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은 ‘목발의 탈북자’ 지성호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北서 왼다리 잃었지만 포기치 않고 현재 북한인권에 헌신

▲자신의 목발을 들어보이며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위해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 탈북자 지성호 씨 ⓒ유튜브(마라나타 TV) 영상 캡쳐

▲자신의 목발을 들어보이며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위해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 탈북자 지성호 씨 ⓒ유튜브(마라나타 TV) 영상 캡쳐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연두교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소개했던 탈북자 지성호 씨. 목발을 들어보이던 그에게 현지는 물론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했다. 그러면서 지성호 씨가 지난해 가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인권행사에서 했던 강연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당시 지성호 씨는 북한에서 살던 어릴적 이야기와 끝내 북한을 탈출한 과정, 그리고 북한 인권을 위해 살아온 이후의 삶을 눈물의 절규와 함께 털어놨다.

지 씨는 "1994년 이후 북한의 제 고향에서는 친구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1995년 제 할머니도 굶주림으로 돌아가셨다. 저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70년 동안 김씨 집안은 북한 주민들을 속여왔다. 친구들이 죽어가는 동안에도 북한식 사회주의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학교 선생님들은 거짓을 가르쳤다. 김정일은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압박하면서 곧 식량이 제공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야 북한의 식량배급 시스템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지 씨는 "제 고향 정치범수용소에서는 매일 1천2백톤의 석탄을 쉴새 없이 캤다. 그것을 훔쳐 팔면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어머니와 12살난 여동생과 함께 밤에 석탄을 훔치러 나갔다. 수용소에서 발전소까지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 석탄을 훔쳐야 했다. 달리는 열차에 몰래 올라타야 했던 것은 군인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특히 "아직도 석탄 바구니의 무게를 기억한다. 키가 120센치, 몸무게 20키로에 불과했던, 굶주린 소년으로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매우 말랐기 때문에 가방을 메면 척추뼈가 있던 곳의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나기도 했다"면서 울먹였다.

지 씨는 "14살이 되던 1996년 3월 7일 이른 아침 달리는 열차에 올라탔다.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어지러웠고 다음 역에서 내리려 할 때 정신을 잃었다"며 "정신을 차렸을 때 두 철로 사이에 누워 있던 나를 발견했다. 왼쪽 다리로 열차가 지나갔다. 다리가 잘려 겨우 달려 있던 상황이었다"고 당시 비참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숨을 쉴 때마다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 때의 두려움과 고통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다리를 잡아 피를 멈추려 했지만 왼손가락 세 개가 잘린 걸 발견했다. 그곳으로도 피가 쏟아져 나왔다"며 "저는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을 차례로 불러가면서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다. 영하의 날씨는 상처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고 했다.

이어 "여동생이 절 찾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목도리를 풀어 상처를 덮는 게 전부였다. 마침내 여러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실에 놓인 수술도구들을 여전히 기억한다"며 "수혈도 없었고 마취제도 없었다. 제 다리의 뼈를 톱으로 썰던 그 떨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술용 메스가 살을 자르던 소리와 제가 기절하던 것이 생각난다. 의사는 뺨을 때리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비명을 지를 때마다 수술장 밖에 있던 저희 어머니는 기절해서 쓰러지셨다"고 했다.

지 씨는 "의사는 약이 없이 저를 집으로 보냈고 우리는 항생제 살 돈이 없었다. 수술 뒤 하루 하루 생존하는 건 죽음보다 힘들었고 항생제와 마취제 없이 매일 밤 고통에 울었다. 죽여달라고 하다가 아침이 되어 잠들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저는 동생들이 힘들게 구해온 음식을 먹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북한은 여전히 기아에 시달렸고 당 간부를 제외하고 모두가 굶주리고 있었다"며 "제 남동생은 시장 쓰레기통에서 하루종일 찾은 면을 모아 씻어서 제 입에 넣어주었다. 저는 동생이 가져다 준 그 면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병간호 때문에 동생들은 제가 나을 때까지 풀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제대로 키도 크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지 씨는 "여름이 되자 잘린 다리 부위의 살이 괴사하기 시작했다. 악취가 났고 뼛조각이 살 밖으로 튀어 나왔다. 사고가 나고 240일이 지난 11월에서야 고통은 수그러 들었다"며 "저는 미래가 없다고,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자살하려고도 생각했다. 더 이상 가족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2000년에 목발을 짚고 중국으로 건너가 몇 키로그램의 쌀을 구해왔다. 북한에 돌아와 경찰에 잡혔고, 경찰은 너 같은 병신이 중국 땅으로 넘어가서 구걸한 건 공화국의 수치라고 했다. 다리가 없는 제가 중국에 가서 구걸한 것이 나라와 수령의 이미지를 망쳤다는 것이다. 쌀을 압수당했고 고문을 받았다. 저와 같이 잡힌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것이 마음에 큰 상처"라고 했다.

지 씨는 "그런 불의가 저로 하여금 북한을 탈출하게 했다. 2006년 목발을 짚고 남동생과 함께 탈북했다. 떠나기 전 아버지와 함께 술 한 잔 나눈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셨고 저도 함께 포옹하며 울었다"고 했다.

그는 "동생과 북쪽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다 깊은 곳에 빠졌는데 남동생이 제 머리채를 잡고 두만강을 건넜다. 동생에게 감사하다"며 "그렇게 목발을 짚고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6천키로를 이동해 태국에 도착했다. 라오스 국경을 넘을 때 목발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 때 누구도 저 같은 고통은 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맹세하고 기도했다"고 했다.

지 씨는 "2006년 7월 긴 여정 끝에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그 때 까장 큰 소원은 의족과 의수를 갖는 것이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곧 그것을 제공해 주었다. 이 기쁨을 아버지와 함께 나누고 싶어 북한에 연락을 취했다. 고향 지인들에게 연락이 닿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이 중국으로 탈북했는데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탈출하다가 붙잡혀 보위부에서 고문을 당하다 돌아가셨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 가족의 비극과 제 장애에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다. 당당히 다시 걷고자 했던 어릴적 소원을 이루었다. 아버지는 제가 대학에 가길 원하셨는데 대학교를 졸업해 그 소원을 풀어드렸다"고 했다.

지 씨는 "자유 대한민국에 도착해서 북한의 장애인과 북한인권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작은 사무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우(NAUH, 북한 인권단체-편집자 주)를 창립하고 지난 4년 간 저와 같았던 어린아이, 장애인, 여성들을 중국을 통해 탈북시켰다. 그 수가 1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는 인터넷이 없어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진실과 문화, 지식을 북한에 알리고 있다. 북한 내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할 뿐 아니라 북한 밖 소식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과 라디오로 북한의 정보를 알 때 북한은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끝으로 지 씨는 "저는 오늘 죽음의 위기에서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섰다"면서 그 동안 자신이 의지해 온 목발을 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제가 1만 키로를 건너 의지해 온 목발이다. 이 목발은 포기하지 않고 자유를 찾아온 상징이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마지막 유품"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자유를 위해 제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북한을 위해 함께 해 줄 때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가 깃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며 강연을 마쳤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성호 씨를 포함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탈북자 9명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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