '디지로그'를 제가 10년 전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 기술을 산업자본에 쓰면 큰일 납니다. 생명자본에 써야 합니다. 병 고치는 왓슨처럼,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하는 것, 알파고가 바둑 게임을 하지 않습니까? 알파고가 바둑 둔다고 사람이 죽습니까? 재미있잖아요? 인공지능은 엔터테인먼트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교육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제 구구단 외워서 뭐하겠습니까?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이제 아이큐가 별 문제 안 됩니다. 늘 말씀드렸습니다. 어린이부터 여자, 남자, 노인이 10층까지 올라갈 때, 계단이라면 차이가 있겠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면 똑같습니다. 수능? 인공지능이 다 찾아줍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존경을 받을까요? 다른 사람이 아플 때 같이 울어주고 사랑하는 사람, 또 재미있는 사람,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정말 존경받는 사람은 똑똑한 친구가 아니라, 가슴이 따뜻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이 정말 존경을 받지 않겠습니까? 진짜 인공지능 시대가 된다면, '어느 학교 합격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산업과 금융 자본에 쓴다면, 주식회사는 다 망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이 다 계산해서 '여기에 투자하라'고 할 것 아닙니까? 사람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기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무슨 주식회사이고 투자입니까.

특히 양자컴퓨터가 생기면 인간이 1,000년 걸려 해결할 숫자를 눈깜짝할 사이에 풀어냅니다. 이게 보편화되면 암호도 걸 수 없어요. 지금 4자리 암호로 은행업무를 보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서 어느 사이에 빼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3차대전 납니다.

말이라도 인공지능에 '산업'을 붙이지 맙시다. 공장에서 공해 만들고 자연 파괴하고 농약으로 생산성 높이려다 먹는 것들 다 저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인공지능으로 또 그렇게 하자는 건가요? 이제 불합리한 것은 인공지능이 풀고, 인간은 인공지능이 못하는 따뜻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버려두고 왜 99마리에게 가고 있습니까? 하용조 목사님께 감사한 것은, 저 하나 기독교인을 만들기 위해 애써 주셨기 때문입니다. 쇼 하는 거 같아서, 한국에선 절대 세례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골방에서 하는 것인데, 왜 매스컴에 나가야 하냐고 했지요. 한국 아닌 객지 여관방에서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됐지요(웃음). 소문이 나서 일본 '러브 소나타' 찾아왔던 기자들이 전부 모였어요. 일본인데 한국인들이 더 많이 왔습니다. '러브 소나타'에 5천명이 왔는데, 그들을 버리고도 상처받은 한 마리 양을 구하려 하셨던 그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것이 딸과 저를 구제했습니다."

치료 안 하고, 암과 함께 지내고 있어

-건강은 어떠신지요.

알다시피, 저는 지금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암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약도 안 먹어요. 왜? 제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발자국 소리로 오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죽음에 관한 것 아닙니까? 백 마디 말 해도 소용 없습니다.한 번밖에 없는 사건이 탄생과 죽음입니다.

종교만이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다 사라지게 하지요. 그러니 나의 종교는 이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우리 딸은 훌륭히 그걸 해냈지요. 암이 숨었을 정도로. 죽기 직전 한두 시간까지 말입니다. 암이 우리 딸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그의 신앙에 있어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 딸은 처참하게 마르고 끝까지 고사해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부로서 빛나는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얼굴이었어요. 암도 그의 사랑과 신앙을 부수지 못했습니다.

저도 닥쳐봐야 알지만, 초연하게 글 쓰고 할 것 다 하면서 마치 영원히 사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성경의 말이 아니라, '까마귀 죽으려 할 때 그 소리 슬프지 아니한가. 사람이 죽으려면 그 말이 착하지 아니한가' 하는 증자(曾子)의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언이 진실한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부터 유언하듯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많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선 거짓말을 안 합니다. 지금 말하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되든 안 되든,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종교뿐이라는 것입니다. 문학이 할 수 있나요, 경제가 하나요? 다 살아있는 것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이 박사는 &ldquo;죽음은 누구나 다 겪는 문제이므로, 어떤 종교든 무종교일 순 없다&rdquo;며 &ldquo;우리는 죽어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종교만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rdquo;고 했다.

▲이 박사는 “죽음은 누구나 다 겪는 문제이므로, 어떤 종교든 무종교일 순 없다”며 “우리는 죽어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종교만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했다.

예수님, 죽으셨으니 부활... 종교만 죽음 다뤄

삶과 죽음은 맞닿은 동전 같은 것인데, 그걸 몰랐습니다. 죽음을 몰랐다는 것은 생명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죽음이자 생명입니다. '죽을 수 있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면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부활한다는 게 아니라, 내 삶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다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시라고 하니, 그제야 베드로는 바다에서 뛰어나왔지요.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신 예수님, 성육신하신 인간으로서의 신이지만, 부활 후에는 신이면서 지상에 머무르셨습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는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그러니 누구든 종교가 없을 순 없습니다.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죽음이 뭔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죽음은 종교에서만 다루고 있습니다."

창조는 기쁨... 상품 만들고 기뻐하는 것은 탐욕

-한 인터뷰에서 창조에 관해 말씀하시며 '창조에는 기쁨이 있다'고 하셨는데, 참 기독교적인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창조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은 하나님을 닮게 만들어진, 이를테면 '짝퉁'입니다. 짝퉁은 진짜가 될 수 없지만, 그 비슷한 것으로 값어치가 있어요.

하나님을 닮아서 인간은 창조를 합니다. 만들어 놓으시고, 그것을 보시며 기뻐하셨지요. 아, 거기 빛이 있고 어둠이 있고 거기 생명이 있고 무생물이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듯, 창조의 기쁨은 우주적인 것입니다. 죽는 자, 모털(mortal)에게 유일한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처럼 무엇인가를 만들어 놓고 즐거워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상품은 창조가 아닙니다. 상품을 만들어 놓고 기뻐하는 것은 탐욕이지요. 예술가가 하나님을 조금 닮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야윈 존재, 그것이 이 지상에서 별 존재감이 없는 예술가들입니다. 물론 상품화한 예술품으로 만족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30년 전 올림픽 개·폐회식... 돈 안 받고 하는 일이 진짜 보람

▲이어령 박사는 &ldquo;우리는 절대 신이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에게 &lsquo;무임승차&rsquo;하면 된다&rdquo;며 &rdquo;인간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면 엠마오 가는 길에 두 제자가 느낀 것처럼 밤길은 어둡지 않고 험하지 않다&rdquo;고 말했다.
▲이어령 박사는 “우리는 절대 신이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에게 ‘무임승차’하면 된다”며 ”인간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면 엠마오 가는 길에 두 제자가 느낀 것처럼 밤길은 어둡지 않고 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30년 전 서울 하계올림픽을 준비하셨는데,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6·25 전쟁 후,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폐허가 된 땅에서 엄마를 찾는 고아의 얼굴, 우리나라의 그런 사진들이 늘 퓰리처상을 받았지요. 1970년대까지 그랬던 나라가 겨우 10년 지나서, 전 세계의 대축제를 개최합니다. 젊은이의 무덤이었던 곳, 가망 없었던 땅에서 거꾸로 젊은이들의 축제가 열렸습니다.

전쟁은 젊은이들이 하지 않습니까. 평화란 젊은이가 노인을 묻는 것이고, 전쟁이란 노인이 젊은이들을 묻는 것입니다. 그런 전쟁을 겪었던 한국에서, 6·25를 겪은 사람들이 올림픽에 참여한다는 감회가 어떠했겠습니까. 피난을 떠나고 젊은이들이 서로를 죽였던 곳에서, 세계 젊은이들이 환희하고 놀았습니다. 스포츠는 한 마디로 노는 것 아닙니까? 전쟁과 반대입니다. 공동묘지가 화원이 된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제가 글 쓰는 사람, 대학 교수로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막판에 들어갔습니다. 매일 회의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박세직 위원장을 옆에 놓고 글을 써서 바로 결제를 받았지요.

보수가 없었어요. 돈 받지 않고 하는 일이 최고의 일이잖아요. 보람된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과 권력으로 움직이는데, 돈과 권력이라는 이해관계 없이 일하면 인형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신을 닮아, 자족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는데, 지금도 어디고 제 이름이 없습니다. 올림픽 관련 자료나 서적에도 없지요. 뒤에 알려진 것입니다. 올림픽 끝나고 마지막 다큐멘터리까지 영사실 들어가서 전부 같이 편집했지요. 그건 제가 좋아서 한 것입니다. 노는데 몇십 억 몇백 억을 주는 곳이 있겠습니까? 그냥 논 거에요(웃음).

이번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열립니다. 그 유명한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가면서 상소문을 올린 게 있습니다. '이곳 강원도 땅은 낮이 짧고 밤이 길며,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어, 어떤 곡식도 되지 않으니,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면하게 하소서'.

감자밭이라 불리며 가장 못 살던 곳이 유일하게 겨울 올림픽을 열 수 있는 곳이 됐습니다. 정철은 한탄했지만, 겨울이 긴 곳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과 슬픔 속에 살던 곳이 동계 올림픽을 통해 관광지가 되어, 지옥이 천국 되는 기적의 땅이 됐습니다."

단 한 번도 기독교를 비판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마지막으로, 2018년을 살아갈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평신도로서 기독교를 비판해 달라고 했지만,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 기독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기독교를 말할 만한 자리에 있지도 않지만, 오늘날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말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오만하고 순수한 척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말씀 중 하나가 '남의 눈 속 티끌을 보지 않고 내 눈 속의 들보를 보자'는 것입니다. 특히 유명 지도자라는 사람이 자기 눈의 들보를 놔두고, 마치 자신은 아니라는 것처럼 기독교를 비판함으로써 알리바이를 만드는 자는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 같은 죄인입니다. 만약 기독교가 비난받을 일이 있다면, 우리는 비난받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큰 소리로 오늘날 기독교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 '넌크리스천'이요 비난받아야 할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서의 구절을 그저 액세서리처럼 보지 말고, 비판하기 전에 성서에 분명히 적힌 대로 '내 눈 안의 들보'를 봐야 합니다. 그것은 보지 않고, 그보다 작은 남의 것을 봐서야 되겠습니까. '가랑잎이 솔잎보고 바스락거린다'는 우리 속담도 있습니다. 속담은 거짓말 안 합니다.

기독교가 위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더구나 교회는 한 집 건너 식으로 늘면서 경쟁도 늘어갑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잘 살게 되면 '다운(down)'되는데, 우리나라는 국민소득과 기독교의 융성이 같이 간 나라에요. 세계에서 아주 드문 나라입니다. 잘 살면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한 기적의 나라였는데,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진짜 교인들이 있어서 기독교라고 하면 사람들도 오고 구제도 받으러 온다고 생각했는지, 사이비나 기독교 같지 않은 기독교가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이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지, 나 아닌 것은 사이비고 자기는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을 안 읽어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금년 한 해는 남을 비판하기 전에, 기독교가 가장 어려운 고비에 봉착한 이 위기를, 스스로 넘어설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 되고 기둥이 되는 한 해가 되어 기독교의 위기를 극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위기는 사실입니다. 권면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여러가지 형편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힘이 없지만, 기독교의 리더들이라면 서로 비방하고 비난하고 알리바이를 만들 것이 아니라, 같이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리더가 됐으면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아직은 그래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는 믿을 수 있는 사회에요. 믿었기 때문에 실망이 욕으로, 하나의 비난으로 쏟아지는 역작용을 일으킬 때가 옵니다. 그 직전입니다. 그러니까 이 위기를 잘 지내서 희망의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가 부탁드리고 싶고,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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