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배양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문화 속에서 잉태된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통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서 자유주의자들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편에 이어,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대 신학자들이 쓴 원전을 따라가면서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본래 의도를 밝히 보여주려 한 '루터 신학자' 김용주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현대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들의 주요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알려고 애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현대 신학을 이끈 주요 신학자들의 책을 읽어내야 하고, 그들의 사상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총신대 출신으로 '마르틴 루터'를 전공하셨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전까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이해했던 것과 신대원에서 배우는 것들이 일치하지 않음을 느끼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때는 정치·사회적으로 복잡하던 1980년대 후반이어서, 재미없게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똑똑하다는 학생들은 해방신학·민중신학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저는 그쪽에 흥미를 느끼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 디트리히 본회퍼와 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의 책을 읽고, 김영한 박사님(現 기독교학술원장)의 독일 신학 강의도 들었습니다. 독일어를 전공하고 신학교에 갔기 때문에, 그들의 책을 원전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회퍼의 기독론이나 몰트만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하나님> 등 그들의 책에 유독 마르틴 루터에 대한 인용이 많아 놀랐습니다. 다른 분들에 대한 인용은 거의 없었거든요.
루터 하면 정치신학이나 진보 신학자들이 교조주의의 화신(化身)이나 '이신칭의를 만들어 행위를 없애버린 주범' 쯤으로 여기는 줄 알았고, 칼빈을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어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루터를 무시하는데, 정작 그들은 루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몰트만이 거론한 '십자가 신학'의 창시자가 바로 루터 아닙니까. 루터는 이를 교회 안에서 적용했지만, 그들은 이를 정치 영역에까지 끌고 나간 것입니다. 거기서 굉장한 충격을 받고, 그 동안 루터에 대해 들어온 것들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인용한 파울 알트하우스의 <마르틴 루터의 신학>을 쭉 읽는데, 제가 어릴 때부터 기독교에 대해 생각했던 부분과 80-90% 일치했습니다.
이후 신학교 3학년 때 루터에 관한 논문(M.Div.)을 쓰고 루터의 저술을 직접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루터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왕 하는 것 루터의 본고장인 독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말씀처럼 종교개혁의 나라 독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했습니다. 종교개혁은 실패한 것일까요.
"종교개혁 속에 자유주의 신학이 나올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칼빈이 이야기했듯,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가톨릭은 공의회나 교황의 언설을 그대로 따라야지,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 해서 인정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전통보다 성경을 진리의 척도로 두면서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목사님이든 평신도든, 누구든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문법만 잘 알면 성경을 잘 알 수 있다는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을 촉발한 루터의 성경 해석을 답습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통주의'인데, 루터나 칼빈은 그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해석하는 종교입니다. 물론 전통을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전통에 매여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전통의 기반에서 성경을 새롭게 해석해 가야 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것은 이성의 시대에 맞지 않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는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이 그 시대에 쓰여졌지만 지금은 맞지 않다'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에 가능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는 로마가톨릭과 달리 전통을 깨뜨려야 합니다. 자유주의자는 그걸 했지만, 깨뜨리지 말아야 할 전통까지 깨뜨려 버리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저는 정말 깨지 말아야 할 전통은 종교개혁을 기초로 이어가면서 새로운 해석 작업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앞부분을 너무 소홀히 한 채 새로운 것만 이야기하다 옛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종교개혁에서 이탈한 부분입니다."
-'자유주의의 공기'를 직접 경험해 보니 어떠셨나요.
"먼저 자유주의 신학과 자유주의는 구분해야 합니다. 보통 자유주의라 하면 기존의 전통이나 권위로부터 떨어져 나오려는,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주로 쓰는 말입니다. 당시 베를린에선 전 분야에 걸쳐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기존에 내려왔던 것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 했습니다.
이는 뮌헨 등 남쪽 바이에른 주와는 비교되는 분위기입니다.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도, 남쪽은 가톨릭에 머물렀습니다. 종교개혁이 미미했지요. 지금도 그곳은 그야말로 전통과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는 분위기입니다. 가톨릭 문화가 그런 것 아닙니까. 위에서 이야기하면 다 받아들이는....
그러나 베를린을 위시한 북쪽에선 상부의 지시라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비판할 것은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자유주의입니다. 스스로 만들어내고, 기존 것을 답습하지 않으려 하고, 내려오는 것을 깨뜨리려 하고.... 특히 베를린을 중심으로 이런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싹틀 수 있는 좋은 분위기였지요."
-정통 교회나 신학자들의 책임도 크군요.
"우리 강단에서는 예전부터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말씀을 들어보면 기복주의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성부·성자·성령의 경륜적 삼위일체라든지, 수많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등장하고 예수님이 나시고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복음이 주어졌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전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봅니다. 이 엄청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자기 아들의 희생까지 감수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 말입니다. 그런 사랑을 얼마나 잘 이해해서 설득력 있고 능력 있게 전하고 있나요.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그 복음 때문에 생명까지 바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먹고 살기 위해, 돈 벌고 명예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헌신하고 목숨까지 바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변화되지 못하고, 밖에서는 더더욱 힘이 없이 살아가지 않나 합니다.
루터나 칼빈, 좀 더 올라가면 어거스틴과 바울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이해했는지 연구해야 합니다. 현대 신학자들이 정통 신학자들보다 성경을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오히려 루터나 칼빈, 초대교회 교부들로부터 깊이 있는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교회에서 선포하고 드러낼 때 변화가 일어나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루고자 했던 '도덕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가운데, 매이지 않고, 자발적으로, 남의 판단이 아니라 자기 판단에 의해, 내가 예수님이 너무 좋고 진리이기 때문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주의 신학의 완성 아닐까요."
-자유주의 신학 원전이 한국어로는 얼마나 번역돼 있나요.
"슐라이어마허는 부분적으로 돼 있고, 하르낙도 조금 돼 있지만, 리츨은 아직 안 돼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 하면 리츨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책을 잘 안 읽어서, 나왔던 책들마저 절판되고 있습니다. 바르트는 이번에 교회교의학 전권이 출간됐다고 들었습니다. 몰트만이나 본회퍼는 많이 출판돼 있습니다. 번역이 돼 있어도, 그런 저서들이 나온 것에 대한 사상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평신도들 중에 본회퍼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번지수가 어디인가를 알고 읽어야 합니다. 그의 옥중서신이나 <나를 따르라> 등만 읽으면, 그 전의 종교개혁 신학자들은 마치 순종도 없었던 이들처럼 돼 버립니다.
본회퍼가 누구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히틀러에 항거하다 순교한 인물입니다. 본회퍼는 책에서 루터가 순종을 가르치지 않고 믿음만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가 순종이 없었습니까? 루터 당시 히틀러 같은 사람이 바로 교황이었습니다. 모두 침묵하고 있을 때,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쓰면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1521년 보름스로 끌려가 정죄당하고 평생 사제 직위도 박탈당한 채 도망다니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순종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 정도로 우리의 신학이 나이브(naive)합니다. 종교개혁 신학을 비판하는 현대 신학자들 이야기에는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데, 우리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본회퍼에게 히틀러가 있었다면, 루터에게는 교황이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이 땅에서 목숨을 앗아갔지만, 당대 교황은 저 세상에 가서도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사악한 존재였습니다. 그에게 항거하고 투쟁하고, 목숨을 걸고 유배당했던 사람에게 '순종이 없었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슐라이어마허 이야기가 나왔는데, 책을 보면 그는 신학 시스템을 만드는 걸 부정했지만 교의학을 가르치고 썼는데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읽어선 안 됩니다. 칼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에 대해 '신학 강단에서 설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정통 신학을 시스템화하는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라지고 거기에 매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시를 성경이라는 자료에서 찾는 일을 철저히 했지만, 그들은 성경을 '신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쓴 것'으로 여깁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을 참고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것으로 신을 만나려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성과 의지가 아니라, 성경을 읽고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데, 그걸 신학으로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칼 바르트도 초기에 <로마서>를 쓸 때만 해도 '신학 같은 것을 만들면 하나님을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와 바르트는 원수지간이었지만, 닮은 데가 많습니다(웃음). 어제 체험한 하나님과 오늘 체험한 하나님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에 매이다 보면 체험을 할 수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신학을 깨뜨려버리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후기에는 대작인 <교회교의학>을 쓰지 않았습니까.
슐라이어마허도 마찬가지로 후반기에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고 집필합니다. 불트만이 '전제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전제 없는 해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제 없는 해석'이라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독선입니다. 굉장한 교만인데, 오늘날 성서신학자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나름의 신학적 전제 속에서 이후 작업이 이뤄지는 것인데, '신학 없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것입니까? 스스로 하나의 신학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개혁주의 성서신학자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자신의 성경 해석을 교리화시켜 버립니다. 슐라이어마허가 했던 것과 뭐가 다릅니까?"
-2권은 칼 바르트와 불트만 등의 신정통주의, 3권은 본회퍼와 판넨베르크 등 정치신학을 다룰 예정이시지요.
"보수 신학계에는 바르트 관련 서적이 거의 없습니다. 개요서가 한 권 있을 뿐, <교회교의학> 전체를 읽고 이에 대해 쓴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바르트를 비판만 하는 것이지요. 계시론만 해도 바르트의 책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정확한 근거를 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해론 관련 서적도 몇 권이 되는데 읽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고달픈 작업이기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나마 독일어를 조금 해서 바르트의 책을 읽을 수 있고, 신학의 흐름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바르트가 루터와 칼빈을 매우 많이 인용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많이 인용합니다. 신학적 배경이 약하면, 바르트 책은 한글로 번역해서 주어져도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과 싸우려면 우리의 실력부터 길러야 하는데, 여기에 신경쓰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한국 보수 신학계에서 처음으로 칼 바르트에 대해 체계적인 비판을 가하고자 합니다. 불트만도 원전을 읽고 비판해야 합니다. 독일에서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신학은 배양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문화 속에서 잉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문화를 16년간 경험한 것이 이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