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 광복절 기념주일 설교 전문]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큰 폭풍의 레슨'(요나 1:11~17)
2019년 8월 11일

▲8월 11일 광복절 기념 주일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는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설교 영상 캡쳐

▲8월 11일 광복절 기념 주일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는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설교 영상 캡쳐

오늘은 광복주일입니다. 어느 민족 어느 역사에나 크고 작은 폭풍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폭풍이 있었다면 그것은 국권을 상실한 사건, 소위 한일합방의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대한민국의 통치권을 송두리째 넘기는 한일병합, 혹은 한일합병의 조약이 맺어지던 그날을 경술국치일이라고 부릅니다. 그후 35년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는 소위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 민족의 얼 정신 우리 민족의 문화 언어 심지어 개인의 이름까지 빼앗기는 고통의 시간을 지났습니다.

마치 선지자 요나의 경험처럼 그가 타고 있는 배가 깨어지는 위기를 직면했던 것입니다. 요나서 1장 4절의 말씀을 다시 상기해보십시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요나 1:4)

배가 거의 깨자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경험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다. 민족의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한민족을 지탱하던 배가 깨어져 이제 모든 것을 상실하기 직전까지 코너에 몰렸습니다. 이런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절정에 달하면서 우리는 소위 내선일체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송두리째 상실하게 노예화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본문이 시작되는 11절의 정황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바다가 점점 흉흉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요나 1:11)

우리 해방 전에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는 매년 8월 29일이 되면 선언서를 발표하거나 혹은 기념식을 열였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치욕을 자랑스럽게 여겨서가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동일한 수치를 역사 속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광복절을 기념하면서도 국치일은 더이상 기념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해방의 진정한 기쁨을 간직하고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수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치열한 반성이 더 필요한데 말입니다.

성경의 민족, 이스라엘 민족이 해외에서 그들의 옛땅을 방문하면 그리고 일년 중에 중요한 민족의 중요한 절기가 되면 남녀노소 막론하고 그들이 여러번이라도 실증나지 않고 가족들이 손잡고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두 곳이 있습니다. 한 곳은 저 사해바다 남쪽의 맛사다 언덕입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했던 로마에 쫓겨가면서 마지막 항전을 했던 곳, 결국 다 장렬한 자결로써 그들은 민족의 최후를 맞이했던 그곳, 이스라엘 군인들이 임관식 할 때 거기가서 해요. 그리고 다시 맛사다는, 우리 민족은 다시는 패망하지 않을 것을 것이다라는 선언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예루살렘 근교에 위치한 야드바셈이라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야드바셈은 이름을 기억한다, 기념한다는 그런 뜻인데요, 소위 600만의 유태인 학살 추모 기념관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자기 민족이 유대 민족이 과거에 겪었던 비극을 반복하지 않고 미래의 민족을 지켜가기 위한 결단의 신성한 에너지를 얻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주 고백하는 유명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Forgive but never Forget)

자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민족 역사의 비극에서 가장 커다란 폭풍이었던 국권 상실의 사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레슨(교훈)이 있다면 그 레슨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역사의 어둠에 대한 책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도피하던 요나에게 제비가 뽑혔을 때, 그는 더이상 도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요나는 과거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 책임을 지는 고백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12절의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그가 대답하되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요나 1:12)

자 여기 도피하던 선지자 요나가 성경에서 자기의 이름으로 된 책, 요나서가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던 원인을 우리가 짐작할만하지 않습니까? 이 책임질 줄 아는 태도, 늦었지만 그는 책임의 자리에 기꺼이 섰던 것입니다. 역사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역사를 맡긴다는 교훈입니다.

이 땅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해방 이후 우리가 겪었던 적지않은 혼란과 방황의 원인은 소위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고 청산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런 친일청산이 결코 몇 사람의 지도자를 정죄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하게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을 지게 하지만 우리는 반성이라는 그 단어 아래 원한을 정당화 하고 평화의 깃발 아래서 새로운 미움을 재생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권 상실의 궁극적인 책임은 저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을 해요. 결국 우리 모두가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하나의 요나가 되어 우리 모두가 다 내탓입니다, 내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우리 민족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라는 국가적 혹은 민족적인 회개운동이 있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회개의 바다에서 새로운 역사를 위해 다시 태어나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여기 본문의 15절의 말씀을 보세요.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거이 곧 그친지라"(요나 1:15)

그리고 비로소 폭풍은 잦아들고 새로운 역사의 장이 다시 펼쳐집니다. 역사에 대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미성숙한 반응이 있다면 우리가 서로 책임 회피를 하는 것, 서로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나누어서 우리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친일파와 반일파로 나뉘어서 정쟁을 통한 국력 소모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한창 우리는 일본 수상 아베의 수출 제한 사태로 또다른 반일 운동의 마당을 키워가고 있지 않습니까?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이 또 우리 역사가 이런 수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저는 반일 가지고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극일을 해야되요. 일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극복해야 합니다. 일본을 넘어서는 기술력, 일본을 넘어서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일본을 넘어서는 문화를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우리 안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과거에 일본의 소니,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던 소니를 우리의 삼성이나 엘지가 따라잡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습니까? 따라잡았잖아요. 시장의 판세를 우리가 장악하는 그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잖아요. 우리의 젊은이들이 전세계의 문화 속에, 소위 BTS 같은 아이돌의 문화가 전세계를 석권하고 심지어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그 매력과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역사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한국 기독교는 이미 일본 기독교인들에게 흠모의 대상입니다.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해서 그 선교의 열정과 비전을 일본교회에게 지금 나누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학대할 필요가 없어요.

자, 그렇다면 해방 1세대는 이제 과거의 어둠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고 회개하고, 하지만 겸손히 새로운 민족의 화합과 그리고 다음세대가 일어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일에 우리의 더 커다란 열정과 에너지가 헌신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게 필요한 거에요.

자, 이 큰 폭풍이 주는 중요한 레슨 두 번째, 그 레슨은 여호와 하나님 경외가 회복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경외 사상이 회복돼야 합니다. 자 요나 사건의 긍정적 영향은 본문 16절의 증언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재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요나 1:16)

자, 그 사람들이 누구에요? 사공들이죠. 배의 선원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단 말이죠. 자, 요나서 1장 5절에서 각각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의 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우상 숭배자들이에요. 그들은 우상 숭배자. 그들이 늦게나마 요나가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깨어납니다. 그리고 참되고 살아계신 요나의 하나님,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입니다.

자, 본문의 14절에 이제 이들이 기도를 해요. 하나님 안 믿었던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누구한테 기도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해요. 자기 우상에게 자기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요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리가 여호화께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요나 1:14)

자, 무리가 누구한테 기도했다? 여호와께. 우상 숭배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경건한 신앙의 전염성입니다. 경건한 신앙은 반드시 전염이라는 그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요나가 진지하게 회개하고 깨어났더니 이들이 요나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 소위 일제강점기 시대 교회는 굉장히 작았습니다. 크리스챤의 숫자도 아주 소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크리스챤들은 지금 우리 시대 크리스챤들보다 훨씬 진지했단 말이죠. 우리는 진지하게 회개했고 진지하게 기도했고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걸 보고 애국지사들이 민족의 엘리트들이 교회로 교회로 몰려들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래서 적어도 일제강점기에 교회는 민족의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고 민족의 소망의 등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럴까요? 지금 어때요? 안 믿는 사람들의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떨까요? 오늘.

(생략)

결국 해답은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면 사람들은 그 교회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요나 사건이 가르치는 중요한 레슨이란 말이죠.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이 땅의 빛으로 이 땅의 소금으로 산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 교회가 경배하는 하나님 그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들이 우리 사회 속에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회복이 일어나야 해요. 하나님을 다시 경외하는 회복운동이 이 땅에 일어날 수 있도록 여러분 기도하십시다.

일제 시대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교회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단 말이죠. 이런 하나님 경외 사상 또 교회가 존종받는 놀라운 회복이 다시 한 번 이 땅에 일어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나가 경험했던 큰 폭풍, 이 퐁풍우의 레슨, 그 세 번째 레슨은 새 시대의 모태를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가 바다에 던지웠다, 그리고 끝나지 않았어요. 요나가 책임지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의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1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요나 1:17)

참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아마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에요. 실제로 저는 많은 분들에게 이 질문을 받았어요. 어떻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을 생존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느냐고, 목사님, 그런 얘기를 정말 믿으시냐고. 제가 이런 대답을 했어요. 저는 성경에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요나가 물고기를 삼켰다,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해도 저는 믿을 거에요. 요나가 물고기를 삼키고 그 물고기가 요나의 뱃속에서 사흘을 살았다고 쓰여 있어도 저는 믿을 거에요. 당신과 나의 차이는 딱 한 가지에요. 뭐냐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느냐 못느냐는 것. 우리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믿는다면 믿지 못할 것이 어디 있어요? 그걸 믿지 못하면 아무 것도 믿지 못하는 거에요.

거기에는 더 중요한 레슨이 있습니다. 성경의 기적은 단순히 기적을 위한 기적이 아니에요. 그 기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주는 레슨이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그럽니다. 사인, 사인 마리클. 그것이 주는 어떤 교훈이 있단 말이죠.

우리가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어느날 예수님 앞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네가 정말 메시아냐? 그럼 네가 메시아라면 구세주라면 그 표적이 뭐냐?"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 마태복음 16장 4절이에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마태복음 16:4)

요나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 다시 말하면, 내가 메시아라는 놀라운 기적, 그 기적을 보여주기 위한 요나의 기적, 그것은 바로 나의 기적이기도 하다. 이게 뭘 가르키느냐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생존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이시고 무덤 속에 사흘을 계신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 그 분이 우리의 생명의 주님 구원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시죠? 이 놀라운 사건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적이 바로 요나의 사건이라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요나의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만에 살아나온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의 표적이 된 것이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새 시대가 열렸어요. 이제. 그리고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나의 사건은 위대한 부활의 표적이 된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일제강점기 기간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고난의 스올, 물고기 뱃속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시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 있어요. 무엇인 지 아세요? 교회에요. 사실은 우리 민족이 일본에 의해서 서서히 삼키워가면서 이 땅에 복음이 시작돼요. 그리고 교회가 탄생해요. 그리고 교회가 자라갑니다. 이 땅에 최초의 선교사의 타이틀을 갖고 오신 분들, 아펜젤러 어더우드. 그들이 저 제물포 항구에 선교사로 온 때가 1885년. 그리고 꼭 25년 후 1910년 한일합방이 이뤄져요. 나라를 잃어버린 거에요. 우리가. 국권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잃어버린 우리 민족이 바라볼 새로운 나라가 생겼어요. 그게 하나님 나라에요. 우리는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민족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과 함께 전해진 소위 기독교 문화, 복음의 문화는 우리가 추구할 이 민족이 추구할 새로운 문화의 전형, 모델이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면서 광해원 제중원이라는 최초의 서양병원이 시작됩니다. 현제의 세브란스. 병원 문화. 그리고 배재학당 이화학당이 시작되면서 신 학문의 터전과 함께 새로운 학문, 소위 새로운 학교가 이 땅에 심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처음으로 익힌 찬송가를 통해서 우리는 서양 노래를 부르고 서양 음악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음악 문화가 이 땅에서 시작됩니다. 성경 번역을 하고 이 번역과 함께 보급되기 시작한 한글을 통해서 일제시대 한글 교육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1895년에 최초의 서양 소설이 한글로 번역됩니다. 천로역정. 최초의 서양소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는 높은 문화 비전을 소유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생략)

우리는 김구 선생의 소원처럼, 남의 침략을 막을만한 안보에 철저하면서도 일찍이 과거에 강대국들이 실현하지 못했던 더 아름다운 나라 더 건강한 나라 나눔의 나라 이런 나라가 이 땅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기를 소원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땅에 젊은이들의 창의력을 북돋아 주고 그들의 글로벌 비전을 우리는 축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성경이 강조한 하나님 나라 문화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가치의 첫째 가치는 자유에요. 자유. 이 자유가 위축되면 절대로 안 돼요. 자유와 평화가 공존하는 나라. 정의와 기쁨이 함께 공존하는 나라, 그런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이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축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강대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서 고통받고 있는 이 나라가 오히려 일본을 섬기고 중국을 섬기고 러시아를 섬기고 그리고 미국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나라, 섬김의 나라, 새로운 문화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 이런 나라로 일어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으로 일제강점기 어둠의 역사를 통과하게 하신 이유, 그 물고기 뱃속에서 새로운 나라의 꿈을 꾸게 하신 이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이 땅에 실현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나라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소원해야 할 나라 김구 선생이 소원했던 나라 이 땅의 크리스챤들이 소원해야 할 나라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소원해야 할 나라 그 나라인줄로 믿습니다. 그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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