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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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Chris Benson on Unsplash

ⓒChris Benson on Unsplash

또 크리스마스가 돌아오고, 텔레비전에서는 크리스마스 특별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나, 한 늙은이가 텔레비전 앞에서 또 하루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님, 왜 저를 어서 빨리 본향으로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저는 살 만큼 다 살았고, 하나님께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더 좋을 게 없는 사람이라 여겨집니다. 93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오랜 시간입니다."

아내가 살았을 때는 달랐다.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고, 이제는 거동하기도 힘들어졌다. 올해는 다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는 일조차 귀찮았다. 나 혼자뿐인데 뭣하러 귀찮게 그런 일을 하겠는가? 두 아들 모두 함께 살자고 하지만 난 이렇게 혼자 사는 게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집이라 해도, 집 하나 건사하기도 점점 힘들어졌다. 지붕이 새고, 벽지도 벗겨지고 있으니....... "하나님, 저는 이 집을 더 이상 혼자 관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걸 아실 겁니다. 잠시 머무는 나그네 길, 이곳에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어느덧 텔레비전 화면에는 시내에 있는 구세군 구호소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집 없는 사람들' 시리즈로 취재한 모양이었다. "오늘 밤 이곳엔 200여 명의 여인들이 일자리도 희망도 없이 잠들어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그들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생각뿐, 내가 쓸 돈도 충분하지 않은 처지에 그들에게 기부금을 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10시쯤 불을 끈 다음 침대에 들었지만 잠은 오지 않고 자꾸만 그 구호소의 여인들이 떠올랐다. 여인들은 도움이 필요했다. 바로 나처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도움이 필요한 두 사람이 서로의 필요를 함께 합한다면 어떨까? 우리 집에 들어와 살 곳을 얻는 대신, 집 안을 관리해 준다면?'

다음 날 아침 나는 구호소로 전화를 했고 구호소 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혼한 부부는 어떠십니까?" "글쎄요... 방이 너무 작아서요." 내 대답에 소장이 말을 이었다. "방 크기가 문제라면, 확신컨대 문만 달려 있다면 지금 그 부부에겐 궁전같이 보일 겁니다." 소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 부부는 둘 다 직장을 잃었고, 집세를 낼 수 없어 쫓겨나, 밤에는 구호소에서 자고 낮에는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처지라고 했다. "보내 주시오. 어디 한번 노력해 봅시다."

그들은 처음엔 약간 수줍어했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가 집안일을 하고 식사 준비에 정원 일까지 해주니 얼마나 좋던지! 그런데 이 부부가 들어온 지 석 달쯤 된 어느 날, 부인이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지... 처음부터 말씀 드렸어야 했지만, 그러면 받아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요... 저, 저는... 아기를 가졌어요."

아, 그 말이었구나! "글쎄요, 난 세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하지만 당신들을 다시 거리로 내보낼 수는 없지. 더구나 곧 아기가 태어날 텐데."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마음속에서는 소리치고 있었다. '아기라고! 아기를 대체 어디서 키우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부인은 말을 이었다. "우리 방에 조그만 아기 침대 하나는 끼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할아버지께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기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이 휙 지나갔다. 사브리나라는 이름의 빨간 머리 아기가 태어났고, 그들은 아기가 내게 방해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세월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아기가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고, 다시 5개월, 그리고 다시 크리스마스가 거의 가까웠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거실에 앉아 누가복음 2장을 읽고 있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아기 예수님이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했으리라 생각하니, 비록 다소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방을 내어 주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말하려 하는 핵심에 이르자,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여관방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할 자리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아기를 위해 난로 불을 지폈다. '소파를 벽으로 밀어 놓으면, 여기에 아기가 놀 공간이 생기겠구나. 이제부터 한참 자랄 아기를 침실에만 갇혀 있게 할 순 없지.' 나는 그들을 불러 말했다. "집에 아기도 있는데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는 있어야지!" "우리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만, 트리가 너무 비싸서요." " 다락방 상자 속에 트리가 하나 있는데, 세워 놓으면 아기가 좋아할 거야." 그들은 다락방 계단을 뛰어 올라가 커다란 상자를 끌고 내려왔다. 함께 트리를 만드니 너무 재미있었다.

색색의 조명등이 켜지고 은빛 발레리나처럼 돌아가는 트리를 보자 그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때 아기가 배고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유병을 데우는 동안 아기를 내게 맡기라고 손을 뻗자 아기엄마는 놀라는 듯하더니 곧 기뻐했다. 처음 아기와 눈을 맞추니 왠지 어색하고 아기가 울까 봐 걱정됐다. 그러나 그 순간 아기가 활짝 웃으며 통통한 손을 들어 내 뺨으로 가져왔다. 아기가 손으로 나를 만지자 아주 먼 옛날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또 한 아기가 생각났다.

아기 아빠가 창가에 촛불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기 엄마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는 캐롤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리의 시간을 주관하시는 분께 속삭이듯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다시 한 번 크리스마스를 맞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투정을 부리고 안달했음에도 저를 이 세상에 남아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이 늙은이에게 일깨워 주시는 데는 가끔씩 아기가 필요하답니다."

- 『삶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중에서
(제씨 펜 루이스 지음 / 두란노 / 159쪽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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