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대화재 때 박해받은 기독교인, 살아남은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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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시대, 로마에 있었던 유대인과 기독인(3·끝)

독일 튀빙겐대학교 개신교 신학부 신약학 은퇴교수인 헤르만 리히텐베르거 박사의 글을 제자인 문배수 박사(대신대)의 번역으로 세 차례에 나눠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기독교인들의 화형 장면을 즐기는 네로 황제와 로마 귀족들의 모습. 고대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의 “religio”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기독교인들의 화형 장면을 즐기는 네로 황제와 로마 귀족들의 모습. 고대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의 “religio”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IV. 로마에서 유대인-그리스도 관계를 위해

추방과 박해

어거스틴이 다소 신비스럽게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60년대 로마에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 관계에 아마도 중요한 빛을 던져 준다.

우리는 그것 외에 직접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이 당시 이미 즉 세네카 시대에 유대인 가운데서 매우 미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Christianos tamen iam tunc Iudaeis inimicissimos(『하나님의 도성』 VI, 11).’

이 외에 (사도행전 28에서 이미 말한 것을 제외하고) 우리는 1차 자료가 없기 때문에 재구성에 의존한다. 우리는 두 가지 역사적 사실 49년 클라우디우스 칙령과 네로의 지배 하에서 64년경 그리스도인이 박해받은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두 가지 사실이 중요하다. 49년 클라우디우스 지배 하에서 추방령이 내려졌을 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모두가 쫓겨났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일을 겪었다는 것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증언하고 있는데, 이들은 고린도에 있다가 나중에 다시 로마로 들어갔다.

수에톤 본문은 그것에 대해 추측하기를, 유대 공동체 안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소동이 일어났고 그 소동이 추방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늦어도 네로 지배 초기에(54년)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가정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중요한 시간은 그리스도인만 네로의 박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제 로마 당국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를 구별할 줄 안다.

클라우디우스 칙령 이후, 그리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50년경 다시 로마로 돌아온 후, 그들은 스스로 상대방에 대해 분명하게 차별화를 시켰음에 틀림없다.

이 분리에 따른 이익은 무엇보다 유대인들에게 돌아갔다. 유대인들은 추방의 원인이 되었던 소동을 야기시킨 이들과 더 이상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들은 로마 당국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압박을 시작하던 시기, 자신들의 특권과 네로 황제 부인이 자신들을 후원해 주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과 로마에서 일어난 화재

로마 화재는 처음에는 한 주 동안 이어졌고 그 후 다시 3일간 화난 듯이 맹렬히 타올라, 전체 도시를 파괴했다(64년 7월 18/19일에 시작). 그 화재에 대한 책임을 수에톤과 디오카시우스는 직접, 그리고 타키투스는 숨겨서 네로에게 돌렸다.

크레스티아니(Chrestiani)들에게 방화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것은 소문을 통해서이며, 그 소문은 일반 백성이 아니고 황제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복수형 ‘크레스티아니’를 그리스도인들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타키투스는 계속 이어지는 글에서 그들을 기독교 설립자 그리스도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에릭 코에스터만(Erich Koestermann)은 크레스티아니 속에서 폭동을 선동했던 크레스투스(Chrestus: Sueton Caes Claudius 25, 4)의 유대교 추종자들을 보고자 하며, 타키투스가 크레스티아니 단어를 그리스도인들로(Christen) 착각해 잘못 보고 그것을 동일시했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는 당연히 반대한다. 우리는 타키투스가 말하는 것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힐데브레트 호멜의 해석을 보라고 말한다. ‘크레스티아니’의 실제 의미를 알고 있는 타키투스는 단어가 갖는 이중 의미를 통해 온갖 종류의 범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크레스티아니는 그리스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독일어 ‘어리숙한 사람들(Biedermänner)’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즉 어리숙하고 순진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로마도시의 방화범인 셈이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을 감옥에 가둔다. 이제 죽음의 나사가 돌려지기 시작한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기소되면서, 화재를 일으켰다는 범죄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증오로 유죄판결을 받았다(Ann 15,44,4)”.

여기서 그 때 이뤄진 고소들 중 하나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 그리스도인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그에 대해 증오하는 것이(odium humani generis), 유대인들이 모든 외부인들에 적대적이라면서(adversus omnes alios hostile odium)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것에 상응하고 있다(Tac, Hist 5,5,1).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갇힌 감옥. 디모데후서를 이곳에서 썼음. ⓒ한평우 목사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갇힌 감옥. 디모데후서를 이곳에서 썼음. ⓒ한평우 목사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형벌에 대한 잔인한 묘사도 나온다 (Ann 15,44,4-5). 우리는 형벌 종류에서 거꾸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관계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얻게 된다.

1. 주머니에 넣고 바느질로 꿰메는 형벌, 화형, 십자가형은 임시방편으로 고통을 주기 위한 것들이 아니라, 로마에서 실제 이뤄어진 형벌에 따른 것이다. 화형은 이미 로마 광장에 세워진 12판 항목에 방화에 대한 형벌로 나와 있었다. 그런 형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옮겨진 것이다.

2. 십자가 형벌이 증거하는 것은 바티칸 정원에서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으로 최소한 왜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받았지만 유대인은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 일부분이나마 설명이 가능하다. 필로가 이미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증언한 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로마 시민권이 네로의 잔인한 사형 집형에서 유대인들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동정심을 나타내었다.

“전체 과정이 끝나고 화해의 분위기가 퍼져 나갈 때, 백성들이 순교자들의 잔인한 운명에 대해 동정한다는 보도만 나왔다.” 백성들의 동정을 설명하면서, 타키투스는 황제에 대한 자기 나름의 판단을 아무도 능가할 수 없는 분명한 어조로 표현했다.

네로가 로마 화재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할 때, 우리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묻는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그에 대해 매우 중요한 결과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자 한다.

1. 우리는 유대인들이 당시 박해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어떤 보고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바울과 세네카 사이에 이뤄졌다는 가상의 편지 왕래는(편지 11 〈12〉),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이 모두 방화범으로 처형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2. 유대인이 그리스도인을 고소했든지, 유대인이 단지 그리스도인 처형에 찬성하면서 방관했다든지 간에, 여하튼 유대인이 네로의 그리스도인 박해에 참여했다는 직접적인 어떤 증거도 없다. 또 유대인이 소위 유대인의 친구라는 포프페아 사비나를 그 박해 과정에 연결시켰다는 주장은 어디에도 증거가 없기에 그것은 단지 완전한 추측일 뿐이다.

3. 화형은 방화를 비난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

4. 십자가형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다.

5. 이 밖에 그리스도와 유대인 사이의 차이는 로마 당국자들에게 분명하게 부각됐음에 틀림 없다. 이것은 유대 공동체와 기독교 공동체 사이의 조직이 서로 나누어졌음을 전제한다.

끝으로, 네로가 왜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윌리 로오르프는 이것을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에 세상이 불에 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점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그 비난이 왜 유대인들에는 향하지 않았을까? 유대인들의 묵시 사상에도 마찬가지로 종말시 화재가 일어난다는 생각(εvκπυ,ρωσις)이 있었기 때문이다(Sib 3,48; 4,172).

▲바울이 로마에서 이년동안 살았던 셋집 내부. ⓒ한평우 목사 제공

▲바울이 로마에서 이년동안 살았던 셋집 내부. ⓒ한평우 목사 제공

V. 처음에 이뤄진 공동체성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림은 단편적이다. 요세푸스가 로마에 머물렀다는 것이나, 바울의 마지막 여행과 그의 운명에 대한 결론 어느 것도 우리 앞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네로 시대 때 로마에 있었던 유대 공동체와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소식은 조각조각 나뉘어 있고, 그에 대한 해석이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매우 귀중한 가치가 있다. 즉 50-60년대 두 작은 집단의 역사는 서로에게 가까운 동시에 서로를 구분짓고 있지만, 둘은 전체주의 국가와 매우 막강한 세계 권력의 그림자 밑에 존재했고, 방법에 차이가 있지만 그 세상 권력에 대해 이 땅에 속하지 않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두 집단은 제각각이지만 우선 공통의 전체에서 비롯된다. 기독교는 모든 것이 유대교에서 왔기에, 그에 대해 유대교에 감사해하고 있다. 마르시온의 길과 인연이 맺어지는 곳마다 중요한 공동의 관계, 즉 구약과 신약 사이의 한 하나님 그리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 한 성경에 대한 공동의 관계가 사라졌다.

그리고 성경에 증거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확실히 분리에 이르게 했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고 단호한 바울이 이해하고 설교한 것처럼, 구원의 보편성과 은혜의 무조건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에 속한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초기 역사는 고통스러운 길을 예감하게 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그 고통과 함께 자라났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초기 역사는 바리새인 바울의 모습에서 모범적으로 구체화된다.

우리는 다음 두 과정을 눈여겨 보면서, 처음의 이 공동체성을 알게 된다.

1. 로마에 있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처음의 확실한 보도는-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에 대해 상세히 조사할 수 없다-주전 139년과 관련되고, 그것은 추방에 대한 기사이다.

로마에 있었던 기독인들에 대한 처음의 확실한 보도는 클라우디우스 지배 하에서 로마 기독인이 로마 유대인들과 함께 추방된 것에 대한 기사이다.

2. 처음에 두 집단은 무시의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은 곧바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공격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그에 대해 인간에 대한 증오라는 예를 언급했다.

이 공동의 역사는 십자가에 달린 당나귀가 언덕에 있다는 조롱의 십자가 상에서 그 끝장을 본다. 유대인의 공격에서 나온 당나귀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인들의 신이다.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 칼 바르트가 교회 연합을 위해 했던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교회 연합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질문은 유대교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는가에 있다.”

헤르만 리히텐베르거(Dr. Hermann Lichtenberger)

튀빙겐대학교 개신교 신학학부 신약학 은퇴교수
1988년 이후 독일 뮌스터대학과 튀빙겐대학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임.
튀빙겐대학 고대 유대교와 헬라주의 종교사 연구소 소장

박사학위와 박사후 논문
『쿰란 문서에서 인간상에 대한 연구』
『로마서 7장에 나타난 바울의 인간론 연구』

▲해당 원고를 번역한 문배수 박사.

▲해당 원고를 번역한 문배수 박사.

번역 문배수(Th. D.)
총신대 수학 후 독일 튀빙겐대에서 신약학 학위
『유대교 전승과 헬라주의적 구성: 사도행전 15장과 17장에 대한 주석학』
현 대신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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