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의 모습을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상상해 보자. 밀알은 아름다운 껍질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단단하다. 생명의 씨는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나올 수 없다. 또 그 씨가 껍질 속에 갇혀 있는 동안은 아무 생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한 알의 밀알이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일이다.
그 밀알은 어느 날 땅 속에 떨어져 겉껍데기를 잃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과 태양 그리고 '생명'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모든 요소들을 상실하게 된다. 이제 그 밀알은 땅 속 깊숙이 파묻혀 바깥 세상과 분리되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 밀알을 살펴보라. 반질반질했던 껍질은 다 벗겨져 버리고, 그 대신 작은 생명의 싹이 돋아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싹은 어두운 땅을 뚫고 나와 찬란한 태양빛을 받게 되고, 결국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 풍성한 이삭으로 변하는 것이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이 있듯이 영계에도 영적인 법칙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법칙을 회피하려 한다. 열매를 맺기는 원하지만 열매를 맺기 위한 십자가의 길은 걸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가 느낄 수 있고 의식할 수 있는 혼적인 생명만을 갈망하고, 의식할 수 없는 영적인 경험 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기초로 한 영적인 삶만이 '굴곡'이 없다는 사실이다. 혼적인 사람, 곧 본성을 따라 사는 자연인들의 삶은 항상 환경을 비롯한 모든 외부적인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은 먼저 우리의 중심 안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실제로 적용시키신 후에 부활의 생명력에 이르게 하신다. 처음 시작은 우리의 영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점차로 우리의 혼과 육의 저변까지 다루시며 역사하신다. 죄에서 자유를 경험케 하신 뒤, 본능적인 감정과 혼돈되고 복잡한 이성의 모든 혼적인 활동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원하신다. 우리가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모든 외적인 것에 대해 죽을 때, 우리의 영은 승화되어 하나님의 영과의 충만한 교제와 연합 안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의 내적인 영적 생명이 하나님 안에 굳게 서 있게 되면, 이는 마치 혹성들이 태양의 궤도를 따라 일정하게 돌고 있듯이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는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다. 우리 옛사람의 본성적인 생명은 십자가의 죽음에 깊이 파묻혀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자유롭게 운행하심으로써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열매는 우리 안에서 나온 어떤 열심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역사하신 결과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영 안에 강하게 역사하면 우리가 하는 간단한 몇 마디 말을 통해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또 가장 '일상적인' 행동으로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향기를 나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어떤 감성적인 경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으리라! 그것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기쁨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이 되리라! 그것은 안이한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을 하나님으로 가득 차게 하리라!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느냐, 아니냐를 상관치 않고 오직 작은 일에 충성케 하리라! 더 많은 능력과 더 큰 힘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거하며 한 알의 밀알처럼 죽기만을, 죽기만을 원하리라!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의 향기를 흠뻑 풍기며 영생하도록 보존하는 열매를 풍성히 가져오리라!<북코스모스>
- 『십자가의 도』 중에서
(제씨 펜 루이스 지음 / 두란노 / 159쪽 /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