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3월 1일 故 한경직 목사
본지는 故 한경직 목사님의 생전 설교 전문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제공으로 매주 한 차례, [그 때 그 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한 목사님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생전 설교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생생히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로마서 9:1~5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65년 전에 우리 애국선열들이 일본 사람의 총칼 앞에서 자유를 선포하고 만세를 부른 그 날을 우리가 기념해서 이렇게 모이게 될 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으며, 또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또 그러한 시대에서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여러 애국지사들을 추모할 수밖에 없고, 또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금년에 특별히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여러 단체들이 이렇게 연합해서 이런 예배를 드리게 될 때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읽은 로마서 9장 1절에서 3절까지 제가 다시 읽을 때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러분께서 아시는 대로, 로마서는 1장에서부터 8장까지 우리 죄 많은 인생이 어떻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구원 얻는가 하는 그 큰 진리를 서술한 책입니다. 당시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많은 이방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건만, 자기의 동족인 유대 사람들은 물론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복음을 반대했고, 사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 바울과 그 일행,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를 계속해서 핍박을 하던 중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사도 바울이 그 자기 동족이 어떻게 아직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것을 9장, 10장, 11장에 기록하면서 그 처음 말씀을 이런 말로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한다. 내게는 큰 근심이 있고, 마음에 그치지 않은 큰 고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근심과 고통이 그칠 줄 모른다고 그러면서 3절에 가서는 심지어 이런 말씀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나의 형제," 그러니까 자기 민족이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고 하는 그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을 때, 3절에 있는 말씀, "내가 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서 멸망을 받을지라도 좋다. 그래도 나는 내 민족을 위해서 살겠다." 얼른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면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그 전 장 로마서 8장에 보면,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그리스도와 우리 참으로 믿는 사람과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음을 알려 줍니다. 자, 보세요. 로마서 8장 35절에 이렇게 말했어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스도와 바울의 관계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또 보세요. 8장 38절 39절에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무엇이든지. 바울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바울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단순히 여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가 자기 민족을 매우 사랑해서 자기 마음으로써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다 바쳐도 좋다고 하는, 애족 애국의 심정을 이런 말로 표시한 것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민족을 사랑한 분입니다. 누구보다도 참 애국 애족의 정신이 강한 분입니다.
이와 같은 애국 애족의 정신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그들의 심령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생각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간절한 염원과 노력과 희생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유대 사람들이 모인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애국 애족의 그 정신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을 다 사랑하는데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영혼이올시다.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 제일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힘쓴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의 초대 역사를 보면, 우리 한국 교회의 초대 선교사들이나 또 초대 교역자들도 우리 민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순전히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여러분 아시는 대로 우리 구한국은 1910년에 망했지만, 그 3년 전 1907년에 장대재 교회에서 그때에도 사경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은혜 받는 가운데서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그 다음부터 우리 민족은, 어떻든지 나라는 망했지만 영혼을 구원하자고 하는 그런 각오 가운데서 그때에 100만 명 전도 운동으로 확산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1919년에 하나님께서 1차대전을 끝마치게 하신 그 다음에 국제정세가 변하는 것을 본 우리 애국선열들은 곧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실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사랑해서 간절히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이는 자연히 요새 말하는 사회구원을 위해서도 헌신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면 그 영혼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영혼이 살아갈 만한 사회까지도 옳게 만들기 위해서 헌신하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사실 개인영혼 구원운동과 사회 구원운동을 분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게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실 복음운동, 영혼구원운동에 정성을 다한다고 할 것이면 자연히 그 사람들이 사는 나라, 사회를 정화하고, 자유롭게 하고, 옳은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힘쓰게 됩니다. 순전한 복음운동이 사회구원운동으로, 독립운동으로 확산이 되었다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는 먼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도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할 것이면, 그 사람들이 사는 사회도 옳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나라도 바로 세우기 사회구원운동을 위해서 헌신할 것입니다. 이게 3.1 운동입니다. 사회 구원을 위해서 부르짖은 운동, 사회구원운동입니다. 독립운동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때 3.1 운동의 특색은 한두 가지 우리가 기억하는 게 좋아요. 그때에 목사와 장로들이 또 여러 교회가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향해서 담대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애국운동이 일어난 것을 보면, 이분들이 다 믿는 이들이 절대 다수인데, 이 믿는 이들이 교회에서 무슨 당회나 제직회에서 의논해 가지고 이런 독립운동을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장로입니다. 오산교회 장로입니다. 그러나 오산교회에서 의논해 가지고 이런 운동을 일으킨 게 아니요. 여러 목사들이 다 3.1 운동 대표로 들어가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노회나 총회에서 의논해 가지고 대표가 된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것도 지금도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이 영혼 구원 문제에 있어서는 참 교회가 하는 일이요, 교회가 다 같이 하는 일이지만, 그러나 사회구원운동에 있어서는 이런 독립운동이나 애국운동에 있어서는 교회자체가 할 것은 아닙니다. 개인으로 해야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교회는 교회고 사회는 사회입니다. 교회는 특수한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운동, 독립운동은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세요. 그때 믿는 이들만 한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이들과 협력해서 했습니다. 사실 그때 천도교, 불교 대표들이 다 모여서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만세를 부를 때도 믿는 사람들끼리만 만세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다 합해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것도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일할 때에는 안 믿는 사람과도 협력해서 함께 이런 애국운동이나 구국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안 믿는 사람이 많고 사실 아직 다수가 안 믿고, 그러나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과 같이 뜻을 같이해서 애국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합해서 단결해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기억할 수 있어요. 그때 이분들의 운동은 문자 그대로 비폭력 평화적 운동입니다. 그때 일본 사람들은 총칼로 이런 평화적 운동을 탄압했습니다. 물론, 그러나 우리 편에서는 어디까지든지 총을 쏜다든가 싸움을 한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비폭력 평화운동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하면 그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여러분은 그 후의 역사를 봅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다스립니다. 이 비폭력 평화운동이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아직 38선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통일이 되겠는가? 많은 생각도 하고 애도 씁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전 대통령 이하 모든 국민이 통일은 우리가 다 원하고 꼭 이루어야 하되 그 방법은 반드시 비폭력 평화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한 시기가 올 때 오래지 않아서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통일에 우리 민족이 다시 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이북에서도 물론 통일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적화통일입니다. 자유를 중심한 민주통일이 되어야 하고 이것은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면에서도 벌써 참 60여 년 전에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분들에게는 아무 군비나 힘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이들은 '이 우주 안에는 공의의 법칙이 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런 신앙 가운데서 용감하게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 선언은 여러분 아시는 대로 그 후 한 20여 년 후에 한국이 해방이 되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컨대 우리가 이 평화통일에 대한 것도 우리가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외치느냐 그겁니다.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기도하느냐 그겁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입니다. 반드시 통일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신앙과 애국심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에서 제일 큰 두 가지 계명을 기억하지요? 첫째는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우리 신앙생활이 뭐요? 첫째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네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내 동포를 먼저 사랑한다는 그 말입니다. 신앙과 애국심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신앙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을 또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 믿는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애국 운동의 목표가 무엇일까? 그 선열들이 지금 산다고 할 것이면 오늘날 우리 남한에서 그들이 부르짖고 그들이 할 일이 무엇일까? 이런 면도 잠깐 생각해 볼 수 있는 줄로 압니다. 그건 아마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일 것입니다. 첫째는 우선 남한으로 하여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발전해서 참 모든 나라의 모범이 되게 하고, 또 둘째로는 꼭 평화적으로 민주통일을 이루고, 아마 그분들이 살아 계시면 이런 일을 위해서 힘쓸 거예요.
오늘날 애국의 길이 무엇인가? 그건 간단해요. 오늘날 우리는 이 자유 대한에 살아요. 하나님께서 우리 남한에 이만큼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그동안 여러 가지 어지러운 일 뭐 6.25 사변을 비롯해서 혁명과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지만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서 참 발전 국가 가운데서는 모범적인 국가가 되게 하셨어요. 참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나라를 사랑할 수 있나? 그건 간단해요.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재능을 주셨든지 그 재능을 가지고 발전시키고,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성실과 근면과 협동정신으로 내 책임을 잘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이 성장하고 또 성장해서 온 세계 사람이 우러러볼 만한 이런 조국으로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오. 또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오래지 않아 평화통일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내 책임을 다해서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 월등하게 발전하도록 힘을 쓰고, 또 한 가지는 물론 이제도 말했지만 굳건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3.1 정신의 재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