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눈물(렘 11:18~14:12)
유다의 심판에 대한 경고는 계속됩니다. 내용은 동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우상을 섬기며 그것들을 기뻐해서 악을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멸망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선지자는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합니다. 조금만 귀 기울이고 들을 수만 있다면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때인지를 분별해서 주님 앞으로 돌아올텐데 오히려 심판을 예언하는 선지자를 핍박합니다(렘 11:19).
하나님을 배반하고 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듣기에 얼마나 거슬리겠습니까? 선지자는 미움 받기를 작정하고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전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전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스스로 알아서 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셨기 때문에 알게 된 것입니다(렘 11:18).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전하라고 예언의 말씀을 주시며 재촉하시고, 유다백성들은 그 예언을 전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니(렘 11:21)... 시대가 어두울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포자는 짓밟히면서 고통 받는 게 맞습니다.
하나 더해서 그는 앞으로 다가올 민족의 멸망의 참혹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은밀한 곳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며 통곡합니다(렘 13:17). 선지자는 이 마음을 어디서 위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렘 12:6)?
다수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을 스스로 버리고 떠난 곳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면 그 한 사람은 속이 다 타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알고 있는 선지자는 외로움 속에서 미움 받고 짓밟히고 고통당하면서 슬픔으로 오열합니다.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다 해도 그들과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선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칠흙같은 깜깜한 곳에 묻혀 버리거나 무쇠처럼 단단한 곳에 부딛쳐서 되돌아오더라도 묵묵하게 바보처럼 계속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선포자는 끌려서 도살하러 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저항하지 않고 박해를 다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말씀만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는 그들과 함께 뒤엉켜 같이 맞대응할 수 없으니, 자신의 원통함을 하나님의 법정으로 올려 드리면서 공의로 판단하셔서 보복해 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렘 11:20).
의인의 기도대로 그 보복은 하나님의 심판이 되어 유다 백성들에게 내려올 것입니다(렘 11:21). 때가 차면 공의의 심판주께서 정의를 분명히 실행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가 차기 전까지 악한 그들은 여전히 형통하고 평안합니다. 이런 이해 못할 상황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무슨 까닭입니까? 공의의 하나님 보십시오, 그들은 마음이 이미 하나님에게서 떠나 악을 행하는데 왜 여전히 잘되고 있습니까? 멸망할 거라고 말만 하시고 왜 그대로 두십니까(렘 11:1~4)?"
민족의 죄 앞에서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하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대답은 과연 하나님 이십니다.
"네가 이 작은 것도 견뎌내지 못하면 앞으로 닥쳐올 큰일 들을 어찌 감당 할 수 있겠느냐(렘 12:5)" 이런 상황들을 다 견디어 내면서 사역자는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지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그분의 완전하신 뜻대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심판을 예정하시고도 시간을 끄시는 하나님의 본심은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메시지를 듣고 회개해서 돌아오기를 원하는 가슴 아픈 사랑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심판으로 땅이 황폐하여 경기가 침체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 둘 것이며, 민족끼리 충돌하여 상하게 될 것이고 북방의 강한 나라들에게 잡혀 포로로 끌려 갈 것이며 가뭄과 자연재해로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렘 12;7~14:6).
이 시대에 오늘 듣는 예레미야 에게 임한 예정된 심판의 메시지가 이스라엘의 이야기로만은 들리지 않습니다.
서울 마라나타교회 이영은 목사(압구정 큐티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