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황제’ 아닌 ‘하나님’의 섭리와 기획 찾아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박흥식 교수, 홍성강좌 ‘중세 유럽과 그리스도교’ 첫 강의

▲박흥식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박흥식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3년 프로젝트 '홍성강좌: 역사에서 개혁의 길을 찾다'가 13일 중세 편 '그리스도교 세계의 안과 밖: 중세 유럽과 그리스도교'가 개강했다.

이날 강좌에서는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좌 기획자이기도 한 박흥식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가 '중세 유럽을 보는 시각: 그리스도교 세계?', '로마제국의 유산: 그리스도교와 게르만'을 주제로 총론적인 강의를 했다.

박흥식 교수는 "우리는 보통 교회사와 세속사를 분리하는데, 세속사 영역까지 신앙인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넓은 관점으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져다 주지 않겠나"며 "세속사 영역까지 기독교 관점으로 조망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교회사는 전체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그런 시선으로 쓰여진 책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오는 '섭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지식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이뤄가는 활동'이다. 보수적 신앙의 관점에서 봐도, 섭리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인간이 아닌 동식물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며 "우리는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앙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역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해석은 하나님의 섭리로 세상을 보는 훈련"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고딕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13세기 아미엥 성당, 쾰른성당 돔 전경, 레겐스부르크 돔 구조. 돔 구조 건축물은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었다. ⓒ박 교수 제공

▲(왼쪽부터) 고딕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13세기 아미엥 성당, 쾰른성당 돔 전경, 레겐스부르크 돔 구조. 돔 구조 건축물은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었다. ⓒ박 교수 제공

그는 '역사'를 공부하러 온 수강생들에게 "역사는 암기과목이 아니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나와 너, 그리고 공동체와 국가 등을 이해하는 학문이어서, 암기력보다는 오히려 논리적 사고와 상상력 등이 필요하다. 최종 목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셨는지 해석할 수 있는 '작은 역사가'가 되는 것"이라며 "더불어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지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는 기록(사료)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이는 당연한 것 같지만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주로 공부할 중세 유럽은 최소 500년 전, 최대 1,500년 전으로, 너무 멀고 낯선 시대"라며 "13세기 영국의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이 그렇듯, 중세 시대 기록은 아무리 잘 번역해서 보여드려도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세는 '암흑 시대', '기독교 세계'였나?

이후에는 '암흑 시대(Dark Ages)', '그리스도교 세계(Christendom)'로 대표되는 중세에 대한 '편견'을 지적했다. 그는 "'암흑 시대'라는 건 배울 게 없고 건질 게 없다는 뉘앙스로, 인간이 짓밟히고 무지몽매했던 시대라는 편견을 준다"며 "이러한 생각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학자들이 보편화시키고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 더욱 강고해졌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 기원은 14세기 르네상스 지식인 페트라르카가 고대와 자신이 살던 피렌체를 직접 연결하기 위해 그 사이 중간기를 평가절하한 것이었다"며 "인간 중심, 고전 강조, 인간성 본질 탐구 등을 중시하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게 중세는 그리 매력적인 시대가 아니었고, 탈기독교화의 계몽주의 시대 역시 중세를 '인간성 말살'이라는 관점에서 봤다"고 했다.

▲고딕 양식의 파리 생트 샤펠 성당(Sainte-Chapelle). 독실한 신자였던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 황제에게 구입한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과 십자가 파편 등을 보관하기 위해 1248년 완공했다. 중세인들의 미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박 교수 제공

▲고딕 양식의 파리 생트 샤펠 성당(Sainte-Chapelle). 독실한 신자였던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 황제에게 구입한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과 십자가 파편 등을 보관하기 위해 1248년 완공했다. 중세인들의 미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박 교수 제공

그는 "그러나 중세를 알면 알수록, 그 시대 역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투쟁했던 때였음을 깨닫게 된다"며 "치밀한 설계에 의해 지어진 고딕 건축부터, 동력과 시계 등을 보면 놀랄만한 기술적 축적과 발전이 있었고, 미적 감각도 현대에 뒤지지 않는다. 과학사가들 중 중세 연구자들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이에 반박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배했던 시대'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교 세계'라는 말은 신앙에 의해 운영되고 신앙이 지배했던 시대라는 뜻인데, 그렇지 않다는 견해들도 적지 않다"며 "중세 사료들은 대부분 성직자들이 남겼기에, 사료만 보면 굉장히 기독교적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많지만, 다른 사료들을 보면 또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고 했다.

박흥식 교수는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중세는 신앙적인 시대였다. 기독교인들도 정반대 의미에서 '중세는 기독교 세계'라고 말하는데, 문제는 교회의 의도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수용됐는가 하는 점"이라며 "중세 기독교가 1천년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등을 사람들에게 설명했지만, <치즈와 구더기>, <몽타이유> 등의 책에서 보듯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이를 받아들이면서 기독교와 다른 '민중신앙'을 믿는 이들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중세가 기독교 세계라는 것은 일종의 신화로, 중세 유럽은 지금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기독교화된 사회'가 아니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성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홍성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중세는 단일 종교 사회, 현대 유럽 문명의 뿌리이자 어린 시절"

그는 "그럼에도 강의 주제가 '그리스도교 세계의 안과 밖'인 이유는, 중세 유럽 사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종교 사회였기 때문"이라며 "제가 보는 중세는 현대 유럽 문명의 뿌리이고, 어린 시절이었다. 중세에 유럽 각국의 경계와 민족의 정체성이 현재 모습으로 거의 확립됐고, 현대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한 시기였다"고 했다.

또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18세기에 '발견'된 것일 뿐, 경험적이고 제도적인 민주주의는 중세 시대, 특히 봉건 사회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고대로부터 직접 온 것이 아니라, 중세를 거치면서 발전한 것"이라며 "'복식부기'가 12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자본주의도 보통 12-13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자본주의도 중세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다. 현대 문명 역시 중세로부터 어떻게 이어졌는지 알게 되면, 현대에 대한 깊이 역시 풍부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교수는 "고대는 이교 사회, 중세는 그리스도교 사회, 근대는 탈그리스도교 사회, 현대는 다종교 사회라 할 수 있다"며 "1천년에 이르는 중세도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500-1000년의 중세 초기는 고대적 요소를 극복해 가고 봉건 제도가 발전하는 시기, 1000-1300년의 중세 성기는 고유한 개성을 확보하고 상대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 1300-1500년의 중세 말기는 국가와 교회의 충돌, 시민세력 성장과 사회적 갈등, 전명병과 종교권력 분열 등 '위기'의 시기였다"고 구분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조각상. ⓒ박 교수 제공

▲콘스탄티누스 황제 조각상. ⓒ박 교수 제공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박흥식 교수는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를 그리기에 앞서 기독교를 공인한 것으로 알려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화'를 벗겨내고자 했다. 그는 "기독교를 공인했다는 '313년 밀라노 칙령'은 동시대 어떠한 자료에도 언급돼 있지 않고, 칙령이 발표되면 기록되는 사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칙령들 중 유일하게 사료가 없는 것"이라며 "이 칙령은 동시대 주교이자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세비우스가 칙령에 대한 자료를 한 번 거론했고, 이후 16세기 가톨릭 추기경 바로니우스가 처음으로 언급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직전 보았다는 '환상'도 동시대 다른 문헌에는 없고, 유세비우스와 락탄티우스 등 두 교회사가의 기록에만 언급돼 있다"며 "'밀라노 칙령'은 사실상 311년 4월 세르디카에서 갈레리우스가 반포한 '종교관용 칙령'을 의미할 것"이라고 전했다.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봤다는 &lsquo;십자가 환상&rsquo;을 나타낸 그림. ⓒ박 교수 제공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봤다는 ‘십자가 환상’을 나타낸 그림. ⓒ박 교수 제공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4년 함께 다스리던 리키니우스 황제를 제거한 것도 '기독교 박해' 때문이라고 하는데, 결국 콘스탄티누스의 권력욕, '온 세상에 대한 지배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며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을 병행 숭배한 일종의 혼합주의 신도였고, 그에게 종교는 통치 수단이자 정치 행위에 불과했다. 그 시대 기독교로의 전환은 제국 통일 과정에서 정책적인 결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폭로했다.

박흥식 교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는 만들어진 신화이다. 승자가 역사를 조작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세례를 받은 것도 당대의 관례였다"며 "학문의 역할은 질문하는 것, 그리고 '신화'를 제거하는 것이다. 굳이 황제를 높이는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황제'의 기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기획을 찾으려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야만적·폭력적·반문명적·탐욕적·비위생적'이었다는 당대 게르만족에 대한 역사가들의 설명에 대해서도 "게르만 역사는 그들과 싸웠던 로마 제국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며 "게르만족은 면도기가 수없이 발견될 정도로 위생과 외모에 신경을 썼고, 로마인은 입지 않던 바지를 입었으며, 그들만의 문자가 있었고, 늘 움직여야 하는 유목민이었기에 귀금속을 상대적으로 더 귀중히 여겼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지도가 &lsquo;그리스도의 몸&rsquo;으로 표현된 '엡스토르프 세계지도(Ebstorfer Weltkarte)'. 지도 윗부분에 예수님의 얼굴이, 아래에 발이 보인다. ⓒ박 교수 제공

▲전 세계 지도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된 '엡스토르프 세계지도(Ebstorfer Weltkarte)'. 지도 윗부분에 예수님의 얼굴이, 아래에 발이 보인다. ⓒ박 교수 제공

홍성사 주최로 오는 6월 26일까지(공휴일 휴강)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진행되는 이번 홍성강좌는 서로마제국 멸망 후부터 종교개혁 이전, 즉 중세 유럽사를 총 12회 24개 주제로 강의하게 된다. 추후 강의 내용은 책으로 출간되며, 수강생들에게는 1부씩 증정한다.

'역사에서 개혁의 길을 찾다'는 주제로 진행되는 홍성강좌는 교회사와 세속사를 통합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2016년 가을학기 '로마와 그리스도교(-6세기)'를 김덕수 교수(서울대 역사교육과)가, 2017년 봄학기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18-19세기)'를 윤영휘 교수(경북대 사학과)가, 2017년 가을학기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20세기)'를 배덕만 교수(느헤미야)가 각각 강의했다.

▲태양신과 함께 새겨진 콘스탄티누스 황제 동전 형상. ⓒ박 교수 제공

▲태양신과 함께 새겨진 콘스탄티누스 황제 동전 형상. ⓒ박 교수 제공

홍성강좌는 이번 봄 강좌를 거쳐 2018년 가을학기 박흥식 교수의 '종교개혁에서 종교전쟁으로: 종교개혁은 왜 길을 잃었는가(16-17세기)'로 마무리된다. 수강료는 12만원.

문의: 02-333-5161, eun@hs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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