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만 보면,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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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설교연구원 인문학 서평] ‘이방인’에서 이웃으로

이방인
알베르 까뮈 | 김화영 역 | 민음사 | 280쪽 | 9,000원

누구에게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그 ‘두 문장’까지 읽어야 진실 보여
과부의 두 렙돈, 상황만 봐선 안 돼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첫 문장부터 강렬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까. 모르겠다.”

첫 문장을 보고 먼저 든 생각. ‘주인공에게 뭔가 문제가 있나? 어떻게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 어제인지 오늘인지, 그것을 모를 수 있을까? 술이라도 많이 마셨나?’

나의 판단은 성급했다. 이어지는 두 문장도 읽었어야 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까.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 예정. 삼가 애도함.’”

양로원으로부터 받은 짧은 전보. 전보만으로는 엄마의 죽음이 어제인지 오늘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두 문장’을 더 읽을 인내심도 없이, 주인공을 ‘비정상’이라고 판단하고 평가했다. 누구나 ‘두 문장’이라는 사정이 있다.

어느 날 회사에 지각한 직원. 밤새 고열로 아팠던, 3살짜리 아이를 먼저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병원에 들렀다 출근하느라 지각했다. 이런 사정이 그 직원에게는 ‘두 문장’이다.

평소와 다르게 힘이 없고 게을러 보이는 청년. 알고 보니 사랑하는 할머니가 편찮으시다. 병원에서는 치료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마음이 아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상황만 보면 게으름이다. 사정을 보니 슬픔이다. 누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두 문장’이 있을 수 있다.

‘두 문장’까지 볼 수 있을 때, 진실이 보인다.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 사람들은 두 렙돈 적은 돈이라는 상황을 보았다. 그때 예수님은 그녀의 사정을 보셨다.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상황을 볼 때는 ‘두 렙돈’이라는 사실만 보였지만, 사정을 알고 나니 ‘전부’라는 진실이 보인다. ‘두 문장’까지 볼 수 있을 때 진실이 보인다.

‘평범한 청년의 우발적 사고’라는 진실,
‘악랄한 범죄자 계획된 살인’변하는 과정
주인공 뫼르소 향한 칼에 반사된 햇빛…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은 ‘평범한 청년의 우발적 사고’라는 진실이 ‘악랄한 범죄자의 계획된 살인’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설은 주인공 뫼르소가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온 뫼르소. 이미 어머니와 떨어져 있은 지 오래 되어, 슬픔의 감정이 격렬하지 않다.

그는 담담히 장례를 치르고 왔다. 비록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매우 지쳐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12시간이나 자야 했다. 이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항구에 수영을 하러 간다.

거기서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만난다. 이전부터 이성으로 감정이 있었던 둘은 함께 수영을 하고, 영화를 본다. 마리가 ‘페르낭델’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고, 함께 본다. (페르낭델은 프랑스의 대표적 희극배우다. 코미디 영화를 보았다는 뜻이다.) 그 후 잠자리를 가진다.

이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늙은 개와 함께 다니는 살라마노 영감.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은 레몽 생테스. 뫼르소는 살라마노 영감이 잃어버린 개를 찾기 위해 도와준다. 사람들이 무시하는 레몽의 말도 들어준다.

레몽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래서 종종 주인공 집에 찾아온다. 한 날은 레몽이 변심한 애인 문제로 주인공을 찾아왔다.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다시 만나자는 내용을 부탁한 것이 아니다. 자신과 헤어진 것을 후회할 만한 내용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뫼르소는 별 어려움 없이 레몽의 부탁을 들어주고, 이때부터 레몽은 주인공을 더 좋아하게 된다.

며칠 후 레몽의 요청으로 함께 해변으로 놀러간다. 그곳에서 레몽의 옛 애인 오빠와 그 친구들을 만난다. 싸움이 벌어지고, 화가 난 레몽은 그들을 총으로 쏘려 한다. 옆에 있던 뫼르소는 레몽을 진정시킨다. 불상사도 막기 위해, 총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한다.

사건은 일단락되고, 뫼르소는 혼자 해변을 산책한다. 그 때 싸웠던 아랍인 한 명과 마주친다. 아랍인은 또 싸움을 걸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뫼르소를 향해 칼을 꺼낸다.

뫼르소를 향한 칼. 그 칼에 반사된 햇빛이 뫼르소의 눈에 비친다. 순간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 당황한 뫼르소. 레몽에게 넘겨받았던 총의 방아쇠를 당겨 버린다.

소설을 보는 독자들은 이 사건이 단순 사고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재판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뫼르소를 기소한 검사의 주장은 이렇다.

뫼르소는 나이든 노모를 직접 모시지 않고 양로원에 넘겨 버렸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장례식을 마친 다음날 애인을 만나 코미디 영화를 보고 섹스를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 날,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이 사람은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다’

‘또한 옛 애인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 있는 편지를 써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해변에서 싸움이 일어난 다음에도,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아랍인을 쫓아가 총으로 쏴버렸다.’

검사에게 뫼르소는 냉혈한이고, 잔인한 사람이며, 언제든 살인을 할 수 있는 ‘악랄한 범죄자’였다. 결국 뫼르소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검사는 주인공 뫼르소의 상황에만 집중
뫼르소도 유리한 기회마다 솔직히 진술
거짓말 거부하다, 겉모습 의해 판단받아

똑같은 사건을 대하면서, 검사는 뫼르소의 상황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평범한 청년 뫼르소는 ‘악랄한 범죄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독자는 뫼르소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 그러니 검사가 무슨 주장을 하든 독자에게 뫼르소는 ‘평범한 젊은이’이다. 이 사건도 단순 ‘우발적 사고’일 뿐이다.

사실 중간 중간 뫼르소는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유리한 진술’을 하기보다 ‘솔직한 진술’을 한다.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것이 감정을 잘 다스렸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하라고 말한다. 뫼르소는 ‘아니요, 그렇게 말한다면 거짓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총을 쏜 것을 후회하는지 묻는 판사의 질문에도 정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총을 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를 후회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알베르 까뮈는 <이방인>의 서문에서 뫼르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뫼르소는 거짓말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바를 과장하기를 거부한다.”

결국 뫼르소의 진짜 속내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판단한다.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까뮈는 이러한 뫼르소의 모습을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관례에 따라 적당히 거짓말을 해도 되는데, 굳이 거짓말을 피하려는 모습. 그래서 사람들에게 뫼르소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소설 속에서 뫼르소를 ‘이방인’ 취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다.

애인 마리.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몽과 살라마노 영감.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뫼르소가 다 말하지 않은 ‘사정’을 보고 판단했다.

그러니 그들에게 뫼르소는 ‘이방인’도 아니고 악랄한 ‘범죄자’도 아니었다. ‘평범한 청년’이고 ‘평범한 이웃’이다.

고넬료, 이방인이나 하나님 경외해
상황은 눈 앞에, 사정은 마음 속에
기다려 줘야 사실에 가려진 진실이

고넬료.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이방인’이고 로마 군인일 뿐이다. 그런데 그의 사정을 들여다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사정을 들여다볼 때, 진실이 보인다.

상황은 눈 앞에 보이지만, 사정은 마음 속에 숨겨져 있을 때가 많다. ‘두 문장’ 더 들어 보아야 사정이 들린다. ‘두 문장’ 더 기다려 주어야 ‘사정’이 보인다. 그제야 사실에 가려진 진실이 보인다.

잘 모르는 ‘이방인’도 ‘두 문장’ 기다리고 ‘두 문장’ 다가서면, ‘사정’이 보인다. ‘이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황만 보고 쉽게 판단하면 이웃이 사라지고 이방인만 남는다. ‘소중한 이웃’도 ‘서먹한 이방인’이 될 뿐이다.

안식일에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안식일’이라는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치료가 필요한 연약함, 그 ‘사정’을 보셨다.

상황만 보면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한다. 사정까지 보게 되면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사랑하게 된다. 그제야 ‘이방인’도 ‘이웃’이 된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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