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청년 23명→350명으로, 화양교회 최상훈 목사
67년 된 전통 교회, 기도로 ‘영적 분위기’ 많은 변화
젊은이 교회 만들고 재정 독립, 청년들 오히려 자극
청년들과 두 달간 ‘기도 통장 운동’, 이후 급속 부흥
화양교회는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에 세종대와 건국대를 끼고 있지만, 청년들이 많은 교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2014년 5월 최상훈 목사 부임 이후, 청년들 숫자는 23명에서 현재 350여명으로 불어났다. 장년 성도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청년 부흥’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변화다.
감리회 목회자이자 故 최덕순 목사의 둘째 아들인 최상훈 목사는 6년간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선교사로 있으면서 교회 7곳을 개척했고, 미국 알래스카로 옮겨 한인교회를 개척해 7년간 목회하고, 캘리포니아 벤츄라에서도 4년간 목회하며 많은 성도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후 2015년 5월 1일, 화양교회에 부임해 60여년의 전통이 있지만 분쟁으로 갈라졌던 교회에 강력한 기도의 영성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6일까지 1주일간에는 인터치 젊은이 교회 청년 40여명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 원주민 지역을 방문해 건축한 교회를 봉헌하고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다. 최상훈 목사에게 청년 부흥과 목회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년들과 어떻게 함께하셨나요.
“청년들이 23명 있었습니다. 처음 왔는데, 시간이 됐는데도 청년회 예배를 시작하지 않고, 불도 다 꺼놓았습니다. 67년 된 전통 교회였습니다. ‘영적 방향과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회의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한 달만에 임원들이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겠다’고요. 그 때부터 예배드릴 때 본당의 조명을 모두 켰고, ‘젊은이 교회’를 만들고 재정을 독립시켰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농활’ 등 각종 프로그램을 하는데 교회가 재정을 지원했었지만, 과감하게 모두 끊었습니다.
전도해 보겠다고 요청한 전도지 예산도 거부했습니다. 지금은 청년부 예산으로 충분히 운영되고 있고, 재정 대부분을 국내외 선교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농활 대신 연합 수련회도 하고, 예배 전과 후 기도회를 했습니다. 임원 기도회도 시작하는 등 기도모임만 5-6개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모임 전에 기도하게 했습니다.
지칠 법도 했지만, 놀라웠던 것은 기도를 시작하니 청년들의 표정이 달라진 것입니다. 다소 망설이던 아이들도 한 명씩 기도하러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청년들이 지난 3년간 물밀듯 등록했습니다.”
-비결은 기도에 있었네요.
“기도는 쌓이다 보면 터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과 ‘기도 통장 운동’을 매년 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헌금은 드릴 수 없더라도, 기도는 드릴 수 있다고 봤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금향로에 쌓듯,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다른 헌금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두 달간 기도의 분량을 모아 직접 앞에 나가서 헌금합니다.
‘기도 통장’을 통해 교회가 급속도로 부흥했습니다. 계산법은 정확히 모르지만, 두 달만에 ‘기도 통장’에 2억원을 채우려면 하루 평균 9시간 기도해야 합니다. 축하와 축복도 하고 간증을 통해 도전도 되도록 하기 위해 시상도 했는데, 1등이 고려대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생명의빛선교회 간사도 맡고 있습니다.
모르는 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캠퍼스 근처니까 젊은이들이 알아서 많이 찾아오는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같은 자리에 지난 65년간 있었어도 청년 부흥이 없고 죽어 있던 곳이었습니다. 부흥을 경험하면서 전도사를 세우듯 각 셀 리더를 세웠습니다. 교회 내 제자반을 운영하면서 성경공부도 함께했습니다. 모두 하나님 은혜입니다. 저도 놀랍습니다.”
-청년들이 스스로 동의할 때까지, 한 달이나 기다려 주셨습니다.
“아내와 함께 예배드리면서 계속 기다려 주었습니다. 청년들이 존중받는 느낌은 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청년들이 처음엔 ‘젊은이 교회’ 독립에 대해 당황스러워했지만, 헌금이 조금씩 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와 구제에 더욱 힘쓸 수 있었습니다.
주일에도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8시에는 오늘 예배를 위한 기도회를 하고, 장로님들도 10시에 예배를 위한 기도회를 하십니다. 예배 시간에도 따로 모여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오후 2시 청년부 예배 전에도 기도회를 합니다. 수요일에는 오전 여리고 기도회와 오후 어머니 기도회, 매일 제단불 기도회 등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 제자반도 처음에는 지원자가 적었는데, 지금은 뽑힐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정도가 됐습니다. 세상에 뒤처지지 않도록 멀티미디어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콘텐츠도 개발하고, 영상 퀄리티를 높이고자 합니다.
젊은이 교회를 하다 보니 2층에 공간을 마련해 청년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청년들 중에 인재가 많습니다. 이렇게 젊은이 교회를 따로 만들어 나가면, 지금보다 영적·질적으로 폭발적인 부흥이 있지 않을까요. 예산도 대부분 선교와 구제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장년 성도분들도 자극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부임했을 때는 200여명이었는데, 지난 6월 출석 인원이 900여명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처음 왔을 때는 찬양팀이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일곱 팀이라는 것입니다. 성가대도 네 팀이 됐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으시니, 궂은 일도 직접 하십니다. 교수나 법조인 분들도 화장실 변기 청소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토요일 비전 새벽기도회 이후 다함께 교회와 주변 청소를 하는데, 교회 안에서만큼은 모두 같은 성도들로서 사역합니다.
집회 강사로 초청돼서 ‘저희 교회 청년이 100명이 됐습니다’라고 소개했는데, 조금 있으니 ‘200명입니다’라고 하게 됐습니다. 매주 청년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청년들 새가족 얼굴이 나오는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오고 있습니다. 직장이나 결혼 때문에 옮기는 청년들도 있지만, 새롭게 들어오는 청년들이 더 많습니다.
인원 수가 다는 아니지만,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5년간 연회 교회성장상을 3회 수상했습니다. 이런 격려들이 체질이나 영적 흐름 변화에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는 일도 잘 진행됐습니다.
마지막 때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받는 청년들이 많은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답답한 것들을 풀어주는 교회, 특히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선교사 출신이다 보니 개척교회나 병원 선교, 미전도종족을 위한 선교회 등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교회 밖에서 영향력을 미치기보다, 교회 안에서 영성을 쌓는 일에만 몰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도에 주력하지만, 제자양육도 14주 코스로 진행 중입니다. 교회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빛의 역할이란 영성을 뜨겁게 하는 것이고, 소금의 역할이란 각자의 처소에서 복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국내 개척교회들과 연결해 거제나 무안 지역에서 봉사하고, 주변 연탄봉사나 해외선교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보다 각자의 직장과 학교에서 복음을 나타내는 것은 청년들에게 하나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교회 차원에서는 ‘느헤미야 비전’을 진행했습니다. 저희 교회 건물이 오래 돼 리모델링이 필요한데, 그 전에 아프리카와 몽골, 베트남 지역에 교회를 짓기로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저희 교회를 리모델링하기로 했는데, 교인들이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최근 세 곳의 교회가 모두 완공됐습니다. 이번에 아프리카 마사이 지역에 함께 가서 봉헌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가을쯤 저희도 리모델링을 시작하려 합니다. 먼저 비우면, 채워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교인들 마음에도 감동이 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최상훈 목사와 아프리카를 방문한 젊은이 단기선교팀 40여명은 첫날 케냐 현지 감독회장과 감독, 현지 목회자들과 수백 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레소잇 감리교회를 봉헌했다. 청년들은 준비해간 태권무와 워십댄스, 무언극과 부채춤, 인형극 등을 공연했다.
최 목사는 성령집회를 인도하면서 어린이들까지 주민들 한 명 한 명에게 안수했고, 음식을 대접했다. 또 물이 나오지 않는 해당 지역에 레소잇 저수지를 완공해 봉헌식을 열었다.
이튿날에는 7년간 선교사로 사역했던 올레케뭉케 교회를 찾아 감사예배를 드렸으며, 형편이 어려운 가정들을 방문해 안수기도하고 지원금을 전달했다. 마을 잔치도 열어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다음 날에는 카리오크 감리교 학교 학생 500여명을 대상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학교 교장은 공연 관람 후 인터치 젊은이 교회와의 자매결연을 권유했다. 최 목사는 세계 3대 빈민촌 중 한 곳인 키베라 슬렘가를 찾아 예배를 인도하고, 2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눴으며, 환자 가정을 찾아 병원비를 지원했다.
인터치 젊은이 교회는 이후에도 40여명의 단기선교팀이 16-19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2시간 거리의 동티안 지역 산족마을을 찾아 여름성경학교와 마을잔치를 진행하고 있다.
-부교역자들과의 관계도 돈독하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교단(감리회)은 부목사들까지만 사택을 지원하는데, 저희 교회는 전도사님들이라도 풀타임 사역자들에게는 사택을 부분 지원합니다. 선교를 위한 목회활동비도 부목사님 계좌로 모두 들어갑니다. 저도 쓸 일이 있으면 내용과 목적을 첨부해서 받아야 합니다(웃음).
목회비 자체가 교회에서 제게 주신 것이지만, 부목사님에게 관리를 맡겼습니다. 전도사님들과 아무래도 좀 더 신뢰 관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저희는 가족 같은 분위기입니다. 부교역자들이 다른 일이 있으면 새벽기도회 설교를 제게 맡기기도 하고(웃음), 제 방에 찾아와서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부교역자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느냐가 중요하고, 진심은 통하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만 잘해주는 것과 진심으로 대해주는 것의 차이를 대번에 알아보더라고요.”
-선교를 오래 하셨지요.
“교단에서 우간다 최초 선교사였고, 알래스카도 그랬습니다. 에스키모 선교센터를 지었을 때 본부에서 봉헌예배를 함께 드려 주셨습니다. 제가 개척한 교회에서 미주연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한두 명부터 시작해본 경험 덕분에, 한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알래스카 경험 중 가장 큰 도움은 근처 주립대학에서 매일 새벽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교회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나서 매일 학교로 찾아갔는데, 쉽지 않았지만 그 덕분인지 젊은이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이곳에 와서도 초반에는 근처 세종대와 건국대 강의실에 모여 새벽예배를 학생들과 함께 드렸습니다. 그 학생들이 지금 핵심 멤버가 됐습니다. 그 기도모임이 시작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근처에서 식사하고 대화하면서 그들의 어려움도 나눌 수 있었지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 위에 서고자 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총동원주일 전도축제 같은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지만, 매주 꾸준히 보내주십니다.
구제하는 곳도 너무 많아져 주보에 다 내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도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청년 창업에 대한 비전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건 청년부 전도사님께 여쭤보시면 됩니다(웃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