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군대 인권 증언 “동상에 손발가락 잘라야 했던 군인”

워싱턴=김동은 기자  dekim@chtoday.co.kr   |  

[2019 북한자유주간⑱] 토론회 진행(2)

제16회 북한자유주간 6일째인 3일(현지시간), 미 하원의원 회관인 레이번 빌딩에서 미 의회 내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주관으로 '북한 군대 내 인권 유린'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북한 군인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아래 요약했다.

▲탈북자 최유진 씨는 끔찍했던 북한 군대에서 탈출해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탈북했지만 장기매매단에 잡히게 됐다고 한다.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원망했다고 했다. 눈물겨운 사연에 토론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동은 기자

▲탈북자 최유진 씨는 끔찍했던 북한 군대에서 탈출해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탈북했지만 장기매매단에 잡히게 됐다고 한다.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원망했다고 했다. 눈물겨운 사연에 토론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동은 기자

북한 호위총국 간호장교 탈북자 최유진 씨

학교를 졸업하고 간호 전문대에서 간호 교육을 받았다. 말로는 나라에서 지원한다 했지만 필수용품은 다 내 돈으로 구입해야 했다. 교육받는 이 대부분은 빽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빽이 없는 나는 많이 힘들었다. 그들과 견줄 수 있는 건 실력뿐이었고 기를 쓰고 공부해 높은 점수로 졸업했다.

입대 당시 연애를 하지 말 것을 강요 받았고 처녀성 검사도 이뤄졌다. 손가락 4개를 붙여 이마 끝에서 눈썹까지, 또 눈썹에서 코 끝까지, 코 끝에서 턱까지 비율을 쟀고 그것이 일정할 때 점수가 더 붙었다.

이후 특수과로 가게 되었는데 경호처 부대 시설이라 그런지 다른 병원들과는 다르게 장비들이 다 미국산이었다. 가자마자 비밀보장에 대한 철저히 교육 받고 서약서를 작성했다. 환자들의 이름을 비롯한 개인적은 것들은 절대 물을 수 없었고 진단서에도 가명이나 계급만을 적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이곳에 친구가 입원했다. 친구는 매일을 울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김정은을 기다리기 위해 매일을 청소하고 간부들이 올 때마다 성접대를 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자꾸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해 집에 연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친구의 부모님이 와서 원장에게 뇌물을 줬고 1년 후 의가사 제대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친구를 보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더 한 사건을 보게 됐다. 추운 겨울, 바지가 피범벅이 되어 실려온 여군이 있었다. 살펴보니 4개월 된 아이를 유산 한 것이었다. 출혈이 심해 수술을 할 수 없었고 지혈제를 2배로 놓았다.

그녀를 데려온 군인들을 나무라던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정중하게 전화를 받은 원장은 "그래도 높은 데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사정을 알게 됐다. 북한에서 여군이든 남군이든 조선노동당에 입당을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그녀는 입당을 하고 싶었지만 빽도 없고 돈도 없었다. 동기 중 제일 뒤처지는 것 같자 당 관계자에게 성접대를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임신을 했지만 입당 준비 기간을 놓칠 수 없어 복대로 배를 가리고 훈련을 받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그녀는 "입당도 못하고 이 지경만 됐다"며 내 손을 잡고 울었고 끝내 떠나갔다.

불안감을 느낀 나는 매해 바치는 충성 선물로 꿀을 준비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왔다. 부모님은 뭐든 팔아 이것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럴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전에는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해 집이 잘 살았다. 하지만 회사가 부도났고 집을 넘기면 빚을 갚아주고 새 집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공장 경비실에서 살고 계셨다.

이 광경을 본 난 부대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나를 친척집으로 빼돌려 주셨다. 하지만 생활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얼마 후 우리가 받기로 했던 새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머니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동반자살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쓰러지는 걸 본 어머니가 이웃들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했다. 병원에서 나는 보름 만에,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눈 떠 보니 그나마 살던 집도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손목을 그었다. 목을 매어 3번 더 자살시도를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죽을 운명이 아니구나 싶어 탈북을 했다.

혼자서 중국에 와보니 어머니를 두고 온 것이 실수였다. 어머니께 어떻게든 오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이 든 내가 너에게 짐이 된다. 죽어도 아빠 곁에,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하셨다.

한국으로 오던 길에 사채업자들에게 잡혔다. 2층에 감금되었는데 내가 도망칠까봐 스타킹에 슬리퍼만 신겨 놨다. 전화를 엿들었는데 "건강한 사람이 있는데 신장이 얼마이다"라는 것이다. 눈 앞이 캄캄했고 난생 처음으로 나를 낳으신 부모님을 탓했다. 그 때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 아무 생각도 안 났고 오직 '왜 태어나게 하셨나' 그 생각이 들어 부모님 원망이 들게 됐었다. 그래도 살겠다는 생각으로 2층에서 뛰어내렸고 그 추운 3월 옥수수 더미에서 바지에 볼일을 다 보면서까지 버티고 버텨 3일을 숨어있었다.

이후 교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저를 위해 금식까지 하며 목적지까지 인도해 줬다. 그 사랑으로 저는 무사히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북한군 소위 출신 탈북자 강리혁 씨 ⓒ김동은 기자

▲북한군 소위 출신 탈북자 강리혁 씨 ⓒ김동은 기자

북한군 소위 출신 탈북자 강리혁 씨

신병교육대로 배치 받았을 때 저녁 밥은 뭐가 나올까 기대했다. 식사 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날 한 옥수수 밥을 불려 세 숟가락 정도 줬다. 국도 맹물이었다.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배가 너무 고파 먹었다. 그 날 밤 배가 너무 고파 잠이 오지 않았다.

신병 교육이 끝나고 본부대로 갔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 많았다. 어느 날 부대 내에 병이 돌았는데 90%가 사망하는 병이었다. 부대에서는 남한에서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쥐를 풀어 퍼뜨린 병이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쥐는 있지도 않았다. 배고픈 군인들이 오래 된 음식을 먹다가 생긴 병이었다.

배고픈 군인들은 추수철 옥수수 이삭 줍기를 했다. 옥수수 한 이삭을 줍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던 그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구타도 끊이지 않았다. 한 번은 두 시간 근무를 마치고 인계를 하기 위해 선임을 깨웠다. 하지만 선임은 나가 있으라고 했다.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다시 들어가 깨웠다. 이내 나온 선임은 자신을 깨웠다며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근무를 더 서라고 하며 들어갔다. 억울했지만 이야기 할 곳이 없었다.

이런 일은 여러 곳에서 있었다. 부소대장이 불러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얼굴에 밥과 뜨거운 국 그릇이 날아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았다. 부소대장은 얼굴에는 관심도 없었다. 밥이 왜 거기 있냐며 일주일간 2배의 근무를 서라고 했다.

한 초급병사는 근무시간에 졸았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다. 그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근무시간에 사관들에게 총을 겨눴다. 기세등등 하던 사관들은 살려달라며 애걸했고 소대장은 부모님을 생각하라며 그를 말렸다. 부모님을 생각하라는 말에 그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후 독립병사가 되었지만 비극은 끊이지 않았다. 참모장의 아내는 어느 날 소를 훔쳐오라고 했다. 북한에서 소는 금 값이다. 때문에 소를 훔치다가 걸리면 총살을 면할 수 없다. 내가 너무 위험해 할 수 없다고 하자 참모장의 아내는 내 후임에게 그 일을 시켰다. 소를 훔치면 그를 내 자리에 앉히겠다고 꼬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소를 훔쳤다.

지휘관 양성 학교로 갔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간부들은 매일 같이 술, 담배 심부름을 시켰고 뇌물을 주지 않으면 성적이 올라가지 않았다.

졸업 후 배치받은 부대의 현실은 열악했다. 사격 훈련을 나간 곳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군인이 개구리를 먹고 쓰러진 사건이 있었다. 그는 병원에 실려 갔지만 2시간 만에 사망했다. 그 부모들의 하소연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건강한 아들을 보냈는데 지휘관들은 무엇을 했느냐며,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부모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뿐 아니다. 도둑질을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군인들이 허다하다. 개성지역에는 인삼이 있다. 이 인삼은 김정은의 비자금을 위해 사용된다. 이 인삼에 손댄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만 살 수 있게 되자 인삼밭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군인 뿐 아니라 주민들까지 여기에 손을 댄 것을 안 김정은은 모두를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배고픈 군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훔친다. 목숨을 먹을 것과 바꾸는 것이다.

이후 출신성분을 문제로 정치범으로 몰렸고 두 살 된 딸을 두고 탈북했다. 아직까지 딸의 소식을 모르고 이모부는 잡혀가 매 맞아 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김정은이 밉다. 그는 사람이 아닌 악마다. 어떻게 이런 악마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나.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는 날까지 싸울 것이다.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하다. 힘과 용기를 북돋아 달라.

▲한 보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조영화 씨 ⓒ김동은 기자

▲한 보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조영화 씨 ⓒ김동은 기자

북한 보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조영화 씨

군에 입대할 당시 김일성, 김정일을 지키는 것이 부모님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 생각했다. 군복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함경북도에 배치됐는데 건물도 없는 야산이었다. 김정일이 국경 강화를 지시했고 모자라는 병력은 신입들로 보충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병영 막사를 지으러 매일 같이 나무를 해야 했다.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중 신입병사 한 명이 배고픔과 노동,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중국으로 도망갔다. 밥을 훔쳐먹던 그는 중국인에게 잡혀 매 맞아 죽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니 부대별로 도둑질을 보냈다. 야간에 마대 자루를 하나씩 들고 주변 개인 창고로 도둑질을 하러 갔다. 한 번은 도둑질을 하던 군인 한 명이 잡혔고 소대장이 사과하고 데려왔다. 사관들은 그에게 동작이 굼떠 잡혔다며 영하 30도 눈밭에 세워놨다. 그는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잘라야 했다. 이렇게 잘못된 명령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이후 두만강 인근에 배치되었다. 부대는 두만강을 통한 밀수를 했다. 국가기관에서 만든 유령회사들을 통해 불법 밀매를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에서 불법으로 중고차를 들여와 중국에 팔았다. 하지만 제재가 심해지자 마약 밀매가 시작됐다. 비자금 조성을 위해 불법 마약을 밀매하는 것이다.

2010년에는 중앙당 39호실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국경을 두 시간 비워달라며 명령서를 내밀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소형트럭 2대에 50kg 상자 50개가 있었다. 이를 넘기고 검은색 트럭 5대를 넘겨 받았다. 매년 이런 일이 두 차례씩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인들도 자체적으로 마약을 만들어 팔았고 그 대가로 발전기, 자전거, 쌀 등을 받았다. 또 밀수하는 국경 주민들로부터 돈을 받기도 했다. 김정은은 제재 속에서도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고 군인을 비롯한 청년들을 자신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이후 나는 조부모가 남한 사람이란 이유로 강제 전역 당했다. 절대 보위장교가 될 수 없었다. 남한 드라마와 영화, 라디오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고 탈북하게 됐고 지금은 자유북한방송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는 날까지 대북방송을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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