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용한 상업적 수단에 불과
켈트족 문화 영향, 가톨릭적 유래도
반신앙적 사고 서서히 의식화될 우려
신앙의 본질 훼손 문화, 단호히 배척
오는 10월 31일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기독교인들은 고민에 빠진다.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 유아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귀신과 마법이 유래인 놀이문화를 무작정 즐기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학교 등지에서 이뤄지는 ‘할로윈’ 행사에 무턱대고 빠지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할로윈’ 문화는 10월 말께인 가을철 놀이문화가 마땅치 않은 어린이 세대를 향한 강력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문화선교연구원(원장 백광훈 박사)에서는 이와 관련한 칼럼을 몇 차례 게재한 바 있다. 박세종 객원연구원은 지난 2012년 ‘할로윈 데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에서 이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다음 글은 할로윈 데이의 기원과 현상에 대해 논의한 연구원의 글
1. 기원
할로윈(Halloween)이라는 말은 Hallow라는 Holy(거룩한, 성스러운)라는 옛 영어이고, Eve(ning)이라는 말은 전야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할로윈이라는 말은 “Allhallows Eve(ning)”이라는 말, 즉 거룩한 전야라는 뜻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켈트족 문화의 영향이다.
슬라브, 게르만, 라틴족과 같이 유럽의 4대 민족의 한 민족으로 남아 있는 켈트족은 로마인에게 쫓기어 북유럽으로 쫓기어 올라가다 아일랜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켈트족은 주술사 드루이드 문화를 가졌고, 이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아더왕 이야기, 그리고 백설공주와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이 켈트족의 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켈트인들이 살고 있는 이 아일랜드가 알프스를 넘어선 중북부 유럽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성 패트릭에 의해 기독교가 영국으로 전해졌고,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이 켈트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켈트족 달력으로 그들에게 있어 신년은 11월 1일이고, 그 전날 밤인 10월 31일은 우리식으로는 섣달 그믐, 즉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을의 수확에 대하여 감사하고 축하하며 풍요로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 날 밤 모든 악령과 악마를 몰아내고 새해에는 행운과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을 올렸다. 이것이 바로 할로윈 축제의 기원이다.
다른 하나는 가톨릭적 유래이다.
이 날은 가톨릭에서 지칭된 모든 성자들의 날로서, 거룩한 이들을 위한 회상의 날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은 11월 1일 시행되는 가톨릭 교회 축제로 이미 받아들여져 있었다. 이날은 원래 5월 13일 이 성자들의 날로 기념하고 있었는데, 교황 그레고리 3세에 의해 11월로 옮겨졌고, 8세기경 로마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위한 예배를 드리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나아가 998년 클루니에 있는 수도사 St. Odilo에 의해 모든 성인들의 날로 정해져, 지금까지 지켜져 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 날은 purgartory(영혼이 정화되는 날)로 기념되기도 한다.
2. 한국 대중문화의 형태로 자리잡은 할로윈 축제의 의미와 반성
이 할로윈의 축제 형태 가운데 우리가 살펴볼 것은 바로 의식(ritus)이다. 호박, 오이를 도려내 등불을 만들고 짚과 말린 보리자루 등으로 허수아비와 동물들을 만들고, 으시시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악령과 귀신을 놀라게 해 퇴치하는 의식이다.
놀이동산과 공원, 그리고 백화점 등에서 매년 이맘때면 야심차게 할로윈 축제를 준비하여, 의미도 모른 채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함께 놀이마당으로 초대한다.
귀신과 유령, 그리고 마귀 같은 모습과 의상을 귀엽고 특이한 할로윈 축제 기간만이 가질 수 있다는 현란한 광고와 문구 때문에, 사람들에게 귀신과 유령을 퇴치나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친숙의 대상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이는 우선적으로 철저하게 숨겨진 대중문화를 이용한 상업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업적 수단 아래, 많은 대중문화는 단순히 축제의 일부이고 서양에서 유입된 건전한 전통 문화형식의 일부로 인식하기 쉽다.
무엇보다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대중문화를 그냥 무분별하게 방치할 경우, 기독교적 신앙사고에 반하는 사고로 서서히 의식화될 위험성도 있다. 이러한 할로윈 축제와 같은 행사를 단순히 대중문화적 요소로 넘어가게 만들어도 좋은가? 이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살필 수 있다.
하나는 귀신론이다. 성서는 귀신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다. 잘못 하면 귀신 복장을 하고 드라큐라나 귀신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이러한 것이 신앙인들에게 오히려 신앙적인 위협과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다만 물리치고 퇴치해야 할 상대요, 함께 하거나 즐길 수 있는 도구가 아닌 것이다.
다른 하나는 10월 31일이 종교개혁의 날이라는 점이다. 이는 개신교의 생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의 잘못된 구습과 전통에 대항해 마르틴 루터가 자기의 삶의 정점에서 목숨을 걸고 비단 비기독교적인 부분을 타파하고,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슬로건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날이다.
그런데 이 종교개혁의 날에 잘못된 문화축제가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문화와 의식은 단호하게 배척이나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함에도, 함께 어울려 즐기는 형태는 절제되고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개신교에서는 이 날을 종교개혁의 날로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독일 많은 교회들은 도리어 루터의 사탕(Luther’s Bonbon)을 만들어 나누며 즐기고 있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루터의 사탕을 함께 나누며 종교개혁의 의미를 가르치고 되새기게 만든다. 할로윈 축제로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날로 축제의 의미를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와 당위는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으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올곧은 성서적 문화관을 갖는 것이다. 문화는 삶의 자리이기에, 문화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형식은 곧 신앙과도 직결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며, 참 신앙의 회복을 다지는 날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비록 재해석되었다 해도 그 유래가 성서적이지 못한 할로윈(Halloween)의 즐거움을 따를 것인가? 우리도 독일의 ‘루터 사탕’ 같은 행사를 각 교회마다 만들어 보면 어떨까? 되새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