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과 함께 서울역을 청소하는
<서울역전 밀짚모자 친구들>을 해온지
벌서 몇 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아침도(10월 28일) 쌀쌀해진 기운 속에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 모였습니디.
6시 반이면 약 70명 중 80프로 정도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마이크를 잡고 찬양을 하는데 이전과 달리
무거운 마음이 아니라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나는 늘 그분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노숙인들이 스스로 서울역을 치우도록 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분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기쁘고 신이 났던 것은
그들이 바뀌기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바뀌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바뀌든 아니 바뀌든 상관 없이
결국은 하나님께서는 그분들을 사랑하고 계시지 않겠는가!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듯이!"
그분들이 바뀌든 아니 바뀌든
궁극적으로 판결은 내 몫이 아니라
주님의 몫이 아닌가!
더더욱 주께서는 그분들을 판단하시기 이전에
사랑하고 계시지 않겠는가!
주님의 십자가 지심은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내게 중요한 것은
그분들이 바뀌어야 하겠지만
그 전에 그분들에게로 얼마나 깊이
내가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더 깊이 그들에게로
내 마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일까?
결국 기도였습니다.
기도 중에 임하는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얼마 전, 나는 산마루예수공동체 산정에서
홀로 나뭇가지를 치고 종일 일을 하다가
지친 몸이지만 이루말할 수 없는 상쾌함으로
산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은은하지만 환한 빛이
뒤에서 내 앞을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내 그림자가 앞으로 비치면서
길이 환하여졌습니다.
너무도 황홀한 순간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검은 산 위에 달이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던 길을 돌아 다시 산중으로 향했습니다.
달빛과 고요함 속에
내 마음은 고독하고
산도 한 없이 깊은 고요 속에
숲도 돌도 바람도 단풍나무도 소나무들도
웃으며 내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며
하늘과 땅이 주의 축복 아래 있는가
내 마음은 감동 감화하였습니다.
나는 기쁨이 갈수록 충만하여
어둠이 내리고 인적이 끊겨 있는 산중을
걷고 또 걸으며 주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주여! 사랑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
주여! 주여!"
어둠 속에서 산은 아름다운 메아리로
화답하여 주었습니다.
큰 항아리골 골짜기 안엔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나는 겉옷을 집어 던지고
웅달샘처럼 맑게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거룩한 기쁨으로
걷고 걸으며 주를 찬양했습니다.
"나를 존재케 하신 주여 감사하나이다.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윗이 법궤를 옮기며
겉옷을 벗어던지고
기뻐하며 춤을 출 수밖에 없었겠구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서 변화하신 높은 산중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을 짓자고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프란치스코가 이렇기에
새들과 나무와
대화를 하며 기도하였겠구나!
이 밤도 기도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게 하신
주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거리에서 함께 청소를 하고 공동체로 내려와
가난 속에서 당신들이 가져갈 감자를 캐고
깊이 잠이든 그 모든 영혼들이
이 산골에서 나와 같은 은혜 입기를 기도하며
<산마루예수공동체, 큰항아리골에서, 이주연>
*오늘의 단상*
거룩하고 높은 곳을 향하여 치열하게 살되,
온유와 겸손을 잃지 마십시오.<산>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