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신 하나님을 끊임없이 갈망했던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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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택 목사의 인문 고전 읽기 31] 반 고흐의 신앙

반 고흐, 상처입은 치유자
박철수 | 대장간 | 317쪽 | 20,000원

반 고흐의 삶과 그의 작품 세계를 안내하는 탁월한 핸드북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청림출판)>의 저자 캐슬린 에릭슨는 ‘감사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진짜 반 고흐 이야기를 풀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어떤 강력한 힘에 이끌려 이 책을 집필했다. 원고가 책으로 완성되어 눈앞에 놓인 모습은 내게 일생일대의 기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슬린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반 고흐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탁월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전개하였다. 우선 저자는 반 고흐를 천재나 광인 또는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신앙을 버린 화가로 보는 일반적인 관점을 거부하고, ‘영적인 삶’이야말로 반 고흐의 삶과 신앙과 회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결정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저자는 반 고흐가 남긴 수많은 편지들을 처음 접했을 때, 기독교 신앙이 그의 일생을 매우 깊게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종교적 사고와 행동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는 일과 사랑을 적극 실천하는 신앙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반 고흐는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다.

반 고흐가 생각한 그리스도는 길 잃은 사람을 구하고 병자를 치료하며 굶주린 자를 먹이고 멸망해 가는 세상에 희망을 주러 온 ‘섬기는 자’의 표본이었다. 따라서 참 기독교인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겪었던 고통과 인간에게 베풀었던 수고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출간된 박철수 목사의 신작 <반 고흐: 상처입은 치유자>는 국내 저자의 노력을 통해 반 고흐의 삶과 신앙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심도 있게 그려낸 역작이다.

저자는 자타가 인정하는 파스칼(Blaise Pascal) 전문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팡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기독교 신앙에 눈을 떴다.

그런데 저자 박철수 목사는 반 고흐를 알아가다 보니 놀랍게도, 파스칼과 반 고흐의 삶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파스칼이 글 <팡세>로 말했다면 반 고흐는 그림으로 말했다. 파스칼은 당시 정통 가톨릭에 정면 저항하다가 죽을 뻔 했고 또 연약한 육체 가운데서도 정열적인 삶을 살았는데 반 고흐 또한 약한 몸으로 일생을 간신간신 살았다.

파스칼은 가난한 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죽을 때 나이가 39세 였다. 반 고흐 역시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37세에 요절했다. 그들은 기억력과 창조력이 매우 뛰어난 천재였고 독특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뉴욕 현대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뉴욕 현대미술관

반 고흐는 37년 살았으나, 화가로 산 기간은 겨우 10여년에 불과하다. 이 짧은 시간에 대략 천여 점의 드로잉과 구백여 점의 유화 작품을 그렸다. 저자에 따르면, 그의 삶에 곡절이 많다보니 어느 화가보다도 우리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그의 짧고 비극적인 삶과 눈부시고 즐거운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 된 이 사람을 기리는 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 고흐: 상처입은 치유자>, 이 책의 장점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균형 있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반 고흐의 삶과 신앙, 그리고 예술정신을 추적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자기 귀를 자르고 마침내 자살에 이른 정신이 불안정한 기인’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반 고흐는 거의 성자(聖者) 같은 살았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했고, 가진 것을 모두 내주었으며, 성 프란체스코 수사처럼 극심한 가난을 견디며 살았다.

금욕적인 생활과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헌신성 때문에 그는 석탄 캐는 광부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제도권 교회로부터는 극단적인 반감을 샀다.

사실 반 고흐는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보았다. 그러나 그가 갈등하는 대상이 주로 제도권 교회였지, 예수님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말년에 정신병이 더욱 심각해졌을 때도 고흐는 제도 교회에 대해서 여전히 환멸을 느꼈지만, 죽을 즈음에도 종교화를 그렸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까지 고흐에게는 가난뱅이, 병자, 미치광이, 조울증 환자, 알코올 중독자, 성격 파탄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고립된 사회 부적응자, 거친 성격의 소유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살아생전에 오로지 몇 점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고흐라는 인물은 동시대 사람들의 무지에 의해 제물로 바치진 순교자처럼 죽음을 맞았다.”

반 고흐는 진지하게 변함없이 소신을 가지고 뜨거운 신앙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그는 너무 뜨겁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를 본 사람이나 그를 만난 사람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뜨거워질 것이다. 위로를 받을 것이다.”

둘째, 반 고흐가 탁월한 독서가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이 점을 주목하고 상술하고 있다. “많은 독서를 통해 그가 편지에서 언급한 작가만 해도 150여명에 이르고 작가가 쓴 책 중에 언급된 것도 300권이 넘는다. 그리고 문학관련 언급은 800권이 넘는다.”

저자는 반 고흐가 읽었던 책들을 열거하고 있는 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 성경, 르낭의 <예수의 생애>,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셰익스피어의 <햄릿」,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예술가들의 전기 등이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도 반 고흐가 ‘독서광’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오면서 특히 문학에서 이런 힘을 강하게 느꼈다. 그는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을 읽었으며, 이 작품들을 통해서 프랑스 사회와 심리의 역동성에 눈을 뜨게 된 것에 고마워했다.

그는 <보바리 부인>을 통해서 지방에서 사는 중간 계급의 생활을 배웠으며, <고리오 영감>을 통해서 파리의 가난하지만 야심만만한 학생들을 배웠다. 그는 이제 사회 전체에서 이런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유사한 인물들을 알아보게 되었다(여행의 기술, 청미래, 239쪽).”

반 고흐는 특별히 두 권의 책을 손 가까이 두고 매일 읽었다. 하나는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고, 다른 하나는 존 버니언(1628-1688)이 쓴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이었다.

그는 한 편지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숭고하고 독특한 책’이라고 칭찬하면서, “구절구절이 참으로 심오하고 진지하여 마음이 격양됨 없이는 경외심 없이는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천로역정>과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안내자와 같은 책이었다.

▲반 고흐의 &lsquo;성경이 있는 정물&rsquo;(Still Life with Bible, 1885)

▲반 고흐의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 1885)

셋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반 고흐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반 고흐의 많은 편지를 인용함으로써 매우 설득력 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의 영혼의 세계로 다가서고 있다.

반 고흐는 탄광촌에서 석탄 먼지를 뒤집어쓴 까만 얼굴의 광부들을 지켜볼 때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운명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반 고흐는 “단순하고 선량한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독특함이 있다(편지)”고 말했다.

반 고흐는 이 가련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그는 그들에게 복 음을 전하되, 교회 전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순함을 추구하는 그의 의지에 따라 아주 간소한 형태로 전하고 싶었다.

그는 다른 편지에서 “대학 공부를 통해 목사직을 준비하느니 그냥 늙어 죽겠다. 언젠가 풀베기꾼에게서 무언가를 배운 적이 있다. 그에게서 배운 것이 고대 그리스어 성경을 한 장 읽는 것보다 더 유익하게 여겨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인생살이에 필요한 덕목을 이야기한 적도 있다.

“섬세한 감각을 잃지 말고 겸손하며 온화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물론 이런 마음을 가끔은 남들에게 감추어야 한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본성이 소박하고 단순한 사람들과 여자들과 어린이들에게는 드러나는 일들을 분명하게 알아 두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것, 놀라운 것에 대한 갈망이다.

인간은 이것을 얻지 못하는 동안에는 완전히 얻을 때까지 대충 만족하며 편안하게 살이 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위대한 인간의 업적에서 드러나는 내적 의미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생각한 위대한 사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찾아 헤매고 일했으며 더 많이 사랑한 사람, 격랑이 치는 삶의 바다로 노 저어 간 모든 사람이다.”

“많이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수단임을 나도 모르게 항상 믿고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친구를, 한 사람을, 네가 원하는 한 가지 일을 사랑하라. 그것이 그 사람, 그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위해 네가 가야할 올바른 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 망상이고 환상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하나님, 이런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됩니까?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어 주고 싶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적인 힘으로, 압도적인 마력으로 감옥 문을 열어젖힌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죽음 속에 머무른다. 하지만 교감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생명이 일어난다(편지).”

만일 당신이 반 고흐가 쓴 편지를 읽는다면, 그의 창조적 충동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가 무엇인가를, 예컨대 하늘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사람들에게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하늘을 그렸다.

반 고흐의 편지들은 예술이 무엇인지 또 창조적 충동이란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이며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다. 또한 그것은 직접적으로, 단순하게, 열정적으로, 진실하게 사물의 아름다움을 묘사함으로써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흐의 편지야말로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을 동시에 증명하는 글이라며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 고흐의 편지는 이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상처 입은 치유자’ 반 고흐를 보여주고 있다. 반 고흐는 참으로 열렬하게 하나님을 찾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끊임없이 갈망했다는 점에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반 고흐는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를 향해 나아갔다. 그는 그 모든 실패와 좌절 속에서 헨리 나우웬이 말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었다. 고난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근원적인 힘도 이로써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사랑을 받을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그의 작품 세계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이 책을 강력히 그리고 기쁨으로 추천한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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