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차원의 비판
과학 권위에 특권, 자신의 신앙보다 높이 올려
발생에서의 증거, 지적 설계자 필요성 드러내
과학주의와 연관된 신조들, 추측에 의한 주장
국내 소장 학자들이 창조과학에 대해 과학이 아닌 ‘문화사회학·지식사회학’ 관점에서 비판한 포럼이 28일 개최된 가운데, 그들이 신봉하는 ‘유신진화론’에 대해 과학적·철학적·신학적으로 비판한 작품도 있다.
전 2권의 <유신진화론 비판>은 “기독교 안에서 현대 과학이 차지하는 위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에 대한 책”으로, J. P. 모어랜드, 웨인 그루뎀, 스티븐 마이어, 크리스토퍼 쇼, 앤 게이저, 조나단 웰스 등 권위 있는 과학자와 신학자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28일 포럼에서 창조과학에 대해 “과학이론이 아닌 신학이론”이라고 비판했지만, 이 책은 1권(1부) 전체를 유신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에 할애하고 있다. 2권(2-3부)이 철학적·성경적·신학적 비판이다.
서문에서 스티브 풀러 교수(영국 워릭대학교 사회학과 석좌)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문 앞에 놓인 부담은, 그 문 앞이 바로 그들이 과학의 집으로 들어갈 때 그들의 종교적 책무를 내려놓는 곳이라는 점”이라며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현대 과학의 권위에 특권을 주어, 그들 자신이 공언한 신앙보다 높이 두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과학적·철학적 서론’에서 美 베스트셀러 <다윈의 의문> 저자인 스티븐 마이어 교수(Stephen Meyer, 시애틀 디스커버리연구소)는 저자들이 비판할 ‘유신진화론’의 정의에 대해 “진화를 단순히 ‘시간에 따른 변화’로 정의한 것 말고, 새로운 생물 형태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메커니즘의 충분함을 주장하는 유신진화론 버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제했다.
마이어 교수는 “유신진화론자가 자연선택/돌연변이 메커니즘을 방향성 없는 과정으로 보는 통상적인 신다윈주의 견해를 지지하고, 동시에 하나님이 생물의 새로운 형태의 기원에 대해 인과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방향성 없는 과정을 어떻게든 유도하시거나 인도하셨다는 말”이라며 “논리적으로 어떤 지적 존재도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방향성 없는 과정을 인도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그것을 인도하시자마자, ‘방향성 없는 과정’은 더 이상 방향성 없는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어떤 유신진화론 지지자는 자연선택/돌연변이 메커니즘을 방향성 있는 과정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견해는 결정적으로 진화 메커니즘에 대한 비다윈주의적 개념이고, 생물의 역사 중에 기능이 완성되는 시점까지 하나님이 돌연변이들을 적극 유도하심으로써 생물들을 지적으로 설계하셨다는 견해에 해당한다”며 “그럼에도 유신진화론자들은 지적 설계 이론을 부정하므로, 은연중에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학적 비판의 전반부 9명의 기고자들이 ‘신다윈주의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 신다윈주의 진화론이란 ①시간에 따른 소규모·소진화적 변화 ②생물의 역사를 나타내는 다윈의 생명의 나무 그림에서 보이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 ③지구상 생물들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만든 것으로 주장된 무작위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과정의 창조적 능력 등을 모두 지지하는 입장이다.
1장에서는 ‘신앙인이 생물에 대한 다윈의 설명을 거부해야 하는 세 가지 좋은 이유’를 전한다. 먼저 다윈주의를 수용하면, 모든 사람이 생물 세계의 경이로움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버려야 한다. 둘째로, 생물의 우연적 발생을 주장하는 모든 설명은, 그것이 다윈주의든 아니든 명백히 타당성이 떨어진다. 셋째로, 전통적 신앙의 틀 안에서도 다윈의 이론을 수용할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혼동된 개념이다.
더글러스 액스 교수(Douglas Axe)는 “생물 형태의 기원에 대한 다윈주의적 설명이 믿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 사람들이 특별한 과학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적 설계에 대한 핵심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다윈주의 학자들의 과학적 권위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것이며, 신앙의 변증에 대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티 레이졸라 교수(Matti Leisola)는 3장 ‘진화: 메커니즘이 없는 이야기’에서 DNA와 단백질에 대한 실험을 통해 진화의 핵심인 무작위 돌연변이 과정은 자연선택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지극히 제한된 변화만을 초래함을 보여준다. 4장과 5장에서는 분자 기계의 일종인 ‘나노자동차’와 진화 과정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까지 동원해 ‘최초 생물과 그 설계자’의 존재를 드러낸다.
조나단 웰스 교수(Jonathan Wells)는 7장 ‘DNA 돌연변이가 신다윈주의에 필요한 것을 달성할 수 없는 이유’에서 새로운 생물을 만들기 위해, 즉 생물의 ‘진화’를 위해선 새로운 유전정보뿐 아니라 DNA에 저장되지 않은 ‘후성유전적’ 정보가 필요함을 설명, 이것만으로도 신다윈주의 메커니즘이 적절하지 않음이 입증된다고 주장한다.
스티븐 마이어와 앤 게이저 교수(Ann Gauger) 등 3인은 8장 ‘유신진화론과 확장된 진화 종합 이론: 그것은 작동할까?’에서 지난 20년간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이 신다윈주의 메커니즘으로 생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고 ‘확장된 진화 종합 이론’을 개발했으나, 이것 역시 생물의 형태와 정보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했음을 논증한다.
시나 타일러 교수(Sheena Tyler)는 1부 마지막 9장 ‘발생학의 증거가 진화론에 도전하다’에서 배아부터 성체까지, 동물의 발생에 필요한 정교한 조직화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이것이 무작위 돌연변이 같은 서투른 활동이나 다른 ‘방향성 없는 과정들’의 결과로 생길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이 설계된 특징을 드러낸다고 밝히고 있다.
타일러 교수는 “발생 중 세포와 분자와 힘들은 꼭 맞는 시간과 장소에서 서로 만나는데, 이는 발생의 진행이 이런 ‘만남’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며 “유전자들과 골격 형성 세포들이 장차 접합될 자리에 정확히 놓이고, 특정 운동 신경 세포가 올바른 목표 근육과 연결되고, 심장 발생 중 전사 인자들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면서 순환계의 질서 정연한 발생과 동시에 일어나며, 장차 사지 싹이 자랄 정확한 위치에 전류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또 “이를 지적 행위자에 의존하지 않고, 다윈식 우연의 과정이나,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에 따른 생물의 자연발생적 자기 조립으로 조화시키는 것은 점점 더 지키기 힘든 주장이 되고 있다”며 “진화론은 우연한 과정들과 불완전한 조립 부품들의 서투른 조립을 예측하지만, 발생에서 나온 증거는 지적 설계자의 필요성을 나타낸다. 이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각각 뚜렷이 구별되는 유형의 몸 형태가 미묘하게 제작되도록 조정한 창조주를 가리킨다”고 덧붙였다.
1부 후반부에서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종들의 조상이 같다는) ‘보편적 공통 계보를 반박하고, 인간 고유의 기원을 지지하는 증거’에 대해 하나씩 살펴본다. 특히 13-16장에서는 침팬지와 인간이 공통 조상을 가졌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17장 ‘순응을 강요하는 것은 과학의 편향을 초래할 뿐이다’에서는 성경무오성을 비판하던 과학자들이 과학무오성을 주장하면서 ‘과학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를 숭배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창조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유신진화론이 일종의 신학적 이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과학자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걸어가는 길 가운데, 기성 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거나 눈밖에 나는 일을 하기 힘들고, 이는 외부 연구비 수주를 통한 연구 자금 조달이나 논문 심사에서의 동료 전문가 평가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과학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적 존재가 아니다. …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그 자체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주요 질문들이 오늘도 여전히 우리 앞에 제시돼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공개 토론은 물론, 실제 학교 교과서들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과학주의와 연관된 많은 근본적인 신조들이 믿음(추측)에 의해 주장되거나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과학계에서 ‘진화 vs 창조’ 논쟁은 (진화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봤듯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신조들은 ‘확고하고 검증 가능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마치 계시나 신앙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28일 포럼에서처럼, 유신진화론자들, 아니 그들식 표현으로 ‘진화적 창조’ 주창자들은 이를 “과학지식에 대한 상대화 전략”으로 호도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던져지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충고는, 비록 성경의 인지적 기반을 포기하는 것이 되더라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기존 과학계를 신뢰하고 그에 순응하고 적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나름 성공한 이유가 인간성에 대한 ‘하나님의 형상’과 ‘원죄’의 회복에서 기인했음을 감안한다면, 유신론적 진화론이 과학과 기독교의 메시지 둘 다에 대한 전면적 배신이 아닌지 묻는 것은 합리적 질문이라 할 수 있다(스티브 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