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길 목사 광복절 기념주일 예배 설교 전문]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제목: 기억하라
본문: 신명기 15장 15절

▲홍정길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동영상 캡처

▲홍정길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동영상 캡처

제가 평생 설교 원고를 나눠드린 것이 처음입니다. 광복절 예배 설교 부탁받으면서 지금까지, 올해 광복절을 어떻게 지내야 하나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원고입니다. 또 나라의 마음이 갈라져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어디에 시선을 줘야 할까. 표현 하나 잘못 되면 마음 상할 사람 있는데 어떻게 전할까, 고심하면서 기도하면서 이 말씀 준비했습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함께하셔서 역사할 줄 믿습니다.

모두 원고 들어주십시오. 설교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광복 74돌과 대한민국 건국 71주년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입니다. 이 감사의 말, 모세의 설교 본문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들에게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 백성이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15절 말씀은 신명기 전체의 중심에 해당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두 가지를 정확하게 기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애굽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기억하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독일 남부 유태인 포로수용소를 참관하며 나오다가 출구에서 보였던 문구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복이라는 재앙이 반드시 임한다.

또 영국의 문명비평가인 H. G. 웰스는 역사의 비극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가 계속 곱씹어야 할 말씀입니다.

지금은 세계 최강 패권 경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이것은 3차대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나라에는 북쪽에 이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킬 핵무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또 우리는 한일 관계에서 새로운 충돌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 정치를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은 사실 많은 싸움 같지만, 일본과 정면으로 승부해서 싸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서 작금의 대일 문제에 승리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동학 혁명이고, 또 하나는 임진왜란입니다.

이 정부의 선봉장 격인 한 사람은 ‘죽창가’를 부르자고 합니다. 동학혁명에 깊은 감명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걸고 일어난 동학혁명이 여러 상황과 연결돼 있지만, 동학군의 마지막 국면이 결정적으로 꺾인 것은 조선군과 일본 연합군이 맞서 격돌한 우금치 전투의 패배였습니다.

우금치 전투에서는 2만명의 동학군과 소수의 숫자로 이뤄진 조선과 일본 연합군이 싸웠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1만 7천명 넘는 전사자들이 발생한 동학군이 참패했습니다. 그에 비해 상대편의 희생은 미미했습니다. 너무 창피해서 (원고에) 기록하지 않았는데, 일본인은 한 사람만 죽었습니다.

동학 혁명군 지도자들은 부적을 하나씩 나눠주면서, 일본군이 쏴대는 총탄을 막을 수 있다고 선동하며 전쟁을 독려했습니다. 패배 후 한일합방이라는 쓰라린 식민지 경험을 온 국민이 감내해야 했습니다. 냉엄한 현실에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대처해야 합니다.

임진왜란은 어떻습니까? 이 전쟁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답은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세계 전쟁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명장입니다. 그는 23전 23승을 했던 무패 장군입니다. 그가 그처럼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패배할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승리할 전쟁만 한 것입니다.

조선 임금 선조가 잘못된 첩보를 받고 간신들의 부추김을 받아 이순신 장군에게 전투를 명령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무모한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왕명을 거역한 것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사형 직전까지 이르렀고, 결국 백의종군이라는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이 여러 가지 있겠으나, 오늘은 4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철저하게 전투를 준비했습니다. 아군의 장점과 적의 장점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전투에 임했습니다. 일본은 전국 시대를 겪으면서 활에서 칼로, 조총 등의 최신 무기로 체제를 변경시켰습니다. 그들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본인들에게 익숙한 소총을 갖고 전투에 임하여 육전에서는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쳐들어 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화전과 대포를 전함에 장착했습니다. 해전에서 일본군의 조총보다 몇 배나 긴 사정거리를 가진 무기였습니다. 이로써 이순신 장군은 해전에서 계속 연전연승했습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한 것이 승리의 요건입니다. 그는 철저히 그것을 지켰습니다.

둘째, 함께 전투하는 지도자들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했습니다. 임진왜란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정근 장군의 공로는 수군의 승전에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보다 나이 많은 노장이었습니다. 이전의 수군절도사였습니다. 수군 가정에서 태어난 정근은 평생 전라 우수영 전투에서 해전을 경험한 장수였습니다. 81세로서 당시 이해할 수 없는 아들보다 젊은 이순신 장군의 막료로써 평생의 경험을 쏟아 이순신 장군을 힘껏 도왔습니다.

현 정부에서는 전문가들이 보이지 않고 전공자들이 보입니다. 전문가는 책임지는 사람이고, 전공자는 연구하고 실험하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는 이 나라에서 극복되어야 합니다.

히브리 말로 지혜는 ‘호크마’입니다. 나이가 많다, 경험이 많다는 뜻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르호보암 왕에게 나이 많은 이들의 지혜를 간구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왕은 왕이 되자마자 노인들을 모두 쫓아내고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람들을 옆에 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구분되는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천추의 한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로마가 1천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 역시 원로원의 지혜에 있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민주당에서 원로로 존경받는 어르신을 만나 말씀드렸습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왜 관여하지 않으십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노인을 사람으로 취급합니까? 씁쓸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나라가 더 걱정이 됐습니다.

셋째,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의 생업을 염려하여 최선의 배려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 관할 지역 백성에게 땅을 개간하고 경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합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이것은 정치의 요체입니다. 국가는 태평해야 하고, 백성은 평안해야 합니다. 대통령이면 국민들이 평안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어떻게든 국가의 태평을 이룩해야 합니다. 국태민안의 기초가 없는 정치는 어떤 정치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란 속에도 이순신 장군은 본인이 다스리는 지역이 윤택하도록 항상 배려했습니다.

임진년부터 정유년까지 7년의 전란 속에서 오직 전라도 사람들만 배고프지 않게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 덕분입니다. 아니, 선조가 도망간 그곳까지 식량을 공급했다는 역사적 기록도 읽은 적 있습니다. 그는 문관도 아니고 경제 전문가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생업을 염려하고, 사상자를 내지 않으려 고심했으며, 부상자를 하나 하나 찾아다녔고, 함께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위해 애도의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보면 이순신 장군의 애민애족이 얼마나 깊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전쟁에 이기기 위해 우방에 대해 깊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 상전국이라고 갑질을 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아군을 어려움에 빠뜨릴 때도 이순신은 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투가 끝나면 전공을 진린에게 돌렸습니다. 눈앞에 있는 적을 이기기 위해 모든 힘을 결집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진정한 적은 누구일까요?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무서운 위협은 북핵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지금 일본과 다툴 때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의 위협은 이 땅의 민족과 산하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멸망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 71돌을 맞는 날입니다. 정말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광스러운 날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증오가 기쁜 날을 슬프고 두려운 느낌으로 맞이하게 합니다.

이것은 집권자들이 우리 100년의 역사는 반칙과 특권의 역사요, 가진 자는 갖지 않은 자를 수탈하는 역사이며, 권력을 장악한 자는 갖지 못한 자를 핍박한 역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할까요? 집권 세력의 역사관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함석헌 선생께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을 쓰시며 우리 민족처럼 고난이 많은 역사가 없다, 이스라엘 역사처럼 고난의 역사라고 기술했습니다. 저도 대학 시절 그 책을 읽고 그 분의 강좌마다 쫓아다니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978년, 영국에서 열렸던 세계 선교대회에 참석하게 되면서 눈으로 처음 세계를 맞이하고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그 후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의 사역지를 방문하고 유학생 수련회를 인도하며 새로운 인식이 깊어졌습니다.

또 우리는 밀알복지재단이 세계를 돕고 있는 현장을 돌아보았습니다. 유럽 보헤미안의 고난과 폴란드의 수난, 칼빈파 위그노의 수난사를 보면서, 그 비극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하루에 3만명이 살육당하고,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강이 빨갛게 피로 물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 지역 쿠르드족의 문제, 아프리카 내전과 극심한 가난 등은 지금도 끝나지 않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세계 역사 속에서 고난이라는 카드를 내밀 수 없는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고난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신채호 함석헌 선생이 서럽고 슬픈 시대에 절망과 비분강개를 그렇게 토해냈고 사람들이 그런 글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우리 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 정권 몇몇 분들을 만나보면 매우 겸손하고 진실하며 호감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역사를 진단하는 것은 개인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들이 딛고 서 있는 역사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정말 우리 100년 역사가 그처럼 빈한한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특히 해방부터 지금까지는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경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과거 세계 경제 3대 지역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 동경만의 기적, 한강의 기적. 그러나 앞의 두 나라의 부흥은 기적이 아닙니다. 독일은 두 번이나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일본도 전범국입니다. 그랬던 나라들이 머리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든 것입니다.

일본이 세계를 두고 전쟁을 했던 전범국가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쉽게 말합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모두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입니다. 그러나 한국을 제외한 세 나라는 작은 도시국가 정도의 규모입니다. 이들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크게 흩어져 경제력을 확보한 화교들의 자본력과 시장 장악력을 토대로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이야말로 기적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원도 없었고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시장 지배력도 전무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조금 남은 것은 6.25 때 깡그리 불탔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70년만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굶어죽은 사람이 있던 나라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에 앞서서 생존권입니다. 반만 년 역사 속에서 생존권이 해결된 것이 4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5천년 역사 중에 40년입니다. 기적입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감사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정치 발전은 어떻습니까? 저는 제 시대에 정말 자유를 누리는 축복을 계속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많은 밤을 지샜습니다. 학생단체에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몸에 불을 지르질 않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질 않나. 그 때마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이 비참한 역사 속에 가두어서 평생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던 날들이 참 많았고, 내 시대에 군부 독재가 끝나지 않으리라는 공포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틀인 법치를 확립하여 잘못 하면 최고 통수권자라 할지라도 법의 심판을 받아 교도소에 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나라는 세계에 없습니다. 이런 지도자들이 형을 받고 교도소로 가는 것은 비참한 국가적 치욕이지만,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한없이 부러운 사건입니다.

그 외에도 스포츠, 예술, 학문 등 여러 분야에서 단기간에 세계적인 인재가 배출되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모든 발전의 정신적 기초를 놓아 주었습니다. 1백만 성도가 1천만 성도로, 5만 9천 마을마다 교회가 우뚝 서서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찬란한 역사를 적폐로 점철된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적폐로부터 시작해서, 이를 스스로 극복하고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입니다.

제가 북한을 다니면서 가장 속쓰린 것 중 하나는, 지금 북한 아이들을 우리 앞에 세워놓고 피골이 상접한 그 아이들에게 ‘우리는 행복해요’ 노래를 부르도록 합니다. 올 때마다 씁쓸해서 저녁에 잠을 못 잡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 속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발전을 일으킨 우리가 ‘우리는 불행해요’ 노래하도록 이 역사가 우리를 세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받고 힘들었던 역사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선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하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이 기쁨과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는 시각이요 진실입니다.

적폐가 있다면, 제 눈에는 한국 정치가들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역사도 보지 않고, 과거의 것들을 부수는 일에 열심인 적폐,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작금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대하 7장 14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주께서 주신 말씀이 바로 역대하 7장 14절인 것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은 역사를 운행하실 때, 하나님 백성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운행하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했던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관영해서가 아닙니다.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에 유황불을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엄청난 축복을 갖고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주신 것에 시선을 뺏겼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러기에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보지 않고…. 부자들에게 야고보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것을 주어 후히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가 아닙니다. 김정은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폭탄을 그보다 천 배나 만들어도 우리 머리털 하나 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 정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뼈저리게 기억해야 할 것 아닙니까?

기억하는 것은 감사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것은 배은이고 망덕입니다.

하나님 없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대한민국 건국일을 1919년 4월 11일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임시정부 기념일입니다. 임신했다고 생일 안 치르잖아요?

나같이 머저리도 역사책을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몇 사람들의 역사관이 1919년 4월 11일이 건국기념일이라 그러더라고요. 제게 설명 좀 해 주세요. 제가 그 분들 책을 다 읽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국가로서 유엔에서 승인받았던 것도 기적입니다. 나중에 찾아보세요.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호가 유엔에서 국가로 인정됐는지.

그리고 건국 2년만에 민족 상잔의 비극 6.25가 닥쳤습니다. 말만 하던 허수아비 같은 군대들, 전쟁 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압록강에서 떠들어댔던 국방장관. 파죽지세로 3일만에 서울을 점령당합니다.

유엔에서 회의하는데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이 모여 한국을 도울 것인지 말 것인지 논의했을 때, 제가 이름도 못 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초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국가고시를 보고 중학교 들어간 사람입니다. 시험에 나왔습니다. 소련 외상이 누구냐? 비손스키. 그때 사무총장이 트리코플리. 내가 머리가 석두여서 한 번 새겨놓으면 잘 안 없어집니다.

그 분이 국제법 학자입니다. 외상으로서 명 외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상임위원회가 의논하는데 자기들이 전쟁을 부추겨 놨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보다 안 나가면 결정이 안 되는 줄 알고 안 나갔대요. 그런데 나머지 네 국가가 만장일치로 파병이 결정되었습니다.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피흘렸습니다. 1989년엔가 처음으로 터키에 우리 선교사들을 돌아보러 갔습니다. 한 마을에 들렀는데 쿠르드족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생긴 이래 한국 사람이 처음 왔다고 온 마을 사람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우리의 형제 나라라고.

저는 놀랐습니다. 한 번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분들이 형제라고 말할 때 친숙하다는 의미가 있고 엄마의 자궁을 같이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후자라고 환대를 했습니다. 어떤 분이 목발을 짚고 오더라고요.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당했다고 한 노인장께서 튀어나와서 내 손을 만져봤습니다.

마을 대표가 어느 고등학교로 안내했습니다.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말로 써진 비석 앞에 세워놓고, 여기 기록된 사람은 고등학교 한 반 전체가 의용군에 참석해서 장진호 전투에서 전멸했대요.

우리가 지금 얻은 이 자유가 어떻게 얻어진 줄 아십니까? 내가 그 사람들 이름을 압니까? 나는 그 현장에 가기 전까지는 터키가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싸웠다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그 앞에 오열하면서 그 분 앞에 목례 했습니다.

세계 공산주의가 사람들의 환상을 불러 일으켜서 유토피아를 약속해서 단숨에 세계 1/3을 장악해 버린 그 때, 도무지 어떻게 이 조그만 나라가 반이 잘려서 자유민주주의를 갖게 됐는지, 기적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아니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적에 주실 놀라운 약속을, 남서울은혜교회 교인들은 잘 알아야 합니다. 이 학교가 지어진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은혜 아니었습니까? 하나님 은혜를 망덕하면 망합니다. 망덕하면.

동네 사람들이 반대해서 원래 이렇게 설계가 안 됐습니다. 이쪽 이면도로에 정문이 있었습니다. 서울시 도로교통법에서 주 도로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정문을 절대 용인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발달장애아들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반대해 줬길래, 정문이 대로로 났을까요.

우리가 재판했습니다. 여기 장애인 시설을 하면 손해 보는 것을 보상하라고 104억원 고소를 당해 법정에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재판을 이김으로 이 땅에서 서럽게 태어난 장애인들…. 허가가 필요한 개축이 안 됐습니다. 증축도 신축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김으로써 250개 넘는 장애인 건축들이 함께 같이 풀려서, 우리가 당했던 고통의 200배 넘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

1997년 12월 17일, 이명범 장관 시절. 문교부가 22억 4천만원을 우리에게 보조해 줬습니다. 그 전에 안 장관님이 계셨는데 5억원을 약속해 놓고 그 주말에 해임됐습니다. 말이나 하지 마시지, 5억원이 날아가니 속이 상해서. 그런데 그 분이 주려면 다 도와줘야지 하시면서. 1997년 12월 17일 현찰로 해결됐습니다.

왜 내가 현찰이라고 하냐 하면, 누가 현철이 도와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확하게 현철이 아니고 현찰이었어요. 5억원을 받았으면 다 못 받았습니다. 우리 장로님들 다 아는 사건 아니에요. 그런데 12월 17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1997년 12월 18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IMF 국가 부도의 날이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돕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이 나라의 역사가 지금까지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쥐고 있는 이 크리스천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전부 선동에 놀아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우리는 증오심을 키우는 일에는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태극기 부대이든 반일 운동이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증오할 자격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귀한 날 우리는 또 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과 주 너의 하나님이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이 나라를 주장하신 분을 기억하라.

여러분, 우리 힘으로 했다면 가능합니까? 미국의 힘입니까? 미국이 도왔던 나라들도 다 무너졌습니다. 이 나라 하나입니다. 도무지 조건도 안 되는데,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힘이라고 믿습니까? 사실입니까? 확신하냐고요.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무얼 두려워합니까? 지금까지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했다면, 지금부터 내년은 또 얼마나 주께서 우리가 모르는 역사를 펼치실지 기대하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위해 현 집권 세력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저 분들이 더 이상 나가지 못하도록.

그러나 그보다 더 기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땅을 고쳐 달라고 기도해야 하니까, 이 나라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먼저 기도할 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돌아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역대하 7장 14절 말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여러분의 후손에게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찬란한 역사를 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세계 역사는 자유의 진보의 역사라고 헤겔이라는 철학자가 말했습니다. 첫째, 왕 하나밖에 자유가 없었는데 그 다음에 영주, 신하, 중인, 평민, 노예들이 자유를 얻은 것이 세계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동양의 역사는 자유의 진보가 없기 때문에 세계사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실제로 자유가 없는 세월을 계속 살았습니다. 몰라서 그렇지. 자유를 얻어서 마음껏 누리는 시대는 30년이 채 못 됩니다.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기회의 자유? 공평의 자유? 루즈벨트 대통령이 네 가지 자유를 말했습니다. 이처럼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나라가 되는 것이 30년이 채 안 됩니다. 반만 년 역사 속에 겨우 붙잡은 자유예요.

저는 제 손주들을 보면서 할애비의 시대가 최대의 유산을 준 것이 자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안 줘도 돼요. 이런 찬란한 역사, 그런데 이것을 자중지란이 나서 이 나라가 망해서야 되겠습니까? 또 자유를 빼앗긴 속박의 시대를 만들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다. 그 하나님께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내 이름으로 부르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겸비해서 내 앞에 나오면. 이 민족의 역사 방향이 결국 남서울은혜교회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신 역사의 키입니다.

하나님, 망하고 싶다가도 남서울은혜교회 와 보니 도저히 못 망하겠다 그러면 안 망합니다. 그것을 위해 돌이키십시다. 성도님들, 비상한 시대에는 비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울부짖고 기도해야 할 때는 울부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수요 기도회 와 보니까 장로들도 안 와요. 권사들도 얼굴이 안 보입니다. 낮에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나와서 모여서 기도하십시다. 주의 자비를 구하십시다. 그것밖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 소망을 놔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왜 걱정만 하십니까? 확실한 해답이 있는데. 우리가 거듭 반복해서 누려온 검증된 해결책이 있는데 어디로 가시냐고요.

다시 기도하십시다. 주의 은혜가 74돌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는 안 싸웠습니다. 엉겁결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맞이한 이 광복절을, 우리가 깊이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또 감사하면서.

또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이전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어떤 희생을 치렀는데, 감사해야 돼요.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오는데 도왔던 손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빚진 나라입니다.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의 피값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우리가 얻은 자유가 그것 때문에 얻어진 것입니다. 돌이켜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옵시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해 주시기를, 모두 기립하셔서 찬송가에 버금가는 애국가를 같이 제창하십시다. 애국가, 볼 것도 없고 (가사) 띄우지 마세요. 4절까지 못 외우는 사람은 우리 교인 아닙니다. 교회 개척해서 43년간 4절까지 불렀습니다. 일어나세요.

기도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한량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의 예배 때마다, 아니 우리의 삶 속에서 내 속에 내주하시며 교통하며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이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통해 내게 주신 복을 하나 하나 세면서 감사하고 찬송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뒤로 하고, 축복 주신 하나님을 뒤로 하고 안겨준 축복에 마음이 뺏겨 새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버린 나를 발견하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원하는 심령 심령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실지어다. 아멘.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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