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만들기 위하여
지름이 50센티미터이며
길이가 10여 미터가 되는 잣나무를
갓 베어 눕혀 놓고 껍질을 칼로 벗겨내니
사람의 새하얀 살결처럼 보드라운 표피가 드러나며
수액이 흘러내렸습니다.
칼로 치고 또 치며 벗기는데
마치 그간 살아오면서
주님께 고통을 안기고 또 안기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송진이 섞인 수액은
마르면서 끈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시는
땀방울과 피가 엉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십자가의 가로와 세로를 맞추기 위해서
서로 홈을 파서 고정을 시켜야 하는데
네 사람이 움직이려 하여도 꿈쩍하지 않아서
전심전력을 다해 진이 빠지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이러한 긴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주님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일수밖에 없다는
마음이 자리하며 실감했습니다.
이윽고 십자가를 만들어 옮기기 위해
굵은 줄로 십자가를 감은 뒤
대형 포크레인이 들어 올렸습니다.
껍질이 벗겨진 큰 나무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데
마치 주님의 관이 올라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를 세우기 위하여
미리 하루 종일 포크레인이 잡목들을 제거한 터에
깊이 2미터 이상 파고 돌들을 넣고
십자가를 세운 후 흙으로 메웠습니다.
중심 기중을 수직으로 바로 세우고
좌우 날개를 기울지 않게 세우려는데
몇 번의 반복적인 작업이 필요했지만
마침내 균형을 잡아 수직으로 바로 세웠습니다.
십자가가 선 위치는 좌우 대칭이 되는
산의 중앙에 위치하게 하였고
정동쪽 금당산 너머를 바라보게 세웠습니다.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주님 지신 십자가를 실감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저로 인하여 당한 고통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로 십자가에 못 박고 다시 태어나는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제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시옵소서.
앞으로 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든 성도들이
저와 같은 십자가의 은혜를 입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는 관념이 아니라 사건이었습니다.
<이주연>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