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 8일 故 한경직 목사
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마가복음 16:1~8
'부활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5장 첫 부분을 봉독했습니다. 제가 이제 다시 1절에서부터 몇 절만 읽을 때에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렇게 고린도전서 15장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또 성경대로 다시 살아난 사실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당하여 복음의 내용인 부활에 대하여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대로 다시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다 이 진리를 믿지만, 이 부활의 사실은 너무나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므로 때로는 잘 믿는 이들 가운데도 의심의 조각구름이 우리 믿는 이들의 가슴에도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먼저 이러한 면에 대하여 잠깐 생각하고 계속하여 부활의 참뜻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부활은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혹은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잠깐 생각하십시다.
먼저, 부활은 과연 가능한가? 가능할까? 그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십시다. 인간으로서는 물론 불가능합니다. 인간으로서는 자기 자신의 죽음 가운데서 스스로 부활할 수도 없고, 또 다른 사람을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자명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서는 어떠합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곧 태초에 천지를 지으시고 인간까지 지으신 하나님으로서는 어떠합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부활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부활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고 또 믿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자들 외에는 다 부활을 믿을 수 있고 또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부활을 다 믿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부활의 개연성(蓋然性)을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개연성이란 '그러한 일이 있음직하냐?' 곧 이러한 뜻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도 물론 보통 사람이 부활하였다고 하면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요, 만민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으레 그래야 될 일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신분으로 보아서 우리는 모두 그의 부활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우리가 부활의 가능성과 그 개연성을 모두 인정한다면 그 다음 문제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찰이 있을 뿐입니다. 가능하다고 다 있는 것이 아니고 개연성이 있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게바와 열두 제자와 심지어 500여 형제에게 나타나셨고, 또 그 중에 태반이나 그 당시까지 살아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습니까?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직후에는 제자들이 모두 낙심하고 실망하였는데, 며칠 후에 새 용기를 얻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한 가지뿐입니다. 곧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친히 만나본 까닭이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그들의 이러한 경험을 심리적인 착각, 혹은 환상이라고 설명하고자 하나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한두 사람이면 모르지만, 500여 명에게 일시에 어떤 환상이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회는 그 제자들의 부활에 대한 증거로 사실은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의 존재 자체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지금까지도 부활을 선포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처음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으로서 수천 년간 이레 중 마지막 날을 안식일로 지켰으나 점점 변하여 이레 중 첫날을 성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왜요? 이레 중 첫날에 주님이 부활하신 까닭입니다. 사실 이러한 의미에서 매주일 아침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에 대하여는 가능성으로 보나 개연성으로 보나,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나 다 믿을 만합니다. 주님은 과연 성경의 말씀대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부활하신 주님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지금까지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뜻에 대하여 간단히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진리의 부활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오직 진리를 가르치셨고 또 그 자신이 진리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허위와 거짓의 세력은 예수를 모함하여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시 온갖 허위의 주동자들은 자기들이 승리한 줄로 처음에는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뿐이었습니다. 진리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우주에는 그러한 일이 오래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진리의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부활은 모든 진리의 부활과 진리의 최후 승리를 의미합니다.
진리는 아무리 묻어도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도 어떤 나라에서는, 특히 이북에서는 진리를 묻어 보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사입니다. 진리는 묻고 묻어도 그 무덤의 문은 다시 열리고야 맙니다. 이북에도 무너진 제단이 다시 건축될 때가 반드시 옵니다. 밤이 비록 캄캄하고 어두운 듯하지만, 부활의 아침은 온 세계에 다시 오고야 맙니다.
그리고 둘째는, 주님의 부활은 또한 정의의 부활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사실 이 세상은 정의와 불의의 싸움터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역사 또한 그러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정의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와 온갖 불의의 상징이던 바리새인, 사두개인과의 큰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합세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무덤에 장사한 후에는 그들은 승리한 줄 착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마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곧 부활하셨습니다. 최후 승리를 얻었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불의와 부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눌린 자, 탄식하는 자, 억울하게 신음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부활절은 정의의 최후 승리를 모든 인류에게 새롭게 선포하는 거룩한 날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살아 계시므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사랑의 부활과 승리를 또한 의미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 그대로입니다. 사랑의 화신이십니다. 그는 죄인을 사랑하시고 약한 자와 눌린 자를 사랑하시고 원수도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화신을 당시 악마의 세력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무덤에 넣고 뚜껑을 덮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오래 갈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사랑은 다시 살아 무덤을 열고 나왔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은 온 세계를 지금까지 비춥니다. 이 세계는 아직도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싸움으로 이 세계를 검은 구름으로 덮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다. 최후 승리는 사랑의 편에 있습니다. 사랑이 이깁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온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기억하십시다. 주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친히 증언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 생명의 세력과 사망의 세력이 서로 싸웁니다. 때로는 일시적으로 사망의 권세가 이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일 뿐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부활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다시 살아납니다. 최후 승리는 생명에게 있습니다.
우리 인간 자신도 일시적으로 사망의 권세에게 패배하는 듯하는 때가 옵니다. 곧 죽을 때가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도 잠깐뿐입니다. 우리 인간 하나하나도 다시 살아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우리에게도 부활의 아침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아침 사도신경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때에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우리는 모두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카드는 죽음이 아니요, 생명입니다. 영윈히 사는 생명입니다. 이 부활주일은 생명은 반드시 최후 승리를 얻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온 세계에 선포하는 날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성경의 말씀대로 주님의 부활은 모든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두 부활의 열매에 참여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절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생명의 최후 승리를 선포합니다. 아직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거짓과 불의와 증오와 죄악과 죽음의 세력이 인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활절을 통하여 생명의 최후 승리를 또 한 번 새롭게 선포합니다. 한 조각 검은 구름이라도 청천백일을 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뿐입니다. 진리와 생명의 아침 해는 반드시 온 누리를 밝게 비추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부활절에 아직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헤매는 모든 인간들에게 이 부활의 기쁜 복음을 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특별히 전도회에도 가입하는 날입니다. 이 기쁜 부활주일에 우리 모두 부활과 생명의 주님을 우리 마음 속에 영접해서 이 어둡고 사망의 세상에 비록 살지만, 오직 진리와 정의와 생명의 삶을 가질 수 있는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더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만 우리의 구원을 완성케 하시기 위해서 3일 만에 다시 살아서 온 세계에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생명의 최후 승리를 선포하여 주신 이 날,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와 찬송을 무엇으로 다 드릴 길이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기 거룩한 이 집에 나와서 주님께 봉사하고 주님을 숭배하는 모든 아버지 사랑하는 자녀들 마음 속에 이 시간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이 그 심령마다 친히 오셔서 과거의 죽음의 생활은 과거로 청산하고 앞으로는 오직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참 생명의 삶을 가질 수 있는 이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