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서신] 저절로 제자리를 잡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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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예수공동체엔
20여 마리의 닭을 기릅니다.
오늘은 닭장에서 내가 직접 알을 꺼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후 몇 년만인지!

허리를 숙이고 닭장 안에 들어가니
부엽토를 넣어주어서 악취는 없으나  
인간의 영역과는 다른 그들만의 체취로 가득한
그들만의 공간이 숨쉬고 있었습니다.  
태고적 그 어딘가를 방문한 듯한
묘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저는 잠시 닭장 세 개의 문을 모두 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수닭들끼리 싸움이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흥미로운 광경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을 건듯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러나 어쩌나!

제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발로 그들 사이를 막았습니다.
순간 한 마리가 점프를 하며 두 발로 할퀴면서
부리로 내 무릎 바로 아래 정강이를 쪼았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였습니다.

통증이 느껴져 바지를 걷어 올리니
이미 발목까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부리로 쪼인 부분은
뼈까지 손상이 온듯한 아픔이 이어지고
발톱 자국이 선명하였습니다.

저는 막대기로 그들을 쳐서 싸움을 말렸더니
닭장 안에 들어가 악을 쓰며
한 동안 울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아 제들도 감정이 있구나!
그저 미물이 아니구나!" 했습니다.

나는 닭장 밖의 닭들도 모이를 주면서
닭들이 닭장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곧 어두워질 텐데 어찌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난감한 심정을 안고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니 골짜기엔 벌써 별이 뜨고 있었습니다.

나는 걱정을 안고 부리나케 닭장엘 다시 가니
모든 닭들은 제 집에 들어가
횃대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 싸웠느냐는 듯 한 식구가 되어
고요히 밤을 맞아 태고적 어둠 속에서
어느 고대古代의 이야기를 회고하는 듯
웅얼웅얼 횃소리를 하며 잠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별이 뜨기 시작한 항아리골의 밤 하늘을 보면서
나는 혼자 소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어찌하려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밤이 찾아오니 저절로 제 자리를 잡는 것을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겪으며
피를 흘려야 했던 일이 어리석기만 하구나!"
<큰 항아리골 공동체에서, 이주연 드림>

*오늘의 단상*
구도자는 자신의 의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벗고자
마음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주연>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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