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재 선교칼럼 6] 선교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
◈친구 따라간 몽골 선교
몽골을 방문한 많은 분들이 우리 부부에게 "어떻게 몽골에 갈 생각을 했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당시 몽골은 가장 폐쇄적인 공산주의 국가였고 아직 한국에 알려지기도 전인데, 어떻게 몽골을 선교지로 선택했는가 하는 질문이지요.
제가 몽골에 가게 된 이유를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저 자신이 어떤 거대한 비전을 품어서가 아니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를 따라 몽골에 간 것뿐이었습니다.
1991년 여름, 신학대학원 동기인 친구 안교성 목사가 교회에서 선교 정탐여행(Vision Trip)으로 몽골에 다녀온 직후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때 저한테 몽골에 함께 선교사로 가자는 제안을 불쑥 했습니다.
"몽골에 갔더니,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어. 선교사가 꼭 필요한 곳인데, 살기 힘들어서 가는 사람이 없어. 선교사로 가야겠는데, 혼자 가려니 겁난다. 윤 목사, 선교에 관심 있지 않아? 나하고 같이 안 갈래?"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다는 그 말이 저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럼 가야지!"
그날 우린 그 자리에서 선교사로 몽골에 가자고 약속했습니다. 사무실에 오자마자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우리 몽골 선교사로 갑시다!"라고 했더니 제 처가 곧바로 대답합니다.
"비행기 표 샀어요? 당장 가요!"
저는 속으로 '비행기 타고 나간다고 선교사인가? 준비도 하고 훈련도 받아야지' 하면서도 아내가 흔쾌히 동의해 주어서 용기가 났습니다. 아내는 선교지에 가서 일하기를 기도해 왔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남편 입에서 선교사로 가자고 하자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내가 동의하니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 집은 얘기가 끝났는데 그 쪽은 어떻게 됐나?"
친구 안교성 목사가 되묻습니다.
"그 집은 선교사로 나가는 결정, 일생이 걸린 중요한 얘기를 전화로 하는가? 집에 가서 상의하고 결과를 알려주지!"
그날 밤 10시쯤 안 목사님이 우리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윤 목사네 집이 간다니까 우리 집사람도 가겠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 두 가정은 그날로 몽골 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계산이 빠른 시대에 좋은 결단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중대한 헌신을 할 때, 이것 저것 다 따지고 계산하다가는 언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결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일에 계산이 복잡하면 안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 1874-1917)는 "단순함은 하나님께 유익한 자가 되겠다고 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단순하게 헌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선교 준비는, 철저하게!"
그러나 실생활에서 우리는 이와 반대로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결단은 우유부단, 준비는 어영부영"하기 때문에 비신자들로부터 크리스천들이 계산적이고 말이 앞선다는 말도 듣습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일과 현장 사역은 철저하게!
저희가 결단은 단순하게 했지만, 준비는 치밀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몽골에서 몽골어를 가장 잘 하는 한국 사람 10명을 꼽으라면 그 중 7-8명이 선교사입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국빈 방문했을 때 대통령 부부와 장관, 경호실, 의전실 등 공식 통역 8명 중 6명이 선교사였고, 저 역시 외교안보실에서 통역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최초의 한영사전도 1890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선교하기 위해, 한국어를 철저하게 배우려고 노력한 결과물입니다. 최초의 한-몽 사전, 몽-한 사전도 울란바타르대학교에서 일하는 여병무·강선화 선교사 부부가 만들어 출판했습니다.
이 사전은 15년 동안 네 번에 걸쳐 수정증보판을 냈는데, 지금도 가장 잘 팔리는 사전으로, 수익금으로 한-몽 관련 자료와 기독교 서적들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몽골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었기에, 외교부와 무역진흥공사(KOTRA)의 지역 자료를 얻어 정독하고, 몽골 사회과학원에서 영어로 발행한 'Information of Mongolia'를 구해 연구했습니다.
몽골 가기 전이나 입국 후에도 수년 동안 현지 조사를 계속하니 꽤 많은 자료가 쌓였습니다. 4년간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여 '몽골 선교 현황 1996'이라는 자료집을 한인 선교사회를 통하여 발간했습니다.
몽골에 선교하거나 정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몽골 법령들을 수집하여 임태수 선교사가 한국어로 번역하여 도움이 되도록 했는데 한국정부 법제처에서 정식으로 발행하기도 했습니다<아래 사진>.
법령을 번역하던 그는 나중에 몽골 변호사 자격을 얻어 전문직 선교사로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저를 몽골에 데려간 안교성 목사는 몽골성경번역위원회(MBTC) 총무를 맡아 신구약 성경 번역 작업을 총괄, 몽골 기독교 초창기에 개척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몽골을 향한 뜨거운 마음,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
몽골에 가겠다고 결심을 하니, 그날부터 몽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번쩍합니다. 일기 예보에 "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에서 발달한 고기압의 영향으로 내일은 추워지겠습니다"하면, "오! 몽골" 하게 되고, 새벽기도 시간에 눈을 감으면 몽골 초원과 고비 사막이 어른거리고,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몽골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하나님 이 몸을 바칩니다. 저를 받아 주소서!"
지금 생각하니 이것은 '자가 발전'이었습니다. 상대방은 생각도 없는데 혼자서만 뜨거워지는 것이지요. 선교한다, 봉사한다면서 현지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선교사 파송 준비를 다 마칠 때까지 저희들은 정작 몽골 입국 비자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선교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선교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으로 하는 것이며, 세심한 실행 과정이 필요합니다. 공식 선교사 훈련도 받았고, 후원자들도 준비했지만, 장기체류 비자를 받지 못해 결국 선교사 신분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현지 국립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유학생 신분으로 겨우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몽골로 지역을 결정한지 14개월이 지나서야 6살 난 딸과 2살 된 아들, 그리고 안교성 목사 부부와 아들, 모두 7명이 떨리는 마음으로 몽골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윤순재
전 몽골 선교사(1992-2012)
현 주안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