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의 아트독서 51] 지식을 가진 자가 독점한다
지식을 가진 자가 독점한다
세상은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지식을 탐독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식 탐독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있다. 지식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 나라는 1%의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한다. 1%의 사람들이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1%의 사람들은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을 당연시한다.
교회는 예외인가? 아니다. 교회도 지식을 가진 사람이 독점하고 있다. 대형교회는 기본적으로 지식을 상징하는 스펙이 화려하다. 목회를 잘 하고 못하고를 차지하고라도, 대형교회는 화려한 스펙을 요구한다.
설교자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설교자 사회는 철저하게 지식이 우위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들은 말이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설교를 잘 하면 보편적으로 청빙을 받고 설교를 잘 못하면 개척을 한단다. 한 번 곱씹어볼 만하다.
세상도 교회도 지식을 가진 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중세 교회는 지식을 갖지 못하면 성직자가 될 수 없었다. 성경을 읽거나 풀이해 주려면 라틴어를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식을 가진 자가 독점한다면, 우리는 지식을 탐구해야 한다. 지식을 탐구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독서를 일컫는다. 결국 독서를 하면 지식을 선점한다. 지식을 선점하면 권력과 부를 억을 확률이 커진다.
지적 절름발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
지적 절름발이가 있다.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지식 사회에서 지식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가지려 한다. 하나님만 가지면 영적인 것이 충족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한 가지 더 가져야 한다. 지적인 것도 갖고자 해야 한다. 지적인 것을 가지면, 정신적인 것이 충족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로부터 구해서 받은 것이 ‘지혜’다.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열린 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동시에 지식 탐구에도 열려 있다.
솔로몬은 궁정의 교육을 받았다.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지적 탐구를 추구한 사람이다. 지적 탐구를 하면 영적인 것도 추구하게 된다. 솔로몬은 영적·지적으로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사람은 지적인 것을 추구한다. 교회를 섬겨야 하는 목회자도 지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지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설교자는 지적 절름발이가 되서는 안 된다. 그럼 영적 절름발이가 될 수 있다.
설교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만 열려 있고 세상의 지식에 열려 있지 않는다면, 지적 절름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가진 자다. 하나님을 가졌기에,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신, 즉 하늘의 지혜를 가지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세상 지식의 근원이시다. 창조 때 각종 동물, 식물 등을 지으신 것은 지식이 넘침을 보여준다.
우리가 알듯,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셨다. 예수님은 지식도 넘치셨다. 세상 사람들이 놀랄 만한 지식의 소유자셨다, 회당에서 설교를 하실 때, 사람들이 놀랐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놀랄 만한 지식을 갖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시다가 하신 설교를 통해 청중들을 설득하자, 청중들이 즉시 따랐다. 청중들이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즉각 따랐다는 것은 지식도 탁월하셨음을 알려준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혜인 성경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청중과 호흡하기 위해 세상의 지식도 가져야 한다. 세상의 지식을 가질 때, 하나님의 지혜를 더 풍성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정보도 가져야 한다. 정보와 지식의 차이점이 있다. 정보는 단순히 무언가를 ‘아는 것’이다. 지식은 알게 된 내용을 이해한 다음 조합하고 새로운 판단을 내려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다.
정보의 통로는 독서다. 지식의 통로도 독서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독서를 해야 한다. 독서로 남다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청중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찰력 있게, 창의성 있게, 낯설게 전함으로써 청중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다.
설교자는 지식을 가진 자가 돼야 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이 정지됐다. 일터, 일상, 교육, 산업 등 모든 것이 정지됐다. 직장인들의 근무도 재택 형태로 전환됐다. 교회도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청중들이 주일예배를 참석할 수 없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지가 길게는 5주가 되었다. 결국 교회는 오프라인 예배에서 온라인 예배로 대체되었다. 설교자는 오프라인에서 설교한 뒤 온라인으로 청중에게 전송한다.
지금까지 설교는 ‘현장감’이 대세였다. 이제는 현장감이 아니라 콘텐츠가 대세가 되었다. 설교자들은 현장감 없는 설교를 해야 한다. 현장감 없는 설교를 해야 하므로, 지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청중들은 풍부한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은 말이 있다. 몇몇 교회의 온라인 설교에는 온라인 접속이 폭주하지만, 그렇지 않은 설교에는 턱없이 접속하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주로 유튜브를 통해 설교를 듣는다. 설교 콘텐츠가 좋은 목사의 설교는 부익부다. 결국 설교 콘텐츠가 부실한 설교자는 빈익빈이 된다.
설교 중시는 ‘독서 중시’로 이어지게 했다
코로나19로 신앙생활이 예배 중심에서 설교 중심으로 옮겨졌다. 예배에서 설교로 중심축이 옮겨지면, 설교자는 더욱 독서를 통한 콘텐츠 계발에 진력해야 한다.
설교자가 진력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말씀 묵상, 독서, 그리고 기도다. 그 중에서 독서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젠 설교자에게 독서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아트설교연구원 회원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독서에 매진하고 있다. 많은 회원들이 매일 책 한 권씩을 읽는다. 아침에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한 뒤, 나머지 시간에 독서에 매진하고 있다.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을 시간이 충분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책 한 권을 출간하려 한다. 제목이 《독서‘꽝’에서 독서‘광’으로》이다. 이렇게 제목을 잡은 것은 설교자와 그리스도인들이 독서광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설교자나 그리스도인들이 독서‘꽝’을 탈출할 절호의 기회다. 독서‘광’으로 살아갈 습관을 들이는 데 최적의 기회다. 설교자는 독서의 뒷받침 없이 설교하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 역시 독서 없이 살아가면 안 된다.
지금 한국교회가 위기다. 동시에 기회다. 이때를 기점으로 위기로 전락하느냐 기회로 만드느냐는, 설교자가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설교자들은 이번 기회를 독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독서가 습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습관은 21일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습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
습관은 설교자의 얼굴을 바꿔놓는다. 더 나아가 독서는 설교자의 목회를 바꿔놓는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독서 습관을 길러야 한다.
위기 때 독서하는 것이, 설교자에게 호기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독서를 하지 않은 설교자에게는 또 다른 위기가 될 뿐이다. 설교자에게 독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지식인이다. 그렇다면 남다른 지식을 가진 자가 돼야 한다. 세상 문화보다 나은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유튜브 시대에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일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식을 추구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빨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설교자와 그리스도인은 더욱 더 독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자와 묵상/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이기는 독서/절판》《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