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구자라뜨 주의 해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상의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이 동상은 그 높이가 182m인데요. 자유의 여신상이 93m이고, 브라질의 예수상이 38m인 것을 생각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동상의 건립은 현재 연방수상인 모디 수상이 구자르뜨의 주수상으로 있을 당시에 '통합의 상'이라는 이름으로 짓기로 결정을 하여 2013년 건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짓느라고 4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수많은 가난한 농민이 고통받는 여건 속에서 이렇게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서 동상을 짓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찬반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동상의 주인공인 인도의 독립운동가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Sardar Balabhbhai Patel, 1875~1950)과 그의 업적이 이 시점에서 부각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르다르 파텔은 1875년 구자라뜨 주에서 태어나서 영국 유학을 거쳐서 구자라뜨 주에서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변호사였던 그가 간디를 만나면서 자신이 태어난 구자라뜨 주에서 농민들을 규합하여 비폭력투쟁을 이끄는 영웅이 되었고, 감옥을 수차례 다녀오면서 간디에 이어 인도의 독립을 이끄는 독립운동가들 중에 2인자가 되었습니다. 인도가 독립하기 직전 인도의 독립을 이끄는 인도 국민의회파(Indian National Congress)의 실질적인 수장이 될 수 있었으나 간디의 요청으로 그 자리를 네루에게 양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립한 인도 정부의 초대 부총리 겸 내무장관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하였는데요.
파텔은 힌두민족주의자로서 오늘날 인도 독립의 영웅으로 새롭게 부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그가 가진 정치적인 이념이 간디와 네루와는 구별되는 힌두민족주의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간디와 네루는 인도가 독립하면서 세속국가의 기치 아래 힌두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따라 두 개의 나라로 독립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파텔은 "여러 번 나누어지는 것보다는 한 번만 나누어지는 게 낫다"라는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여 인도와 파키스탄이 나누어지는 데 찬성하였고 결국 자기의 의견을 관철시켰습니다. 이러한 면이 파텔이 근래 들어서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인도가 독립할 당시 인도는 565개의 소왕국 형태의 자치 국가들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한 나라로 독립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죠. 역사적으로 같은 나라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파텔은 각 소왕국의 군주들을 설득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인도의 독립 이후에도 인도 연방에 속하지 않은 가장 큰 규모를 가진 하이데라바드 지역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결국 영국연방에 속하도록 만드는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파텔은 '인도의 철인' 또는 '인도의 통합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그는 1947년 1월 타임지의 표지인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현 정부는 내년 초에 있는 총선을 위해서도 간디와 네루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새로운 영웅을 부각시켜야 될 필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파텔이 이슬람과 나라를 구분하여 독립을 시도한 정치적인 성향이 오늘날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적인 이념과 부합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그가 '인도의 철인' '인도의 통합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인도를 힌두 중심의 강력한 국가로 통합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기에 그가 국가의 영웅으로 새롭고 떠오르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러한 현상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건전한 국가의 이념과 가치가 세워질 수 있도록 바른 정치인들이 세워지도록 기도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이트 리(Bright Lee)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