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들 헌법불합치 4, 단순위헌 3, 합헌 2
2020년 말까지 해당 법률 개정해야
헌법재판소에서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는 1953년 낙태죄 조항 도입 이후 66년 만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낙태죄를 합헌으로 결정했으나, 불과 7년만에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는 1층 대심판정에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2017헌바127)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헌법불합치 4, 단순위헌 3, 합헌 2의 의견을 냈다.
헌법불합치란 어떤 조항이 위헌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특정 시점까지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결정이다.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해당 시점 이후로 법 조항이 개정되지 않으면, 바로 효력을 잃는다. 낙태죄 조항은 2020년 말까지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불합치는 위헌 결정과는 달리 기존에 낙태죄로 처벌을 받았던 사람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단받을 수는 없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지만, 7년만에 뒤집힌 것이다.
현재 자기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70조 1항은 의사나 한의사 등이 동의를 얻어 낙태 시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동의가 없었을 땐 징역 3년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낙태죄 유지 운동을 펼쳐온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 측은 헌법재판소의 선고 직후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2012년 (합헌 결정) 당시 결정문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하며,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합헌을 선고했다”며 “이후 의학기술의 발달로 임신 6주부터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지금, 2012년의 선고를 뒤집는 헌법불합치 결정은 시대착오적이며 비과학적인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또 “헌법 정신은 ‘모든’ 생명의 보호라고 되어 있으며, 민법에서도 생명의 시기는 수태(受胎)한 때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2008년 헌법재판소 결정도 생명의 시기는 수정과 착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작되고, 형성 중인 생명도 생명이라는 점에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보았다”며 “이처럼 법정신이나 실정법이 태아가 생명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국가가 법으로 허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결정인가”라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