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인 목사의 호치민 단상] BTS와 나의 사랑
이것을 이렇게 대답한다면 당신은 옛날 사람이다. ‘보톡스?’ ‘비틀즈?’ 혹은 신앙의 힘을 빌려 억지로 ‘밥티즘?’이라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BTS가 무엇인지’ 연배가 있는 성도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심사, 세대, 신앙의 상태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단어들을 끄집어 내놓았다.
‘보톡스’라고 말한 그녀는 아마도 미용에 관심이 많은 성도일 것이다. ‘비틀즈’라고 한 장로님은 그나마 음악에 조예가 있고, 삶은 아는 분일 것이다. 그럼 ‘밥티즘’이라고 말한 권사님은 어떤가…. 영어 철자는 맞지 않지만, 목회자가 물어 보니 믿음으로 대답한 것일 것이다.
그럼 여러분이 다 아는 그 대답은 무엇인가? 바로 방탄소년이다. BTS 는 전세계에 Kpop을 알리고 한류를 이끌고 있는 글로벌 대세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은 현재 전 세계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하나이고, 미국 빌보드 차트를 쥐락펴락하며, 전세게에 ‘아미(팬 그룹, 팬덤)’라는 군대를 남녀노소 국적불문하고 거느리고 있는 대세 중 대세다.
이들의 영향력을 리서치한 한 방송국 다큐멘터리 프로에 따르면, 이들이 올리는 SNS의 리트윗 숫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보다 2배 이상 많은 5억 회 정도 된다고 방송하기도 했다. 이들은 간단한 SNS 사진과 문자로 한국 인구의 10배나 되는 전 세계 자신들의 군대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목회자로서 부럽다.)
그렇지만 이러한 영향력은 아빠로서 먼저 체험하게 되었다. 얼마 전 사춘기 큰 딸과 이야기 하는데, 큰딸이 “우리 10월에 시카고 간다” 이러는 거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아니지, 아빠가 6월에 달라스로 출장간다고 했지, 언제 시카고 간다고 했냐?”
그런데도 딸은 대답도 없이 자기 이야기만 계속했다. “우리, 빌보드 때문에 시카고 가!” 이야기인즉슨, 방탄소년단이 10월에 미국 시카고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아주 크게 다시 소리쳤다. “방탄소년단이면 방탄소년단이지, 방탄소년단이 왜 ‘우리’냐? 니가 방탄소년단 이냐?”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자기들을 ‘우리’라고 부른단다. 방탄소년단은 우리 궁예나를 모르지만, 궁예나의 일방적인 공동체 의식으로 큰딸과 방탄소년단은 ‘우리’가 되었다.
나에게는 방탄소년단과 딸이 따로 있지만, 딸에게는 방탄과 자신이 하나였다. 물론 이들에게 ‘아미(ARMY)’라는 팬클럽이 있지만, 종종 이러한 ‘아미’라는 팬클럽 호칭도 부차적인 듯 했다. 더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바로 ‘우리’다. 이들은 방탄소년단과 자신의 동일시하고, 방탄의 메시지를 수용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삶의 지표로 삼는다.
그리고 당신의 주변에 있는 방탄소년단 팬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다른 뮤지션과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이야기하고 아픔도 이야기 하지만, 다른 어떤 연예인과는 달리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방탄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에서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들을 추종하는 것이다. 소위 ‘덕질(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덕질은 팬을 넘어 같은 DNA를 가진 복제물과도 같다.
그럼 왜!?
사람들은 왜 그들의 메시지에 열광하는가? 그들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가? 단지 한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들과 동일시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그 비결이 너무 궁금했다.
이런 궁금함은 목회자라는 나의 직업적 관심에서 봤을 때는 매우도 당연하고 끝까지 파헤쳐야지 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별히 사람들이 메시지에 집중하게 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도록 돕는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에, 그 끝까지 살펴보고 싶은 사명 의식도 있었다.
이들은 세상 속에서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스스로의 일상과 고민을 토대로 글을 쓰고 그 해답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not today’라는 노래가 있다.
이들은 그들의 노래 속에서, 언젠간 꽃은 지고 고난이 다가오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라고 항변하며, 계속 자신이 가는 그 길을 걷기를 독려한다. 그리고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간다고 노래하기도 하고, 오늘은 포기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게다가 날아갈 수 없으면 뛰고, 뛰어갈 수 없으면 걸어가라고 한다. 걸어갈 수도 없다면 기어서라도 가자고 한다. 힘들어도 앞으로 나가라고 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아픔을 알려주지 않고 꿈을 좇도록 독려하고 독려한다.
심지어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목사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마틴 루터 킹목사의 핵심 설교 문구를 인용하기도 한다.
“오늘이 아니어도 됩니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바꿀 수 있습니다.”
소위 가요요 세상 노래라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매우 무거운 부끄러움이 남았다. 좁은 길을 걷고, 사명을 위해 출발한 성직이라는 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출세를 추구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두어야 하지만 눈물의 씨앗보다는 성공의 지름길을 추구하고, 세습과 입신양명이라는 유교적 전통을 벗어나지 못한 기독교가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가 나누어지는 분기점을 ‘자기 희생’이라고 말한다. 즉 ‘자기 희생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으면 고등 종교이고, 나의 복 나의 성공을 추구하고 절대자마저 성공의 도구로 생각하면 하등 종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고차원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순도가 낮은 것들이 우리 속에 섞여 버렸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모를 지경이다. 초대형교회 인기 목회자의 불륜 사실로 인터넷이 시끄럽고, 성(聖)직자가 다른 이름의 성(性)직이 되었다고 개탄하는 댓글이 등장할 정도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까지 왔을까! 이 질문에 아주 단순한 BTS적 세계관으로 답해 보겠다. 바로 ‘Fake love’ 때문 아닐까!
요즘 세상은 fake(가짜) 뉴스와 호도된 진실에 모서리치고 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단지 ‘카더라’ 혹은 ‘그렇데’라는 말로 모든 것이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가짜가 더 파괴력이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진짜 사랑을 선포해야 하는 우리마저, 가짜 사랑의 파괴력에 찌들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연약하게 된 것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빗대 표현한다면 ‘Fake Love, 가짜 사랑'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 기쁜 척 할 수가 있었어
널 위해서라면 난 아파도 강한 척 할 수가 있었어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그러나 그 약점을 감추는 사랑이 진짜가 아님을 이들은 고백한다. 오히려 가짜인데 진짜인 척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바로 거짓된 사랑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지금 거짓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를 사랑한다는 거짓된 말 한 마디가 완벽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나의 욕망을 감추고 비전이라고 말하는 그 거짓된 사랑이 아니라, 나의 약점을 내어 놓고 서로 하나되는 사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이 시대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곪아있는 우리의 치부를 거짓 사랑으로 가리기만 할 수 있겠는가!
방탄소년단의 힘은 그들을 지지하는 ‘아미’에게 있다고 방탄소년단은 인터뷰 할 때마다 말한다. 그들은 한명의 팬의 힘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한 명이 다가올 때, 진정한 군대요 ‘아미’가 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언제까지, 한 영혼을 향안 사랑을 포기하고 입신양명을 추구할 것인가? 그들의 가사가 아직도 머리에 맴돈다.
‘I'm so sick of this fake love, fake love, fake love…’.
궁인 목사(호치민 지구촌교회, <리+액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