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대구 목회자 설교 “이 세상에 안전지대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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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설교연구원 설교] 하나님 품만이 안전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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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91편 1-12절

모든 사람에게 공황장애가 있다

심리학 용어 중에 ‘공황장애’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황장애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아주 심한 불안 상태를 의미합니다.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다가도 심한 불안으로 인해 가슴이 뛰기도 하고 호흡곤란이 오기도 합니다. 때로 어지럽기도 하고 심지어 죽음의 공포까지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신체적인 요인부터 유전적, 사회심리학적 요인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최근 공황장애환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전문가들은 점점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가 늘어가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세가 심하냐 약하냐의 차이이지, 모두 공황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계가 혼란 속에 빠져 있습니다. 특히 대구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속하게 증가함으로, 대구 시민들이 불안한 가운데 있습니다.

저희 교회도 대구시와 대구기독교총연합회와 총회의 방침에 따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하면 안전한 곳을 찾게 됩니다. 대구시민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대구를 떠나 안전하다고 하는 지역으로 벌써 떠나가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안전지대가 있을 까요? 어느 곳에 가면 안전할까요? 조정민 목사님이 쓴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세상에 끊어지지 않는 동아줄은 없습니다.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밧줄이 있을 뿐입니다. 이 땅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곳이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는 어느 곳에도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대구도 코로나19에서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위험한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품만이 안전지대이다

정말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안전시대는 없는 것일까요? 실제로 안전지대는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 어떤 장소에 가도 어떤 시설가운데 거하여도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유일하게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단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품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안전지대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도 안전지대가 됩니다. 물 속도, 불 속도 안전지대가 됩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현장도 안전지대가 됩니다. 광야도 안전지대가 됩니다.

하나님 품이 안전지대가 되는 이유

왜 하나님 품만이 안전시대가 되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안전시대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움직이는 곳에 대통령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경호원들입니다. 경호원들의 임무는 대통령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은 그 나라에서 최고로 경호를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대통령이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최고의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경호했는데 암살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에게는 틈이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인간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습니다.

부모도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습니다. 부모가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다 해도, 아이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경찰 역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습니다.

돈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착각입니다. 돈이나 권력이 지켜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에서 눈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4)”.

하나님께서 유일한 우리의 안전지대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안전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 세상에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안전지대는 하나님 품입니다.

피난처=안전지대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2)”.

시인은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고백은 시편 곳곳에서 등장을 합니다.

다윗도 사무엘하 22장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나의 안전지대가 되신다는 고백과 같은 의미입니다. 시인들이나 다윗이 하나님만이 안전지대가 된다는 고백은 그저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서 체화된 고백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손에 죽을 까봐 블레셋으로 망명해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오히려 아말렉 족속에게 기습을 당해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그런 모든 어려움을 당하면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지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인과 다윗이 믿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시인과 다윗의 안전지대가 되신다면 우리의 안전지대도 되십니다.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시인은 3절 이하에서 보면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는 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라(3절)”고 고백합니다.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라(5-6절)”고 고백합니다.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엎드려져도 재앙이 가까이 하지 못할 것이라(7절)”고 고백합니다. “화가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10절)”고 고백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시험한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인의 고백은 11-12절 말씀입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안전하게 지켜주신다고까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어디에서 들어본 말씀 아닙니까? 이 말씀은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인용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먼저 광야로 가셔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의 금식을 마치셨을 때 사단이 예수님께 와서 세 가지 시험을 하였습니다.

이 중 한 가지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사단은 방금 전에 읽어드렸던 시편 91편 11-12절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즉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명하여 너를 안전하게보호하실 테니까 뛰어내려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말씀하시며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단의 시험이 참으로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명하여 보호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사단의 요구를 물리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위험한 일을 자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를 지키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안전지대로 삼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불신앙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우리 찬양의 대상이요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에 이르게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온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거듭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가데스바네아 반역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무려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자신들의 불신앙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원망함으로써,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신 6:16)”.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하여 믿는 자들은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6:18).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셨으므로 믿는 사람은 독을 마셔도 죽지 않아야 한다고 하며 실제 독을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시험헸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마음껏 다니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 약속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사람을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하십니다. 독을 마셔도,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 굴에 들어가도, 코로나19에 걸려도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호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 사자굴에 들어가고 풀무불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 곳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 그런 환경 가운데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면 됩니다.

무엇을 안전지대로 삼고 있는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정말 하나님을 안전지대로 여기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통장에 있는 돈을 안전지대로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연금을 안전지대로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소유한 집이나 부동산을 안전지대로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자식을 안전지대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 쌓아놓은 인맥을 안전지대로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만이 진정한 안전지대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내가 안전지대로 생각하는 그 안전지대를 뛰쳐나올 때, 진정한 안전지대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용비어천가 제2장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뮐새….’ 이 말은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떤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키가 큰 나무라고 할지라도 뿌리가 깊게 내리지 않으면 그 나무는 비바람이 불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의 곁가지들이 나무를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의 잎들이 열매들이 나무를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뿌리입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만큼 나무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바울도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그리스도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안전지대이신 예수그리스도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우리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안전할 수 있습니다.

안전지대 밖에 일어나는 재앙을 보면 회개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만 하나님을 안전지대로 삼고 의지하면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안전지대 밖에 일어나는 재앙들을 보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회개해야 하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종종 전염병을 재앙으로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렘 14:12)”.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민수기 16장에는 염병으로 14,700명이 죽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의 지휘권에 대해 반역을 일으킵니다. 반역한 사람들은 땅이 갈라져 다 죽게 됩니다. 이 일을 지켜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하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염병을 보내셔서 14.700명이 죽게 됩니다.

이뿐 아닙니다. 민수기 2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한 바알브올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염병을 보내셔서 24,000명이 죽게 됩니다. 둘 다 염병이 멈춘 것은 죄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사하였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확진된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이 나보다 죄를 많이 지어서 저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1-5)”.

주님은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재앙을 당하는 사람이 너희보다 죄가 더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회개하며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이 땅의 회복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달려 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기도하면 하늘에 들으실 뿐만 아니라 죄를 사하시고 이 땅을 고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비추어 보면 이 땅의 회복을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개와 기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상황을 보면서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재앙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을 안전지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안전지대를 찾아나서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을 안전지대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내가 있는 곳을 안전지대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있는 자리에서 우리의 안전지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하나님 품안에 거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만 안전지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안전지대 밖에 일어나는 재앙들을 보면서, 우리는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코로나19로 염려와 불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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