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칼럼] 번영이 수치가 될 수도
가장 비참한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빈곤의 문제 아닐까요? 먹을 것이 없고, 살 곳이 없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으로서의 삶의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맙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경제 소득이 있어야 합니다. 경제 소득에 대한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꾸준하게 소득만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비참한 일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삼시세끼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내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절대 빈곤의 문제는 우리 주변에 없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그래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가지로 노력을 해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어느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또 다른 감정은, 상대적 박탈감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부터, 나 자신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계층간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격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소득 수준에 따라 사람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기 시작했고, 입고 다니는 옷과 자동차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우리 안에 도덕적 해이가 놀라울 정도로 극에 달하게 되었고,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윤리적, 도덕적 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못 살아서 그렇습니까? 못 살 때는 차라리 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콩 반쪽도 나누어 먹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문화가 우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못 살아서가 아니라, 잘 살게 되면서 생겨진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는 오늘날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성경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함이 언제 가장 극에 달했습니까? 그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땅의 면적이 넓어지고, 왕을 통한 통치기반이 평화로워질수록 도덕적·윤리적 타락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번영 때문에 부패가 오게 됩니다. 번영의 문제로 인해 사회 전반적인 곳에 총체적 부패가 일어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전성기 때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하나님 없는 번영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의 요구사항을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런데 그 요구사항은 다 번영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고, 권력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만 해 주면 헌신의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번영의 축복이 어쩌면 우리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번영 신학과 성공 신학으로 대변되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성도들의 영혼을 병들게 했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번영과 성공은 속빈 강정과 같았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많은 쾌락을 찾아 타락의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번영을 수치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이런 일은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결국 우리들의 죄의 문제 때문입니다. 지도자건, 백성이건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런 사이클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앎이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물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다고 하는 호세아 선지자의 처절한 외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일 하루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주는 것’으로 내가 해야 할 모든 종교적 활동이 끝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내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다가오는 번영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 수치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