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리울의 달 33] 제15장 푸르른 노송(3)
한민족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듯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는 한민족에게 큰 시련을 더해 주었다. 신사참배뿐만 아니라 일본의 4대 국경일에는 꼭 일장기를 달라고 강요했다.
그것은 치욕스런 일이었으나 그런 동시에 또한 참된 애국지사와 친일파 매국노를 가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인 고통을 못 견뎌내고 변절해 버렸다.
일본은 전국의 각 면에 주재소를 하나씩 설치해 신사참배와 일장기 달기를 제대로 실시하는지 감시했다.
그런데 유독 남궁억이 있는 홍천군 서면에는 모곡학교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도리소라는 데다 주재소를 하나 더 두었다. 하지만 모곡학교에서 신사참배를 하거나 일장기를 다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일본의 4대 국경일 중 으뜸으로 치는 천장절(天長節, 일왕의 생일)이었다.
도리소 주재소에 근무하는 우치다라는 일본인 관리가 모곡학교로 찾아왔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남궁억 교장에게 따졌다.
“천장절인데 어째서 기념식도 올리지 않고 일장기도 달지 않았소?”
“긴 말이 필요치 않은 일이오. 내가 조선 사람으로서 어찌 그런 짓을 하겠소? 내게 잘못이 있다면 사법권을 가진 당신이 잡아가면 될 것이오.”
남궁억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을 교무주임인 조용구 교사가 통역했다. 그러자 우치다는 길길이 뛰었다.
“지금 죽으려고 환장했나 보군, 이 곰같은 영감탱이가!”
“이곳은 신성한 교정이오. 난동 부리지 말고 어서 나를 잡아 가시오.”
남궁억은 차분하면서도 준엄하게 말했다. 그 어떤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디 두고 보자!”
우치다는 사납게 한 마디 내뱉곤 떠나 버렸다.
1933년은 보리울에 엄청난 폭풍이 불어닥친 해였다.
남궁억이 지은 노래 ‘무궁화 동산’은 그전부터 모곡학교 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또다시 소생하는 우리 이천만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 동산
얼어붙은 이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봄풀이나 무궁화처럼 되살아나리라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도리소 주재소의 순사인 정도일은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다가 슬그머니 다가가서 사탕을 주며 물었다.
“좋은 노래구나. 누가 그 좋은 노래를 가르쳐 주었니?”
“우리 학교 여선생님인 남궁숙경 선생님이요.”
아이들은 사탕을 빨며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음, 그렇구나. 잘 놀거라.”
정도일은 음흉스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사건 하나만 성공하면 승진하여 출세의 길을 달릴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튿날, 정도일 순사는 출근하지마자 일본인 상관에게 이 사실을 은밀히 알렸다.
“그 노래는 조센징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흠, 일단 본서에 보고해 두게. 흐흐, 잘 걸렸군 그래. 흐흐흐.”
“하이!”
홍천경찰서의 사복형사인 신현규는 그 사실을 보고받자 마치 사냥감의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추가로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했다.
며칠 후 신현규는 시조사라는 종교단체 출판부의 직원으로 가장하고서 모곡학교로 갔다. 단풍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이었다. 보리울은 온통 무궁화꽃 천지였다.
남궁억을 찾아간 신현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월간지인 시조 지의 기자인데, 이번에 선생님에 대한 기사를 싣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잡지 한 권을 내밀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서울에서 듣기로는 남궁 선생님께서 무궁화 사랑을 가르치며 애국교육을 하신다기에 큰 감명을 받고 출장을 왔습니다. 산간벽지에서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뭘요,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요.”
남궁억 교장은 담담히 말했다.
“진정으로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애국교육은 꼭 필요하지요. 일본놈들이 제 아무리 기세를 부려도 곧 망하리라고 봅니다.”
“그렇소. 악이 세력을 떨칠 때는 언제까지고 갈 것 같으나, 스스로의 죄악을 견디지 못하고 썩어 멸망의 구덩이에 떨어질 거요.”
“네. 다만 지금으로 봐서는 언제 그렇게 될지 쉽지 않아 보입니다만….”
신현규는 짐짓 능청을 떨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낙심해서는 아니되오. 머잖아 태평양이 가마솥에 물 끓듯 할 터인즉, 우리는 꼭 독립할 것이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신현규는 방문 기념으로 무궁화를 몇 그루 사겠다고 말했다. 남궁억은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무궁화 묘포로 안내하면서,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내력 등을 자세히 들려 주며 무궁화의 장점을 자랑했다.
“사꾸라는 활짝 피었다가 곧 지고 말지만, 우리 무궁화는 이름 그대로 영원 무궁히 피는 꽃 중의 꽃이라오. 두 나라의 운명도 그와 같지 않겠소. 하하하.”
남궁억은 통쾌히 웃고 있었지만, 일본의 앞잡이 신현규는 그의 민족주의 사상을 탐문하며 음흉스런 미소를 몰래 짓고 있었다.
며칠 후 신현규는 홍천경찰서 형사와 순사들을 이끌고 다시 남궁억 앞에 나타났다.
“나는 홍천경찰서 고등계 형사 신현규요. 당신을 반역죄로 체포하겠소.”
며칠 전엔 토끼 같던 사람이 이젠 사나운 이리처럼 변해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반역죄란 말이오?”
남궁억은 의연히 되물었다.
“총독부에서 시키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짓은 모두 하고 있는 당신이 반역자가 아니면 뭐란 말요.”
신현규는 씹어뱉듯 독하게 쏘아붙였다.
“으음, 여우보다 간사한….”
남궁억은 말을 맺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바로 며칠 전에 자기 스스로 들려 준 말을 지금 부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체포해!”
신현규의 명령에 따라 순사들이 달려들어 남궁억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남궁억의 가택을 샅샅이 수색하여 증거물을 압수했다. 그것은 무궁화 선전물, ‘조선 이야기’, 노래모음, 일기장, 편지, 태극 무늬가 박힌 큰 거울과 수저 등이었다.
오래 전 일진회의 중상모략으로 경무청에 끌려가 잔인한 고문을 받고 병을 얻어 오랜 고생 끝에 겨우 회복되었는데 또 다시 같은 민족의 마수에 걸려 체포되다니 생각할수록 울분이 솟았다.
남궁억 교장 외에 남궁숙경 등 교사들과 보리울 마을 청년들까지 모두 30여 명이 줄줄이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1백 리 길을 걸어서 홍천경찰서로 끌려갔다. 이 같은 검거열풍으로 보리울 마을은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여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