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역대하 7장 14절
기독교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은 사죄의 은총입니다. 이 사죄의 은총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내가 하나님을 만났던 것은 잘나고 영광스러웠던 때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었을 때입니다.
예수 그 이름 속에, 주께서 어떻게 나를 만나 주셨는지 말씀하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 죄까지 찾아서 이 땅에 나를 만나주신 주님.
1965년 7월 24일, “내가 네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했다. 너는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초청 앞에 마음을 열었던 그 시간을 지금도 어제같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모든 것은 다 잊었어도 그 밤은 잊을 수 없습니다.
사죄의 은총 속에, 주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끝나지 않고, 쓸모없고 다른 사람에게 도무지 용납되지 못했던 내가, 나 자신도 나를 용납하지 못할 때 그 분이 나를 용납해 주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놀라운 은혜 누리게 됐습니다.
이 사죄의 은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삶을 살아갑니다. 내 속에 아담의 DNA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말에, 그 유혹 앞에서 무너졌던 그 유혹은 오늘도 목회생활하는 제게 계속 매일 나를 찾아와 유혹합니다. 그리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제 은사이신 박윤선 목사님이 80 되시던 생일을 제자들이 축하하는데 한 마디 해 달라고 그렇게 말씀했더니 일어나셔서 말씀을 이렇게 시작합디다. “80년 묵은 이 흉악한 죄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겸손하신 분이 있는가 놀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그 나이가 되어보니, 그 분이 겸손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죄의 유혹 앞에 순간 순간 넘어지는 나,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하는 나의 가증된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요즘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 하루 일과를 모두 내어놓고 잘못들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만 이처럼 잘하지 못했는가 했더니, 사실 기독교의 성인들은 잘나고 똑똑하고 멋진 거룩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죄악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그러면 놀랍게 내가 죄를 짓지 않았을 때보다, 하나님은 더 가깝게 만나주십니다.
탕자가 집을 나가서 못된 일 하고 과거에 똑독하고 멋지게 잘 나가고 아버지와 기쁨의 노래를 같이 불렀던 때보다, 더 뜨거운 깊은 사랑으로 만났던 때는 스스로 죽게 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떠났던 멀리 멀리에서 돌이켜 아버지 앞에 돌아왔을 때입니다.
세월이 그 모든 멋진 옷을 남루하게 만들었고, 그가 살았던 죄악이 그 얼굴에 덕지덕지 끼어서 몰골마저 변해 버렸습니다. 그 유명한 부잣집 아들일까? 동네로 돌아오는데, 아무도 그의 옷에서 그의 몰골에서 그 집 아들의 형체를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 날도 멀리 동구 밖을 내다보는 아버지. 다른 사람은 지나가는데 아버지의 사랑의 눈은 그 남루한 옷을 뚫고, 그 변해버린 얼굴을 넘어서서, 벌떡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그 힘찬 노인의 일어섬이 사랑이었습니다. 달려갑니다. 달려가는 그 달려감이 사랑이었습니다. 좇아가서 목을 껴안습니다. 껴안는 그 손이 사랑입니다. 변해서 도무지 다른 사람은 피할 그 얼굴에 입을 맞춥니다. 온통 사랑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외칩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내가 이로써 즐거워하노라. 탕자는 이전 죄를 짓지 않고 멋지게 살았던 때보다, 가장 가깝게 하나님 아버지를 만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들이여, 우리가 지금 목회합니다. 목회하면서, 우리는 보이게 보이지 않게 계속 죄를 범합니다. 죄를 떠나려고 하면 할수록, 죄의 깊이에 회오리바람에 휘말립니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또 넘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어제도 사죄의 기도를 드렸는데, 아침에도 또 드려야 합니다. 창피해서 거듭 기도한다고 그 말 하기도 싫습니다. 그러다가도 “네 죄를 자백하면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사죄의 은총을 잃어버린 때가 언제부터입니까. 설교들을 들어보면, 사죄의 은총이 강조되지 않습니다. 주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시고 믿기만 하라는데, 왜 그리 못 믿는가. 믿기만 하라는데, 받기만 하라는데. 사죄의 은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그 품에 뛰어드는 놀라운 영광을 경험합니다.
목회자들이 사죄의 은총의 깊이를 알 때, 심령은 변화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 사랑의 현장이 됩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그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자식을 키워보면,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왜 이 말에 감동을 잃어버렸습니까.
사죄의 은총 없이는, 하나님의 아들 주심을 내 것으로 실제 소유하지 못합니다. 이 사죄의 은총은 개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국가와 민족에게도 사죄의 은총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서 기도할 적에,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 이런 놀라운 모습이 사실 1885년 이 땅에 복음이 선교사로 말미암아 시작될 때부터 계속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복음을 들었습니다. 교회가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내가 아간이다’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에 나는 간음했다고 외치기 시작한 사람들, 나는 도적이었다고 외쳤던 사람들, 나는 이러이러한 더러운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 회개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회개의 고백이 끊어지지 않고 며칠이고 계속됐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 땅에 성령을 기름 붓듯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수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성령이 감동했다는, 거대한 평양 대부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흥은 우리에게 성공과 승리를 안겨다 준 것이 아닙니다. 1910년 일제에게 식민지로 이 땅이 귀속되어, 식민지의 고통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1919년 한국 민족 대표들이 고종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의논하는데, 분노에 찬 민족 지도자들이 무력 항쟁 하자고 외쳤습니다. 이때 월남 이상재 선생은 “아니다. 이 싸움은 진리로 싸워야 하는 싸움이다. 진리의 싸움이 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진리의 싸움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상재 선생이 산상수훈을 읽어주면서 ‘비폭력 무저항’을 말했습니다. 2,000년 전 주께서 광야에서 주님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선포했던 ‘비폭력 무저항’입니다. 그것이 부분적으로 수도원에서 계속 잔존했지만, 시민운동으로 역사에 드러난 예는 3.1운동이었다고 말합니다.
일본 친구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작년 3.1운동 100주년 때 그들이 처음으로 우리 독립선언서를 읽고, “아니 그 시대에 이렇게 격조 높은 글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놀랐습니다. 그것이 다른 데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했던,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그것이 터져나올 적에, 죽창 들고 나가자고 외쳐댔던 동학 대표가 수긍하고 함께 ‘비폭력 무저항’으로 이리 밟히고 저리 죽는 것 같은 수난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 수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우리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마음 속에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민족 지도자들도 한 세기가 지나서 35년쯤 되니, ‘이 나라는 다시 독립할 여지가 없다’고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춘원 이광수와 최남선, 그리고 제가 남서울교회 개척했을 적에 나왔던 주요한 선생도 ‘해방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꿇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기철, 최권능, 길선주, 손양원 목사님. 그 분들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 사랑하신다.” 모든 사람이 도무지 가능성 없다고 생각할 적에, 사랑의 하나님을 붙잡던 그들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독립된다.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신다.”
그리고 저들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많은 분들이 주기철 목사님을 필두로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지만, 그 사랑 때문에, 사죄의 은총에, 그 축복 때문에 그 고통스러운 세월을 넉넉히 이기고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 중에 약관의 청년 손양원이 대일본제국 법정에서 일본을 준엄하게,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면서 꾸중한 사자후는 지금도 기록에 남아서 읽을 때마다 우리 마음에 감동을 이끕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실망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절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랑을 깨달은 하나님 백성들, 회개를 통해 가장 가깝게 만난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기어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뭔지’ 몰랐습니다. 어떤 분은 일본 천황의 항복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망했다’고 울었다고 합니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친일 청산해야 한다는 그들의 아버지들이, 그때 뭐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대부분 자기 아버지를 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랬던 나라입니다. 그 때도 끝까지 견뎠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단의 사회주의자들입니다.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우리 민족은 최초로 투표했고, 그 투표에서 우리나라 국체를 결정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없애기 위해, 세계를 일순간에 2/3를 장악해 버린 공산주의 세력이 힘을 모아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했습니다.
준비가 없었던 그들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내려갔습니다. 부산에 모인 정치 지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망명정부 세우기 위해 일본으로 가야 하나 하와이로 가야 하나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오늘처럼, 부산 초량교회에 목사들이 모였습니다. 독립된 나라로 바꿔주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주신 것에 매몰되어 무얼 더 가질까 외쳤던 자기들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이 나라가 끝나는가 그럴 적에, 이제까지 별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유엔이 모여 한국 파병을 결정하고,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을 이 땅에 보내 이 나라를 다시 살려주는 이 나라 제2의 시작을,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씨앗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했던 이승만 대통령, 그리고 그 주변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탐욕에 눈이 멀어 부정투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4.19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때 대학생이었습니다. 모든 현장의 증언자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참 세월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반대하면 물러나야지’ 했습니다.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물러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승만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양심이 있어 민심 속에 하나님 음성을 듣고, 지팡이 들고 경무대를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하는 것.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1987년 미국 메릴랜드 한 대학 캠퍼스를 빌려 제2회 코스타를 열었습니다. 260여명의 유학생들이 모여 말씀을 공부하고 복음을 듣고 신학적인 여러 주제 강의들을 들었던 그때, 박종철이 죽었다는, 젊은 대학생들이 높은 데서 떨어져 죽고 자기 몸을 불사른다는 비보가 들어왔습니다.
하던 것을 모두 제쳐놓고 그 밤을 온통 눈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나라 살려주세요. 그리고 귀국했습니다. 학생단체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데모 나가는 애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기도하고 자빠졌냐’ 그랬습니다. 그래도 곳곳에서 교회에서도 믿음의 젊은 청년들이 기도했습니다.
모두 자동차를 타고 가서 빵빵 누르라니까, 시내를 질주하면서 경적을 울리자고 연락이 오면 모두 경적을 울리고, 시청 앞을 광화문을 활주했던 데모대들. 오피스에서 일하다 넥타이 매고 나온 사람들도 모두 쫓아나와서 함께 데모대에 참석했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6.29로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고, 직접 선거로 노태우 대통령을 뽑고,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을 선출함으로, 1948년 8월 15일 시작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실제 시작됐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 기껏 된 것이 30년이 못 됩니다. 세계에서 실제로 자유민주주의를 이렇게 통 크게 경험한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녀 보십시오. 눈물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셔서 용납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번 4월 15일날 투표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 봐도, 이번 선거는 너무 중요한 선거입니다.
이제까지 선거는 대부분의 경우 좋은 사람 뽑는 선거였습니다. 친한 사람 뽑는 선거였습니다. 정강정책을 보고, 어떤 정당을 선택해야 할까 하는 선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그것을 넘어서는 한 가지 선택을 더 해야 합니다. 체제를 선택해야 할 선거가 아닌가 합니다.
지금까지 그 고통 속에 여기까지 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취임식에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3년여 시간이 흘렀습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2월 6일 이인영 원내대표가 총선 이후 정국 구상을 말하면서, 사회주의 체제를 말했습니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일단의 사회주의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나라? 사회주의도 다 가 봤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경험해 봤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딱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토머스 모어 경이 썼던 ‘유토피아’라는 책에 기록된 이상향의 세계입니다. 아무도 못 가봤습니다.
또 하나는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세계입니다. 빅 브라더가 정보를 완전히 차단해서 모든 사람을 로봇처럼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저는 그것이 실현 안 될 줄 알았습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같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AI가 발달해서 안면인식 기술과 몸 인식 기술까지 있어서, 얼굴을 몰라도 이제 몸짓만 보고 찾아낸다고 합니다.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가 될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4월 15일까지 이런 문제들을 놓고, 눈을 부릅뜨고 이 나라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체제로 전달될 수 있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춰, 어느 것이 더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에 가까운 것인지 선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차단하고 있는 이 죄의 장벽이 무너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 목사들부터 나의 죄를 내놓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키(key)는 여기 있습니다. 이것은 더불어민주당에도, 한국당에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들이여, 하나님께로 돌아서자. 그 역사의 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손바닥 바꾸듯 역사를 마음대로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왜 그 분을 의지하지 않고 계속 불안해 합니까? 우리는 오늘 읽었던 성경 본문을 다시 마음으로 되새길 뿐 아니라,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선포하고자 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우리는 여기에 섭시다.
정치하시는 분은 정치하도록 하고, 운동하시는 분은 운동 열심히 하시도록 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어집시다. 곳곳의 목사님들이, 여기뿐 아니라 곳곳에서 깨어 있는 목사님들이 모여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보다 앞선 일은 안 되지 않습니까. 은혜 속에 충만한 시발점이 되는 축복이, 이 안에 넘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