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세우려고 수 개월 동안
산 중의 많은 나무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용으로 생각한 나무는
숲 속에 살아있는 멋진 나무들이 아니었습니다.
산 중에 죽어 있는 소나무나
목재상이들이 팔려고 베어낸 나무들이었습니다.
그런 곳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산 중의 멋진 나무들을 보면서는
"저렇게 멋지고 큰 나무를 어떻게 벨 수 있을까?
아깝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마음속엔 이런 생각이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단히 지성적이고 신앙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1990년대 초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개념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이후 가지게 된 나무에 대한 생각과
십자가를 세우는 일이 하나로 뒤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제작해야 하는 순간에 이르자
주님께서는 나와 십자가의 관계의 실상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내 몸을 내어 주었는데
너는 좋은 나무라고 아까워하고 있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뿐인 아드님을 내어 주셨는데
너는 지구상에 수억만 개 수도 셀 수 없이 많은 나무 중에
한 그루 좋은 것으로도 바칠 수 없다는 것이냐?
그 모든 나무도 내가 창조하여 준 것일진대!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
진정 네가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을 알아야만 한단다."
산마루예수공동체 터 초입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잣나무 군락지엔 너무도 훌륭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장 굵고 잘생긴 나무를 베어 눕혀놓았습니다.
거룩한 주님이 잘려 누워계신 것이 아닌가!
십자가의 끔찍스런 주검이 눈앞에 놓여있었습니다.
<계속, 이주연>
*오늘의 단상*
십자가의 구원은 이론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이기에
경험하는 것이며
참여해야 얻어지는 은혜입니다.<산>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