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공동 담임목사들이 전하는 ‘이재철 목사 퇴임’(下)
“오늘 4부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100주년기념교회의 공식 담임목사는 후임 4인이십니다. 훌륭한 네 분의 목사님들을 100주년기념교회 2대 공동 담임목사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거침없는 은혜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네 분의 영성과 역량이 한데 어우러지면, 저 같은 사람은 그 분들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재철 목사는 100주년기념교회에 재직하던 2005년 7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13년 4개월간 매 주일 ‘사도행전 순서 설교’를 진행했다. 마지막 설교가 사도행전 마지막 본문이었다. 거창으로 내려간 이 목사 부부는 사도행전 29장의 삶을 일상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후임 정한조·김광욱 공동 담임목사에게 이재철 목사의 설교와 가르침, 그리고 6개월간 직접 경험한 ‘공동 담임목사’ 제도에 대해 들어봤다.
주로 설교 사역을 맡아 영성 부문을 총괄하는 정한조 목사는 이재철 목사가 시무하던 주님의교회 전도사로 부임한 후 줄곧 이 목사의 뒤를 따랐다. 2001년 9월부터 6년간 이재철 목사에 이어 제네바 한인교회를 섬겼고, 2007년 12월부터 100주년기념교회 전임목사로 사역해 왔다.
김광욱 목사는 교회 내에서 목회·행정 부문을 맡고 있으며, 포항공대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부르심을 받아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해 2009년 12월부터 100주년기념교회 전임목사로 사역 중이다. 이 외에 이영란 목사는 교회학교 부문을, 김영준 목사는 대외 부문을 각각 맡고 있다.
삶과 예배의 하나 됨: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교회에 함께 있으면서 이재철 목사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을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요.
정한조 목사: 그 무엇보다 정말 하나님을 믿으셨고, 말씀한 대로 사셨습니다. 그것이 가장 크게 와 닿았습니다. 여러 목사님들을 돌봐주고 사랑해 주신 부분도 감사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신 모습이 본보기로 크게 다가옵니다.
교회에서 강의할 때 한 번씩 이야기합니다. ‘지난 14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가? 이재철 목사님 아닌가. 우리도 각자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물로 살면 좋겠다’고요. 그런 본을 보여주신 것이 교회를 위해서든, 저희를 위해서든, 한국교회를 위해서든 큰 역할이셨습니다.
김광욱 목사: 저희 교회 목표가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목회철학에서 나왔는데, 그 분의 메시지 가장 중심에는 삶과 예배가 분리되지 않고, 1주일에 한 번 나와서 예배드리는 게 아니라 예배자로 매일을 살아가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곧 자기 부인이고, 자기를 죽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기를 죽이고 부인한다면, 모든 세상에 평화가 오리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가르쳤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교인들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일 강단에서만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소 삶에서 말씀이 드러났습니다. 저희 교역자들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언행일치, 신행일치의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곁에서 본 이재철 목사님은 말씀의 높은 이상과 오늘의 비루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개선하셨는지요.
김광욱 목사: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하셨습니다. 자기를 성찰해야 고칠 부분을 고칠 수 있습니다. 자기 객관화, 자기 성찰이 어렵지 않습니까. 옆에서 말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습니다. 그렇게 성화를 이뤄가셨습니다.
정한조 목사: 목사님께서 반듯하게 살고자 애쓰신 마음 한가운데에는 ‘빚진 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에 빚진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목회 전 사업할 때 인생을 탕진하며 살았다고 자주 말씀하시지만, 사실 그 때도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을 주님의 종으로 부르시고 쓰임받게 하신 것에 대한 빚진 자의 마음이 굉장히 많으셨습니다. 빚 갚는 마음으로 자기 부인에 힘썼습니다.
초심 유지, 구원 은혜 잊지 않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주님께서 교회 통해 주시는 녹 먹는다는 ‘채무감’으로
-그건 30대 때 일인데,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초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김광욱 목사: 목사님은 ‘죽을 사람을 건져 주셨으니, 그 은혜만 항상 생각한다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구원을 받았는데,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빚진 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늘 ‘빚진 자로 살아가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시간이 가면서 그 부분을 놓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오늘날 여러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과연 일어났을까 역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재철 목사의 자기관리법’도 궁금해집니다.
김광욱 목사: 작게는 걸음걸이부터 습관화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이 편안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세가 흐트러지기 쉬운데, 저는 곁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피곤하면 의자에서 널부러질 수도 있는데, 그런 모습을 거의 못 봤습니다. 댁에 가셔서도 그렇게 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몸에 배이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한조 목사: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녹을 먹는다’는 채무감을 늘 갖고 계셨습니다. ‘채무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정한조 목사: 이재철 목사님 정도면 앉아만 있어도 설교 준비가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웃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주간 동안 끊임없이 사고한 것의 결론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스마트 기기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깨달음이 있으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바로 메모하셨다고 합니다. ‘순서 설교’를 주로 하셔서 본문은 정해져 있으니, 한 주 동안 본문의 창을 통해 묵상하면서 성경 전체와 세상을 보시는 것이지요.
처음엔 메모 중 절반 정도를 쓰면 나머지 절반은 모아놓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주일에 주시는 말씀은 그 주일에 쓰라고 주시는 것으로 여기고 다 버리셨다고 합니다.
크고 작은 설교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교회 시절 새교우 심방을 주로 목요일에 하셨는데, 등록카드를 쭉 펼쳐놓고 기도하시다 떠오르는 구절을 메모한 다음 말씀을 묵상하고 전하셨습니다.
<새신자반>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주님의교회 시절 심방 전에 그 분을 위해 기도하다 소위 ‘오병이어’ 사건이 떠올라서 준비해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학창 시절 ‘오병이어’ 설교를 듣다 너무 황당해서 중간에 뛰쳐나갔던 분이었습니다.
속으로 당황했는데, ‘날이 저물 때에’로 시작하는 본문을 읽은 뒤, ‘인생에 날이 저물 때가 있습니다’라고 설교를 시작하셔서 놀랐다고 합니다.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못할 때가 옵니다’ 하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심방 설교를 가볍게 생각하는 목회자가 없겠지만, 같은 본문이라도 충분히 묵상하고 전하셨습니다. 주일 설교는 더 말할 것도 없었지요. 특정 절기나 행사를 앞둔 설교는 충분히 숙고하시고 정리하시니 듣기에 새롭고 의미도 맞는, 이전에 듣지 못한 설교가 나온다고 봅니다.
이재철의 설교: 관찰과 해석부터 재해석과 적용과 결단까지
김광욱 목사: 본문이 정해지면 그 창으로 성경 전체와 세상을 보면서 1주일을 살고 설교문을 작성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본문을 해석할 뿐 아니라, 오늘날에 맞게 재해석하고 오늘날 사람들에게 적용까지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해석과 재해석과 적용인데, 설교자 입장에서 참 쉽지 않습니다.
정한조 목사: 한국교회 설교의 70~80%가 관찰과 적용으로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귀납법적 성경 해석도 있고 관찰 해석 적용까지는 잘 하는데, 이 목사님은 관찰과 해석, 그리고 재해석과 적용, 결단까지 5가지가 있다 보니 남다르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4인 공동 담임목사’ 체제는 일종의 ‘팀 목회’인데, 직접 경험해 보시니 장단점이 무엇인가요.
김광욱 목사: 소명인으로서 섬기고 있지만 부족한 사람이라 부담스러운 자리임은 분명합니다. 외부에서 보면 교회 명성도 있고 이재철 목사님 후임이라는 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도하는 것은 후임이 4명이라, 1/4만 감당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웃음).
정한조 목사님이 아까 제네바 한인교회에 홀로 남은 심경을 말씀하셨는데, 부담감이 엄청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1/4이기에 견딜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정한조 목사: 저도 100%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네 분 모두 비슷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4인 청빙’ 소식을 듣고 고민하면서 2가지를 결심했습니다. 하나는 ‘욕심부리지 말자’입니다. 욕심을 부리면 끝까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천천히 가자’입니다. 아무리 옳은 길이라도 저 혼자 빨리 가면 다른 분들이 따라오지 못하지 않습니까. 다른 분들이 가시는데 제가 못 따라가도 안 될 것입니다. 천천히 간다면 의견을 맞추면서 가지 못할 것 없습니다. 지금 봐도 잘한 생각인 것 같고, 잘 되면 좋은 샘플이 되리라 봅니다.
후임 자리 부담스럽지만, 1/4만 하면 된다는 위로
옳은 길도 속도 맞춰서 가야, 욕심부리면 힘들어
-앞으로도 그럴까요. 서로의 영역이 겹치면 갈등의 소지도 있을텐데요.
김광욱 목사: 지금까지 잘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전에 영역을 분명히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영성 파트는 정 목사님이 대부분 맡아주시고, 제 파트인 목회와 행정도 구체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공동의 영역이 있으면 분쟁의 소지가 있겠지만, 이미 철저히 구분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사역에서 연관성이 있으면 본인의 파트라도 회의 때마다 안건으로 들고 나와 서로의 의견을 여쭤봅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합니다. 제 파트를 제 마음대로 결정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많을텐데, 고민을 4명과 나누다 보니 부담감도 덜하고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이 시스템이 지금까지는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 목사님이 앞서 2가지 결심을 말씀하셨는데,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더라도 저희 교회 표어처럼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는, 조금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본질적인 것이 아닐 경우 목사님들에게도 교우님들에게도 양보하면 됩니다. 하지만 교회의 교회다움을 유지하는 데 반대되는 일이라면 강하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정한조 목사: 사무공간이 서로 떨어져 있지만 매주 목요일마다 4인이 함께 모여 회의하고, 매일 SNS 등을 통해 자주 소통합니다. 본인 영역의 일도 다른 4인의 의견을 청취한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공동 담임목회’인 것입니다. 서로 ‘노 터치’하면 ‘공동’이 아니지요.
제가 신대원 다닐 때 ‘팀 목회’가 유행했던 적이 있는데, 좋은 결과를 맺진 못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목회와 선교, 교회학교 등 서로 관심사가 다른 이들이 그저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사택도 같이, 설교도 돌아가면서 하다 보니 역할 구분이 안 됐습니다. 그리고 서로 정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 연약하지만 100주년기념교회에 있으면서 수년간 호흡을 같이 하고 그 정신을 배워왔기 때문에, 정신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역할 속에서 공동목회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목사님들은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셨는지요.
김광욱 목사: 버리라고 하셨지만, 저는 못 버렸습니다. 스승이기도 하고, 영적으로는 아버지라고도 생각하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공식적으로는 교회 내에서 ‘이재철 가라사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배우지 않았느냐’ 말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말씀 때문에 강조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이 없어도, 100주년기념교회의 철학과 정신으로 다 가능합니다. 배운대로 하지 않으면, 목회할 수 있겠습니까? 다 버리면, 도로 ‘제왕적 4인 담임목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정한조 목사: 버리라고 하신 것이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43장에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옛적 일’이란 출애굽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사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거기에 집착해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놀라운 일을 하지 못하시리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신을 버리라고 하신 것은, ‘이재철에게 매여 있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100주년기념교회의 정신을 잘 이어가면서, 그 속에 푹 빠져 있지 말고 그 위에서 더 잘 꽃을 피우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김광욱 목사: 부담감을 주지 않으시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잊으라고 해야 연락도 하지 않을테니까요. 주님의교회를 떠나실 때도 ‘옛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제네바 한인교회를 떠나실 때도 ‘이재철은 과거의 인부가 되었고, 새 인부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보통 교회 당회실 같은 곳에 가 보면, ‘역대 담임목사 사진’이 붙어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하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정신을 기려야지, 사람을 기리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거침없이 버리라’는 의미는 그런 것 아닐까요.
‘나는 떠나지만, 영원히 기억해 달라’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성도들이 더 존경하게 됐을 것입니다. 버리라고 하신다 해서,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분 앞에만 가면 옷깃이 여며지고 언행이 조심스러워지는,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에게는 구상 선생님이 그런 분이라고 하셨는데, 저희에게도 그런 분이 계셔서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