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4월 10일 故 한경직 목사
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20:24~29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요한복음 20장 27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신 말씀이올시다. 도마는 의심하는 제자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것은 지금 읽은 말씀대로 처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도마는 없었던 까닭으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된 듯합니다.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친히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불행하게도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 후에 나타나신 소식을 듣고, "내가 그 손에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드레가 지나서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에는 도마도 같이 있었습니다.
또 주님이 친히 자기의 손과 자기의 상한 옆구리까지 보여주실 때에 도마는 감격하여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도마는 믿음의 도마로, 의심의 도마가 변해서 믿음의 도마로 역사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도마는 어떠한 제자였던가? 요한복음 11장 16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이런 이상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요단강 저편에서 계실 때에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미워해서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돌로 치려던 그런 경향이 있던 때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아시면서도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가시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은 자연히 그곳에 가기를 매우 주저하였고, 할 수만 있으면 주님이 가시지 않도록 힘쓰던 때입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꼭 가려고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가서 같이 죽자" 하였습니다. 도마는 사실 주님을 사랑하였고 주님을 위해서는 생명까지 바치려는 참 믿음과 충성심이 강한 제자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지만, 주님의 부활이란 사실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기적이었으므로 잠깐 의심하였으나 곧 그 실증을 보고 믿음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 후 역사를 보면 실로 도마는 믿음과 사랑과 충성의 제자로 나타났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고, 그러나 또한 큰 핍박으로 결국은 교회가 사방으로 흩어질 때에 도마는 특별히 동방을 향하여 전도를 떠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 대로 당시 대부분은 서편 구라파(유럽)와 남방 애굽 등지를 향해서 복음을 전파하러 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도마는 동방 곧 시리아와 파사(페르시아)를 거쳐 인도 지방으로 나가면서 전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말토마교회, 곧 성 도마의 교회가 인도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감독은 세 사람인데 그 중 하나인 데오빌로스라는 목사는 아마 20년 전에 본 영락교회에 오셔서 설교한 일도 있습니다. 말토마교회는 인도 서남지방에서 제일 유력한 기독교회입니다. 도마의 순교기념관과 그 무덤이 지금까지 인도 마드라스 근교에 남아 있습니다.
도마는 실로 믿음 있는 제자요, 주님을 사랑한 제자요, 사실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치며 동방전도를 개척한 충성된 제자입니다. 누구나 일시에 의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의심은 언제나 주님께서 해결하여 주시고 큰 믿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오늘의 믿는 이들도 종종 의심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이 아마 적지 않은 줄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어떤 부분에 대하여는 믿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따라 다르려니와 대체로 현대인들에게는 성경에 나타나는 이적에 대하여 의심하기가 쉽습니다. 특별히 학생과 청년시대에 그러합니다.
바로 지난 주일이 부활주일이었습니다만, 성경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이적 가운데 아마 제일 큰 이적은 부활의 이적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옛날부터 인간의 큰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도 처음에 의심한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모든 제자들은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았고, 도마처럼 상처를 만져 보고 그의 부활을 확신하였으며 그의 부활을 증거하였고, 사실 생명까지 바쳐서 부활의 복음을 천하에 선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부활에 대한 신앙은 모든 기독교인의 확실한 신앙이 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고 하면 오늘날의 교회는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전인간의 소망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날부터 안식일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왜 안식일이 변하여 주일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키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다음날, 이레 중 첫날 부활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년 부활절을 계기로 해서 우선 부활에 대한 의심을 일소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이적을 우리가 믿으면 다른 이적도 믿기 가능합니다. 인간은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이적의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성 도마와 같이 생명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옛날부터 내려옵니다. 이것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도마가 이 의심의 문제를 해결하고 열심히 일하다가 한번은 또 깊은 의심에 빠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심을 안 하려고 하나 자꾸 의심의 생각이 들어오고 이 의심에 잠기게 되면 손맥이 풀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곰곰 생각하다가 이러한 문제는 아무래도 믿음의 대사도인 베드로에게 가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해서 베드로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도마를 볼 때에 반가이 맞아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가만 보니까 너무 분주하여 조용히 베드로와 자기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전도와 봉사에 너무 바쁜 탓입니다.
그리하여 틈을 얻을까 하고 종일 앉아 기다렸지만 결국은 조용히 상담할 시간을 얻지 못하고 그 문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도마는 다시 생각하기를 사도 베드로는 교회 일에 너무 바쁘니 다른 형제 곧 사도 바울을 찾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바울은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이어서 남의 집에 유하는데 바울이 유하는 집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울이 반가이 맞아 주었으나 바쁘기는 베드로보다 더 바빴다고 합니다. 안디옥에서 교회 대표가 와서 의논하는 일이 있고, 갈라디아 지방 교회에서 교회 대표들이 또 왔고, 에베소의 여러 사람들, 고린도교회 대표들, 이런 사람들이 와서 여러 가지 교회 일들을 의논하는데 도마는 자신의 의심 문제를 감히 내어놓을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무료하게 종일 앉았다가 마지막에 섭섭히 작별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나오면서 도마는 스스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형제 베드로, 형제 바울은 조금도 부활에 대해서 의심치 않고 저렇게 열심히 일들을 많이 하는데 왜 나 혼자만 이렇게 의심에 빠져 가엽게 친구들이나 찾아다니며 허송세월하는가? 스스로 탄식하면서 그 자리에 꿇어앉아서 자기 의심한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여, 내게 믿음을 다시 주소서. 의심치 말고 믿게 하여 주소서. 오, 주여! 나는 믿습니다. 부활을 믿습니다. 주님은 지금 내 마음 속에 살아 계십니다. 나와 같이 하십니다. 주여, 내 의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 백배의 능력으로써 인도 전도에 크게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의심은 누구나 종종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의심은 백해무익합니다. 백 번 해가 되지만 이익은 하나도 없습니다. 의심을 믿지 말고, 믿음을 의심치 마세요. 의심 있는 사람은 아무 일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세월만 허비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살아 계신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서 전도방면이나, 교육방면이나, 온갖 봉사사업은 물론, 이 세상에서 내가 맡은 책임도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확신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교회 일이나 사회 일이나 나라 일이나 모든 일에 확신을 가지고 우리 믿는 이들은 일하십시다. 이 세상에서 의심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이 남겨놓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노라면 믿을 수 있는 진리가 많으나 혹은 믿기 어려운 교훈도 있다." 그 사실입니다. 그러나 들어보세요. "믿을 수 있는 진리는 믿을 수 있으니까 그대로 행하고, 의심나는 진리는 성경에 있으니 그대로 믿고 행하면, 살 때에도 옳게 살고 죽을 때에도 옳게 죽으리라."
우리 인간이 한번 세상에 나서 한번 살고 한번 죽는데, 살 때에도 옳게 살고 죽을 때에도 옳게 죽으면 그 인간은 성공의 인간입니다. 영원히 삽니다. 우리의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밤에 작은 초롱불을 들고 길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초롱불이 멀리는 비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초롱불이 비추어 주는 것만큼 그 불빛 아래에서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면 그 다음에 그 작은 초롱불이 다시 내 앞길을 밝혀 줍니다. 그리해서 십 리 길도 갈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에 믿음의 등불을 따라가는데, 이 믿음의 등불이 어떤 때는 멀리까지 비추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추어지는 만큼 그대로 믿고 행하고 옳게 살면 하나님께서 더 믿음을 계속해 주어서 우리의 온 인생길을 바로 갈 수 있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받은 초롱불이 작다고 나무라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우선 작은 등불이라도 내 발부리를 비춰 주는 성경의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을 믿고 의심치 말고 앞으로 나아가십시다.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십시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께서 의심하는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도 때로는 의심하고 때로는 용기를 잃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부활절 계절에 우리는 의심하였으나 확신을 회복하고 용기를 얻어서 주님을 위해서 크게 일한 도마를 생각하고 그의 믿음을 본받아서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주님 맡기신 일이나 우리 민족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내 가정에서나 무슨 일이든지 확신을 가지고 주님과 동사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우리가 사실 보람 있는 삶을 가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이 시간 마음 속에 무슨 의심을 품고 온 이가 있으면 그 의심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성경의 말씀을 믿고 확실한 신념과 신앙으로써 맡은바 모든 책임을 감당하는 가운데서 일생을 보람 있게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