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리울의 달 36] 에필로그: 나비의 꿈
어느 날 새벽 남궁억은 뭉이의 부축을 받으며 유리봉으로 올랐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소나무들이 가벼이 흔들리며 청아한 솔향을 뿌렸다. 그 중엔 남궁억이 오래 전에 심었던 어린 묘목이 우람하게 자라나 하늘을 향해 푸른 잎을 흔들고 있기도 했다.
남궁억은 유리봉 꼭대기의 흰 바위 앞으로 갔다. 바위 옆에는 까마득히 먼 옛날 어느 이름 모를 선조가 심었는지도 모를 늙은 솔이 구부정한 허리로 서 있었다. 몸은 비록 늙어 비틀어졌을지언정 가지에 달린 솔잎은 그 고상한 정신의 표현인 양 푸르렀다.
그는 늙은 소나무를 가만히 쳐다보며 굽은 등줄기를 천천히 어루만지고 나서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모았다.
“주여, 핍박받는 우리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그들의 영혼을 저 푸른 나무들처럼 쑥쑥 자라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식민지의 땅에서 받은 울분을 이겨내고, 뿌리는 땅속에 굳건하되 하늘을 향해 푸른 잎을 흔들게 하소서.
주여, 고통받는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 한바다에 이르게 보살피옵소서. 그리하여 악의 나라로부터 받은 굴욕을 스스로 벗어나 그 정신이 푸른 바다처럼 파도치게 하소서.
그리고 주여, 한 많은 우리 조선 백성들의 마음이 태양과 샛별처럼 스스로 빛나게 도우소서. 수많은 원한과 억울함을 용광로처럼 활활 태워 밝은 한마음으로 승화시켜서 온 인류의 어둠을 밝히게 하소서.”
남궁억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동녘 하늘에 얼굴을 방금 씻은 듯 맑고 밝은 해님이 어둠을 걷어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스름에 묻혔던 산이 점점 초록빛을 되찾아갔다.
푸른 산을 이룬 소나무와 참나무, 자작나무, 칡나무, 옻나무 등 온갖 나무와 풀이 저마다의 힘으로 서서 태양이 빛나는 하늘을 향해 자라 오르고 있었다.
푸른 노트를 다 읽은 나는 표지를 덮는다.
그새 잉크가 많이 번지고 앞뒤 장의 글자들이 서로 얽혀 마지막엔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노트 속엔 필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이름 모를 그 사람은 왜 이런 글을 썼다가 세검정 아래의 사천계곡(沙川溪谷) 물속에다 던져 버렸을까? 단순히 술에 취해 객기를 부린 것 같지는 않았다.
잘 모르긴 해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불에 태워 버리기는 할지언정 물에 던져 시체처럼 둥둥 떠내려가게 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고의적으로 개굴창에 처던져 행인들의 한 가닥 탄식이나마 자아내고자 한 것일까? 세검정 아래 계곡 물은 예전엔 한없이 맑았을지 몰라도, 요즘은 닭이나 쥐의 시체가 떠도는 썩은 물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본래 산에서 발원하여 세속으로 내려오는 계곡 물은 현실 세상의 청탁을 알려 주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혹시 그 사람은 점점 추악하고 부패해져 가는 이 세상의 현실에 절망하여 일부러 자신의 피땀으로 쓴 작품을 썩은 개굴창에 던져 넣고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어느 깊은 산속으로 떠나가 버렸는지도 몰랐다.
대학 시절에 ‘한국 교육의 역사와 철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는 나는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 그토록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무궁화를 사랑하여 대한민국의 나라꽃이 되도록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동안 그분의 높은 정신은 다 잊어먹고, 보리울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39년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고작 컴퓨터처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청렴결백한 성품을 가진 분이 만약 요즘 세상에 돌아온다면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잠시 상상을 해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한서 선생은 살아 생전에 무궁화가 아름답게 핀 삼천리 강산을 꿈꾸었지만, 아마도 겉으로만 화려한 게 아니라, 속으로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 모든 국민이 행복한 그런 나라를 소망했으리라 싶었다.
푸른 노트의 주인은 아마 한서 선생이 지금 이 세상에 온다면 너무 혼탁해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는지도 몰랐다.
식민지 시대엔 적이 누군지 분명했으나 지금은 오리무중 속에서 누가 적인지 친구인지 분간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 혼자 데모라도 하듯이 자신의 노트를 던져 버린 것일까?
나는 푸른 잉크로 얼룩진 그 노트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그냥 정자 위의 탁자에 놓아두기로 했다. 내가 갖고 갈 필요는 없었다. 지나가던 다른 어떤 사람이 잠시 쉬면서 읽어 보고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다시 정처 없이 걷는다.
길섶의 매화나무 가지에 달린 희고 붉은 꽃송이가 눈을 인 채 피어나고 있다. 꽃샘바람이 불자 눈가루와 꽃잎이 분분히 떨어져 날린다. 좀 큰 흰 꽃잎이 비스듬히 떨어져 내린다.
그러나 땅에 닿기 전에 그것은 다시 위로 천천히 날아 올라간다. 그건 꽃잎이 아니라 나비이다.
나비는 힘겹게 날갯짓을 해 꽃잎에 겨우 달라붙자 파르르 떨어댄다. 조금씩 기어오르려 애쓰지만 기진맥진해 곧 떨어질 듯하다. 그래도 나비는 큰 눈으로 하늘을 보며 날개를 간신히 파닥거리면서 가느다란 앞다리에 힘을 모아 꽃잎 위로 오른다.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